현애살수(懸崖撒手) - 절벽에서 잡고 있는 손을 놓다, 작은 것에 매달리지 않고 나아가다.
[달 현(心/16) 언덕 애(山/8) 뿌릴 살(扌/12) 손 수(手/0)]
높은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懸崖) 잡고 있던 손을 놓는다(撒手). 손을 떼면 죽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을 포기하기란 가능하지 않다. 불교에서 말하는 심오한 원리로 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소한 것에 매달리지 말라는 뜻이란다.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때 나뭇가지를 잡았다. 두 손을 놓으라는 하늘의 말에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놓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이 빠질 때까지 매달린다. 실제 절벽은 그리 높지 않아 손을 놓으면 살 수 있어도 그렇다. 손에 움켜쥔 나뭇가지에 연연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라는 집착에서 헤어날 길이 없어진다는 가르침이다.
불경의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이 중국 宋(송)나라 선사 冶父道川(야부도천)의 ‘偈頌(게송)‘이다. 속명이 狄三(적삼)인 그는 궁수였다가 道謙(도겸)로부터 道(도)가 시냇물(川/ 천)처럼 불어나도록 내려준 법명대로 정진했다. 金剛經(금강경) 해설을 시로 표현하는 것이 뛰어나 많이 알려졌다. 성어가 나오는 앞부분을 보자.
’나뭇가지 붙잡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라(得樹攀枝未足奇/득수반지미족기), 벼랑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대장부로다(懸崖撒手丈夫兒/ 현애살수장부아).‘ 攀은 더위잡을 반. 역대 선승들의 화두100개를 담은 禪宗(선종)의 ‘碧岩錄(벽암록)’에는 선문답이 어긋날 때 ‘마땅히 낭떠러지에서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直手懸崖撒手 自肯承當/ 직수현애살수 자긍승당)’고 깨우친다.
이 말은 또한 白凡(백범) 金九(김구) 선생이 항상 실천하려 했던 명구로 알려져 있다. 백범은 20세 무렵 安重根(안중근)의사의 부친 집에서 스승 高能善(고능선)을 만났을 때 결단력이 부족함을 일깨우려 가르쳐준 이 글귀를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나무에 오를 때 가지를 잡고 오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으나 낭떠러지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는 것이 대장부라며 결단할 때는 과감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懸崖撒手(현애살수)의 장면을 잊지 않기 위해 백범은 낭떠러지에 매달린 원숭이를 그린 그림을 벽에 붙여놓았다고 하고, 尹奉吉(윤봉길) 의사의 거사 직전에도 당부했던 말이라 한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진일보)란 말을 많이 쓴다. 백 자나 된 장대의 끝에선 더 나아갈 곳이 없음에도 더 노력한다는 말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이 가지고도 더 욕심을 부리는 일은 없을지 뒤돌아봐야 한다는 뜻으로 달리 생각할 수도 있다.
살아가면서 지금에 만족하고 때로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할 때도 생긴다. 집착하기만 하고 더 위로 오르려고만 하다가는 가진 것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부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이 인사 청문회 때 온갖 잡음이 쏟아져도 눈도 꿈쩍 않고 불명예스런 자리에 앉는다. 공을 이루고 물러나는 功成身退(공성신퇴)는 그만큼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