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7]이제는 ‘K-서예’닷!
어제 오후, 지인선배들과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아주 재미있는 전시회를 관람했다. 이름하여 <2024 한글서예변주전-붓으로 쓰는 우리말 노래>전. 그러니까 국내의 난다긴다하는 서예 명인들이 각자 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등 유행가나 시조, 가곡, 판소리 등의 노래말을 붓으로 쓴 작품(모두 95명이 82곡 참여)들을 전시한 것이다. 강암剛庵 송성용宋成鏞(1913-1999)은 현대에 이르러 ‘큰 붓’이다. 그분을 기리는 ‘강암서예학술재단’에서 처음 기획한 전시회로, 문자의 아름다움과 문인의 기품을 담은 서예가 소리와 시의 감동이 스며있는 노래와 만나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다. 예로부터 시-서-화-각(전각)은 한 법을 따른다(詩書畵刻一律)고 하지 않았던가. 어찌 시가 있는데 노래가 없을손가. 춤이 곁들인다면 더더욱 금상첨화일 것은 불문가지.
전통과 혁신을 두루 아우르는 한글서예의 다채로운 변주變奏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노래들의 숨은 감동을 체험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노래인들 요즘말로 스토리텔링이 왜 없으랴. 사연 사연마다 눈물겨운 얘기들도 많다. 95명의 작품 중 5개 작품만을 소개하는 게 섭섭하지만, 두꺼운 한 권의 책 <서예가가 사랑한 우리말 노래>(송경모 엮음, 아석재 출판, 345쪽, 25000원)을 어찌 다 옮기랴.
#1. 최헌의 <가을비 우산속>
먼저 계절이 계절인지라, 최헌(1948-2012)이 부른 <가을비 우산속>을 보자.
<그리움이 눈처럼 쌓인 거리를/나 혼자서 걸었네 미련 때문에/흐르는 세월마다 잊혀진 그 얼굴이 왜 이다지 속눈썹에 또다시 떠오르나/(후략)>.
그는 이 곡 하나로 1978년 MBC가수왕에 오르고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요절한 셈이어서 더욱 애틋하다. 늦가을 찬비에 젖은 노오란 은행잎을 밟으며 한적한 시골길을 걸으며 “그리움이 눈처-어-럼 쌓인 거어-리를”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흥얼거린 기억이 우리 세대는 누구나 있으리라. 동명의 영화 속에 나오는 20대 중반을 갓 넘긴 정윤희의 청순한 미모가 떠오르시는가. 최헌의 허스키 보이스가 듣고 싶다.
#2.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일제강점기 1940년 나라를 잃은 절망을 ‘나그네’로 은유 표현한 조경환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이 노래한 대표적인 유랑가이다.
<오늘도 걷는다마는/정처없는 이 발길/지나온 자죽마다 눈물 고였다/선창가 고동소리 옛님이 그리워도/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후략)>
강암의 자제 송하경님이 썼다. 이 노래는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시절, 담임은 3월부터 학기가 끝날 때까지 종례때마다 이 노래를 교실에서 부르게 했다. 뭣도 모르고 재미있어 불렀던 노래. 선생님은 왜 우리에게 이 노래 제창을 강요했을까. 내년 스승의날엔 아흔이 넘으신 선생님께 꼭 그 까닭을 여쭤 봐야겠다.
#3. 안치환·한영애·윤선애의 <부용산>
작사가 박기동(1917-2005)은 이 땅의 사연많은 시인이다. 1947년 사랑하는 누이가 24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슬픔을 시로 쓴 게 <부용산>이다. 신라때 월명사가 읊은 향가 <제망매가>를 떠올린다.
<부용산 오리길에/잔디만 푸르러 푸르러/솔밭 사이 사이로/회오리바람 타고/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너는 가고 말았구나/피어나지 못한 장미는 시들어지고/부용산 봉우리에/하늘만 푸르러 푸르러/(후략)>
월북한 음악교사 안성현이 작곡, 한국전쟁 이후 빨치산들이 불렀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으나, 70-80년대 운동권에서 저항가로 불린 노래를 안치환 윤선애 한영애 등이 불러 알려졌다. 부용산은 벌교에 있는 아주 낮은 산.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별곡 Ⅲ-37]시와 노래 <부용산>을 아시나요? - Daum 카페
#4. 강진·양지은의 <붓>
<힘겨운 세월을 버티고보니/오늘같은 날도 있구나/그 설움 어찌 다 말할까/이리 오게 고생 많았네/칠십 년 세월/그까짓 게 무슨 대수요/함께 산 건 오천년인데/잊어버리자 다 용서하자/우린 함께 살아야 한다/백두산 천지를 먹물 삼아/한 줄 한 줄 적어나가세/여보게 친구여/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붓을 하나 줄 수 있겠나/(후락)>
일단 노래말이 너무 뭉클하다. 자칫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같다. 가수 강진의 노래를 트롯트여왕 양지은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막걸리 한잔>을 작곡한 류선우가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보고 영감을 받아 통일의 염원을 담아 지었다고 한다.
백두산 천지의 맑은 정기를 붓에 담아 한민족 우리 역사를 아름답게 써내려가고, 한라산 구름을 화폭 삼아 아름다운 우리 문화를 자랑스럽게 꽃피워 나간다면, 비록 아무것도 아닌 나이지만, 안중근의사처럼 천국(지옥)에서라도 춤을 추겠다.
#5.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산기슭의 하이에나/나는 하이에나가 아니고 표범이고 싶다/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자고나면 위대해지고/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후략)>
작사가 양인자를 아시리라. 남편 김희갑과 이 노래를 만들어 가왕 조용필이 불렀다. 그가 부른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서울 서울 서울> 등도 그녀가 지었다. 신춘문예에 떨어진 상태에서 일기장에 써둔 메모가 노래가 됐다. 노래말이야 더없이 좋지만, 노래방에서 <향수>와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인간들을 보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던 기억이 있지 않은가.킬리만자로에 한국인 등산객이 많아지자 탄자니아정부는 가수에게 문화훈장을 줬다고 한다.
국보급 전각예술인인 나의 친구 진공재가 멋드러진 작품을 족자로 완성했다. 작가는 작품 후기에서 "그야말로 하이에나처럼 먹을거리를 찾아 후미지고 비탈진 길 어디를 정처없이 헤매던 시절, 이 노래를 듣고 필경 나를 위해 생겨난 노래라는 야무진 착각 속에 1985년 그 어느 날부터 40년 가까이 나의 고약孤弱을 위로받는 애창곡이 됐다"며 "나에게는 그냥 노래가 아니라 일종의 경문經文이었고 일용할 양식이었다"고 적었다.
한 후배친구는 족자를 구입, 벽에 걸어놓고 음치인데도 완창한 동영상을 보내와 배꼽을 잡게 했다. 나도 그 족자를 구입하여 ‘번아웃 증후군’ 끝에 향수병鄕愁病에 시달리는 호주의 간호사 아들에게 선물했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운 법이라며 '외로우면, 외로울수록 자기 자신을 친구로 삼으라'는 뜻으로, 간서치 이덕무의 호를 빌어 <오우아吾友我>(나는 나를 친구로 삼는다: I befriend me)라고 새긴 낙관과 함께. 아들내외의 건강과 건승을 빌 뿐이다.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레터 9/오우아吾友我]나는 나를 벗삼는다 - Daum 카페
아무튼, 전시회를 둘러보는 내내 가벼운 ‘문자향文字香’에 취할 수 있어 좋았다.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어떻게 이런 소리글자를 과학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 우리말과 글의 멋과 맛이라니? 참으로 백성을 사랑한 애민성군愛民聖君이시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앞으로 ‘K-문학’이 지구촌에 우리말을 배우고 우리 문학을 읽는 젊은 세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BTS의 노래를 우리말로 따라부르는 전세계 ‘ARMY군단’들의 믿기 어려운 행진을 보라. 'K-뮤직'에 이은, 우리의 라면과 김치가 세계인의 입맛을 휘어잡고 있는 'K-푸드' 등 'K-00'이 지구촌 대세인 것을. 아, 정치만 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설하고, 이런 멋진, 드문 기획전이 해마다 이뤄줬으면 좋겠다. 서울전시는 11월 5일까지 하고, 8일부터 14일까지는 강암 선생님의 고향 전북 전주에서 전시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대중가요 노래말을 흥얼거리며 자꾸 짧아지는 가을날을 보내주고, '그 겨울의 찻집'에서 겨울을 침착하게 맞이하자. 끝없을 졸문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