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살기가...! 핑핑 비수가 날아오고, 잽싸게 주인공 외팔이가 몸을 날려 내려선 곳은 소림사의 잔디밭, 아차차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하얀 푯말이 그대로 화면에 비친 웃지 못할 국적 불명 무술 영화 싸구려 제작비에 재미는 시시껄렁해도 어눌한 영상 속에 걸핏하면 나오는, <하산해도 좋느니라> 깊은 산중 사부님의 쩌렁쩌렁한 말 한마디 속에서 문득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발견한다 복수를 위해 남해신검의 제자가 된지 어언 십오년 비로소 비전의 절학을 배우고 하산하는 외팔이 가는 곳마다 똘마니들이 찌럭찌럭 건들지만 끝끝내 검을 뽑지 않는 외팔이 아아 어떻게 배운 팔만사천검법인가 물 긷고 밥 짓기 삼년 나무하고 장작 패기 삼년 빨래하고 아흔아홉 계단 쓸기 삼년...
피아노 단기완성! 대입 미술 2개월 책임지도! 돈만 내면 즉석에서 흔쾌히 모든 걸 전수해주는, 오늘날의 화끈한 싸부님 싸부님들 발랄한 제자들은 아무때나 발랄하게 하산하여 아무 때나 아무 때나 칼을 뽑아든다 복싱을 배우고 나면 흉기 같은 주먹으로 기껏 아내나 패고 쇠를 전수 받으면 뽕짝이나 부르고 무술을 배우면 약장수 아니면 정치 깡패나 되는, 얄밉도록 발랄한 현실의 제자 여러분들
그러고 보면, 자신의 재주를 삼가하고 귀히 여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아무리 황당무계한 삼류 무협영화지만 <하산해도 좋느니라> 백발무성한 사부의 말씀 그 속뜻 만큼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안배가 깃들어 있는가
헌데, 만약 내 시의 사부가 있다면? 이놈, 하산은 무슨 얼어죽을...... 연필만 한 삼년 더 깎어라 껄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