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강이 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날수 있는 자연적인 방어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을 이쪽 땅과 저쪽 땅을 가르는 경계선이라 하여 가름(가람)이라 불렀다.
이들에게 최고의 형벌은 국경선인 강가로 내모는 것인데 여기에서 법(灋, 法)이라는 글자가 나오게 된다.
강이 서로간의 국경선이 되는 자연적인 경계라면 땅위에 인위적으로 만든 경계는 울이라 하였다.
울은 집의 울타리나 가축의 우리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
울 밑에선 봉선화야"라는 노래에서도 알수 있듯이 울은 울타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 울이 이쪽 땅과 저쪽 땅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됨을 알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울안에 함께 모여 살았는데 이를 한 울에 모여사는 무리라 하여 울리라 불렀다.
그러나 우리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앞말의 받침이 탈락되는 현상이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울리의 발음은 우리가 된다.
반면 울을 나간 사람을 남이라 불렀으니 우리와 남의 경계는 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족, 우리동민, 우리시민, 우리도민, 우리국민 등에서 보듯이 우리의 범위가 어디까지 인지에 따라 그 경계를 남과 구분하는 울로 삼았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고대에 우리 선조들은 원래 살던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면 자기가 살던 곳의 지명을 갖고 다녔다.
그래서 새로 이주한 곳에도 울을 세우게 되는데 이를 서있는 울이라 하여 선울이라 불렀다.
그런데 앞말의 받침을 탈락하여 부르는 관습때문에 선울을 서울이라 부르게 된다.
우리의 수도인 서울은 이런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그렇기에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면 그곳이 다시 서울이 되는 것이다.
울은 적(敵)이나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피할라구 만든 것이다.
그래서 울을 달리 피알라그(Piala-g)라고 불렀다.
모스크바대 어문학 박사였던 세르게이 스타로스틴은 그의 바벨 프로젝트에서 피알라-그(Piala-g)를 요새(Fortress) 또는 부락(Group of Houses)으로 정의하고 있다.
고대에는 요새 즉, 울을 피알라그로 불렀다는 것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이 피알라그(Piala-g)를 우리는 평양(平壤)으로 쓰고 피양으로 발음하게 되는데, 만주어에서는 삘라(必拉) 또는 삐얄라(必雅拉)로 부른다.
또한 고대 한국어로는 펴라, 피라, 빌라 등으로도 불렀다.
그러니 울과 평양(平壤)은 같은 뜻임을 알수 있을 것이다.
피알라그(Piala-g)에서 자음 g는 흔히 ng로 변하거나 탈락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피알라그는 삐알랑(Piala-ng)이나 삐알라(Piala)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 흔적이 만주어 삐얄라(必雅拉)에 남아있는 것이다.
삐알랑은 몽골의 이동식 천막과 같은 것인데 여기에서 고차(庫車)라는 나라가 나왔다.
고차(庫車)는 서유기에 여인국(女人國)으로 나오는데 지금의 신강성 중가리아분지에 있던 나라로 이들이 천막을 수레에 끌고 다니는 것을 보고 한족들이 고차(庫車)라고 이름을 지었다.
고차는 이후 철륵(鐵勒)을 거쳐 돌궐(突厥)이 되는데 지금의 투르크(Turk)족을 말한다,
이에서 보듯이 몽골이나 투르크 역시 울을 갖고 다녔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이집트어로 큰 집 또는 왕궁이란 뜻의 Par에서 온 말이다.
Par는 모음을 붙여 페르아(Peraa) 또는 페르오(Per-o)로 읽는데, 이를 헬라어로 파라오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즉, 울을 의미하는 큰 집이나 왕궁이 그곳의 주인인 통치자의 이름으로 불렸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울(Ur)은 고대 수메르(Sumer)에서 함(Ham)족의 시조인 아브라함(Abraham)이 살던 곳이다.
수메르어로 아버지는 아범(Abum)이라 하고 그 형용사형을 아비(Abi)라 하니 아브라함은 함족의 아버지를 뜻하는 말임을 알수 있다.
수메르인들은 함족이 여러 무리들로부터 핍박받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그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울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 함께 살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함족은 울(Ur)을 수메르인들에게 얻은 땅이라 하여 얻은(Eden)이라 불렀다.
에덴(Eden)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Edhen인데 얻을 득(得)의 뜻이라고 한다.
Edhen에서 h가 탈락하여 Eden이 되니 그 발음은 얻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수메르에 있던 울(Ur)이 곧 에덴(Eden)이라고 할 것이다.
울은 적이나 짐승이 쳐들어 오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창과 같은 무기를 들고 입구를 지켰다.
그래서 그 형상을 본받아 글자를 만드니 이를 국(國)이라 하였다.
국(國)은 달리 나라라고 하니 그 안에 나와 라(羅)가 함께있다는 것이다.
이는 울안에 있는 나를 창조주인 마라(麻羅)가 늘 지켜주고 있다는 뜻이리라.
마라(麻羅)는 기독교 문명에서 마라(Marah)를 거쳐 지금은 마리아(Maria)로 불리고 있다.
(마라는 인류를 낳은 최초의 신을 말하며,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로 다루어 드리겠다.)
나라는 흔히 낙랑(樂浪)이라고 썼으니 이는 받침을 모두 탈락하여 나라로 불러야 맞는 것이다.
이는 우리말 나라를 글(㓞)로 음사(音寫)하면서 낙랑(樂浪), 낭야(琅耶), 낭야(琅邪), 나랑(奈郞), 나량(奈良, 나라) 등으로 쓴 흔적에 비쳐 보아 알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나라는 큰 나라라는 뜻의 대방(大邦)이라고도 하였으니 역사의 기록에 등장하는 대방(帶方)은 오기(誤記)의 산물(産物)이라 할 것이다.
원나라 말기에 강소성 태주(泰州)에서 소금 중개상을 하던 장사성(張士誠)은 반란을 일으켜 오국(吳國)을 세우고 스스로 성왕(誠王)이라 칭하였다.
그는 고려의 공민왕에게 보낸 국서(國書)에서 이르길 "대방(大邦)을 흠모하여 일찍부터 전하를 뵙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못하다 이제야 안부를 드리며 선물을 바치나이다."라고 하였다.
대방(大邦)은 글자 그대로 큰 나라라는 뜻이니 당시의 원나라 보다 큰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고려를 대방이라 하였으니 이는 고려가 대방(大邦)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뜻이리라.
또한 고려 예종 때 여진족 완안부 추장 영가(盈歌)가 말하길 "우리의 조종은 대방(고려)에서 나와 오늘의 자손에 이르렀다."고 하였으니 그들 역시도 대방을 자기들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대방은 대방(帶方)이 아니라 대방(大邦)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보아 나라는 달리 낙랑(樂浪)이나 대방(大邦)으로도 썼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울은 달리 서울과 평양, 삐얄랑(必雅拉), 고차(庫車), 파라오, 에덴, 국(國), 나라(樂浪), 대방(大邦) 등을 거쳐가며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기 시작한 최초의 요람(搖籃)은 바로 울이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울에서 나와 울에서 살며, 오늘도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서울의 어원과 관련하여서만 한 말씀 드리자면......
본문에서는 [선+울](세워진 울타리) -> [서울]이 되었다고 적고 있으나, 이런 주장이 참으로 밝혀지려면 [선울] 또는 [서눌]로 표기된 용례가 옛 문헌에 나타나거나 그렇게 추정할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용례들은 다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죠.
현재 서울의 어원은 백제나 신라에서 쓰이던 '수도를 뜻하는 옛 표현'이었을 것으로 봅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식이라고 보죠.
[사비/소부리(백제), 서라벌/서벌(신라)] -> [셔블] -> [셔블(ㅸㅡㄹ)] -> [셔울] -> [서울]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사비(현 부여)는 백제멸망 이후 소부리주로 불렸으니 사비와 소부리는 당대인에게는 비슷한 발음이었을 겁니다. 신라는 본디 사로국에서 출발한 나라인데, [-벌, -불, -부리]가 벌판, 들판 등을 나타내는 단어라면 서라벌은 사로+벌의 의미일 가능성이 크겠지요. 서라벌은 신라의 수도로서 나중에 한자로 동경(東京)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이는 고유어로 동쪽을 '새/사' 라고 하는 것과 관련이 됩니다. (동쪽 별 = 샛별, 동풍 = 샛바람) 결국 동경(東京)은 새벌, 서라벌로 읽혔을 것으로 보이는 '향찰식 표기'로 봅니다.
다음으로 고려시대에는 서울을 표기한 흔적이 적어 뭐라고 불렀는지 알 수 없지만, 조선 초기의 용비어천가 등의 문헌을 보면 [셔블(ㅸㅡㄹ)] 표기가 확인됩니다. 수도를 나타내는 고유어 어휘로 사비/소부리~서라벌/서벌에 대응되는 단어로 [셔블]이 이어져 왔다는 거죠.
이후 우리 국어에서는 조선중기 이후에 ㅂ이 ㅸ으로 바뀐 뒤 ㅗ/ㅜ(w 발음)으로 변화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합니다. 오늘날의 ㅂ 불규칙 용언들이 그 흔적들입니다.
덥다 -> 더버 -> 더ㅸㅓ -> 더워
곱다 -> 고바 -> 고ㅸㅏ -> 고와
굽다 -> 구버 -> 구ㅸㅓ -> 구워
(경상도 일부 지역은 더워 대신 '더버' 라고 발음하기도 한다는데, 이는 옛 발음의 잔재라 보심 됩니다.
이런 변화에 따라 [셔블]에서의 '블' -> 'ㅸㅡㄹ' -> '울' 이 되어 [셔울]로 바뀌고, 조선 말기에 ㅑ/ㅕ/ㅛ/ㅠ의 상당수가 ㅏ/ㅓ/ㅗ/ㅜ로 바뀌면서 [셔울]은 [서울]이 된 거죠.
이처럼 서울의 '울'은 조선 초기까지의 '블(ㅸㅡㄹ 포함)'이 변화한 것이기 때문에 먼 고대부터 울타리를 의미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네, 현재 교과서에서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요.
그러나 서라벌이 서울이 되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지요.
다만, 역사학사들이 그렇게 추측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백운이 나름대로 새로운 결론을 도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누구나 스스로 판단할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맞다고 하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고 개연성의 여부를 판단하여 결정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개연성이 전혀 없이 일방적인 주장만 하고 있다면 수없이 많은 도전에 직면할 것입니다.
@백운 거사 서라벌(徐羅伐)은 서벌(徐伐), 서나벌(徐那伐), 서야벌(徐耶伐) 등으로도 썼으며 삼국유사에서는 이를 국호라고 하고 있지요.
그러니 서울이 반드시 서라벌에서 왔다고 추측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만약 터키 사람들에게 서라벌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면 그들은 왕이 사는 궁전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투르크어로 사라(sara)는 궁전을 뜻하고, 벌(bol)은 많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투르크어에서 보면 서라벌에서 결코 서울이 나올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서라벌(徐羅伐)은 음사한 것이기에 정확한 뜻을 알수 없지요.
@백운 거사 그래서 저는 서라벌(徐羅伐)을 새라부리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새라(新羅)에 사는 부리(夫里)라는 뜻이지요.
즉 새라부리가 새라불을 거쳐 서라벌이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부리는 불을 다스리는 무리라는 뜻의 불리(不里, 火里)에서 왔지요.
이 불리가 부리(扶里 夫里)을 거쳐 지금은 부여(夫餘 扶餘)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