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간의 소치올림픽 '못다 한 이야기'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을 끝내고 24일(한국 시각)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그 어느 때보다
도전과 노력, 땀과 눈물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운 대회였다. 순위와 관계없이 뜨거운 응원과 따뜻한 격려가 선수들에게 쏟아졌다. 본지
기자들은 대회가 열리기 한 달 전부터 전국을 누비며 이번 대회 출전 선수들과 그 주변을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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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아름다운 미소를 평창에서도 볼 수 있을까?’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24일(한국 시각) 러시아 소치 피슈트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함께 손을 잡고 신명나게 스타디움을 뛰어다니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심석희·공상정·김아랑·박승희·이상화·김연아. /Getty Images 멀티비츠
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만큼은 아니겠지만, 취재에도 무모한 도전과 끈질긴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한 명의 선수가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을 펼치기까지 그 뒤에는 선수 본인의 무한한 인내와 의지, 주변 사람들의 끝없는 희생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면 사정으로 다 싣지 못했던 소치올림픽, 그 못다 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아들 스케이트화까지 직접 만든 김철민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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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철민은 스케이트 마니아였던 아버지 덕분에 7세 때 스케이트를 시작했다. 생후 3개월 된 김철민의 발에 아버지가 스케이트를 신겨놓은 모습. /김철민 가족 제공
[팀추월 은메달의 숨은 공신]
이승훈 등 빙속팀 9명 신발 제작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팀 추월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이승훈(26·대한항공), 주형준(23), 김철민(22·이상 한체대)은 모두 한 사람이 만들어준
스케이트를 신고 달렸다. '쎈 스포츠'의 김대석(52)씨. 선수들 사이에 '스케이트 아저씨'로 불리는 그는 김철민의 아버지다.
안양빙상장에서 스케이트 제작 공방과 판매점을 운영하는 김대석씨는 4년 전 밴쿠버올림픽 때도 이승훈과 모태범(25·대한항공)의 스케이트 부츠를 제작했다. 이번 대회에는 스피드스케이팅 대표 선수 중 9명의 스케이트를 만들었다.
김
씨는 초등학교 때 스케이트 대회를 보러 갔다가 폭발적인 스피드에 매료됐다. 농사짓던 아버지를 졸라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었던
스케이트를 산 뒤로 40년 넘게 스케이트를 즐겨온 마니아다. 아이들에게도 빨리 스케이트를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태어난 지 석 달 된
아이 발에 스케이트를 여러 번 신겨 보았다고 한다.
아들 철민이 일곱 살, 딸 담민(19·쇼트트랙 선수)이 네 살
됐을 때 처음으로 목동 아이스링크에 데려가 스케이트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김씨는 매일 아이들을 훈련장에
태워다주며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안양에서 금형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2000년 공장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스케이트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팀 추월 대표팀을 선두에서 이끈 맏형 이승훈은 밴쿠버올림픽 이후 스케이트를 외국 제품으로 바꿨다가 부진에
빠졌다고 한다. 지난해 김씨가 네 가지 종류의 스케이트를 만들어주고 테스트를 거쳤다. 작년 7월 최종 선택된 스케이트는 쇼트트랙
훈련을 겸하는 이승훈에게 맞도록 발목 부분을 다른 선수들보다 높게 만들었고, 부츠 무게를 밴쿠버올림픽 당시(490g)보다 150g
더 가볍게 해 부담을 줄였다.
모태범, 지금까지 먹은 뱀만 1000마리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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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태범은 어릴 때부터 ‘빠른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다. 사진은 어린이용 장난감 목마를 타고 놀고 있는 모습. /모태범 가족 제공
[빠른 건 뭐든 좋아하던 '모터범']
어릴 때부터 말·자전거 등 좋아해
이
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모태범(25·대한항공)의 집에는 두 번이나 찾아갔다. 모태범이 사는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일대는 마치 '모태범 마을' 같은 느낌이었다. 마을 입구부터 '금메달 마을'이라고 새긴 커다란 비석이 서
있었다. 모태범의 집 대문에도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마크가 붙어 있었다.
모태범의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가
열렸던 지난 10일엔 동네 주민들이 모태범의 집에 모여 함께 응원했다. 모태범이 4위로 경기를 마무리하자 아버지 모영열(56)씨는
"아들이 외로워 보인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틀 뒤 1000m 경기에서 모태범이 12위로 결승선에 들어왔을 땐 함께
모여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아버지 모씨와 동네 주민들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잠시 후 아버지 모씨는 "태범아, 수고했다"며 아들을
격려했다.
어릴 때부터 유독 '빠른 것'을 좋아했다는 모태범의 사진첩에는 말이나 자전거, 자동차를 타고 있는 사진이
많았다. 여덟 살 땐 키에도 맞지 않는 어른용 자전거를 억지로 타고 다녔고, 초등학교 때는 롤러 스케이트, 중학교 때는 사이클과
MTB자전거를 사달라고 아버지를 졸라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원이던 자동차는 아버지가 아들의 안전을 위해 미루고 미루다가
4년 전 밴쿠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자 "약속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사줬다고 했다.
아버지 모씨는 "운동하는
아들이 힘을 내는 데 도움 된다는 음식은 뭐든지 찾아 먹였다"고 했다. 한약은 물론이고 개구리, 산삼, 용봉(자라)탕, 옻닭,
포천 이동갈비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해마다 달여 먹인 뱀을 다 합하면 1000마리쯤 될 거예요. 살모사,
까치독사 등등 종류 가리지 않고 잘 먹었어요. 태몽에 구렁이가 나와서 그런가…."
강릉 집 찾아가 발견한 '안현수 키즈' 심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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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안현수 토리노 동계올림픽 제패 기념 한국체대 총장배 꿈나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심석희(오른쪽)가 안현수(가운데)와 함께 찍은 사진. /심석희 가족 제공
[심석희·이상화 가족과의 숨바꼭질]
경기에 영향 줄까 작은 행동도 조심
올
림픽 출전 선수의 부모를 경기 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신들의 인터뷰 내용이 알려져 자녀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을까 봐
매우 염려했다. 경기가 다 끝나고 난 뒤 기사를 쓰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간신히 몇 마디 나눌 수 있었다.
이상화의
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를 앞두고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이상화의 집을 찾아갔을 때도 처음엔 문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버지 이우근(57)씨는 이상화의 경기가 끝나기 전까지 모든 매체의 인터뷰 제의를 거절했다. 아파트 앞에서 '뻗치기(취재 대상을
무작정 기다리는 언론계의 은어)'를 하던 기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잠시 내려온 어머니 김인순(53)씨를 설득해 이상화가
하지정맥류로 고생해왔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쇼트트랙에서 금·은·동메달을 거머쥔 심석희(17·세화여고)의 아버지
심교광(51)씨도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인터뷰하지 않겠다"고 했다.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날도 많았다. 경기 당일 집으로
찾아가도 나타나지 않아 기자들의 애를 태웠다.
경기가 없는 날 다시 찾아간 집에서 심석희의 오빠 명석(22)씨를 만날
수 있었다. 한참을 설득해 들어가 본 집 안에는 심석희의 메달과 트로피, 스케이트와 각종 장비가 가득했다. 여고생 심석희의
방문에는 '출입금지. 들어오기 전에 노크하세요'라는 새침한 문구가 적혀 있었다. 심석희가 어린 시절 살던 강릉 집까지 찾아가는
노력 끝에 결국 심석희의 아버지와 오빠,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심석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가장 먼저 할머니 산소에 가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한다. 맞벌이에 바쁜 부모 대신 심석희를 키웠던 할머니 김연옥씨는
손녀가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2년 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심석희를 훈련시키려고 데리러 온 코치를 집에서
내쫓기도 했을 정도로 처음엔 손녀가 힘든 운동을 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심석희가 국가대표로 선발됐을 때 누구보다 더 기뻐했다고
한다.
징크스 안 생기게… 일부러 미역국 먹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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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치 동계올림픽에 참가한 ‘빙상 삼남매’ 중 둘째 박승희(왼쪽)와 막내 박세영이 유년 시절 서로 다툰 후 손을 들고 벌 받는 모습. /박승희 가족 제공
[박승희·김연아를 지켜준 부모님들]
김연아 아버지 "딸 이제 행복해졌으면"
쇼
트트랙 2관왕 박승희(22·화성시청)는 밝고 씩씩했다. 500m 결선에서 두 번 넘어지고도 벌떡 일어나 악착같이 달렸다. 동메달이
확정되자 "그래도 저 잘한 거죠?"라고 인터뷰했다. 무릎을 다쳐 1500m 경기를 건너뛰었지만 남은 두 종목(3000m
계주·10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박승희는 작년 세계선수권 3000m 수퍼파이널에서 왕멍(중국)의 고의 반칙
탓에 넘어져 종합 2위를 기록했다. 이 반칙만 아니었어도 박승희는 종합 우승을 차지해 올림픽 대표 선발전을 면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박승희는 그때도 경기가 끝난 지 10분 만에 어머니 이옥경(48)씨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엄마, 나 괜찮아.
대표 선발전 1등 해서 상금 500만원 따지 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박승주(24), 남자 쇼트트랙
박세영(21·이상 단국대)까지 국가대표 삼남매를 키운 어머니 이씨는 아이들이 징크스를 만들지 못하도록 경기 당일 아침 일부러
미역국을 끓여주고 바나나를 먹인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가르쳤다"고 했다.
김연
아(24)의 아버지 김현석(57)씨는 피겨스케이팅 경기가 모두 끝난 21일 무척 피곤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큰딸
애라(27)씨와 함께 집에서 밤을 새워 김연아의 경기를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가 90분 동안 담담하게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연아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편지'를 작성했다.
그날 오후 10시쯤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주변이 떠들썩했다.
그동안의 부담을 털어내고 지인들과 기분 좋게 술 한잔 하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 김씨는 "연아가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돼서 아빠로서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본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커플들의 한 컷'
이번
올림픽에서는 연인·부부 등 커플들의 러브스토리가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러시아 국적으로 쇼트트랙 3관왕에 오른 안현수(29)와
그의 러시아 생활을 함께해온 부인 우나리(30)씨, '빙속 여제' 이상화(25·서울시청)와 그를 응원하기 위해 특별 휴가를 받고
소치로 날아온 남자 친구 이상엽(26) 중위(해군특수전전단 소속 정훈장교), 여자 컬링팀 주장 김지선(27)과 그의 남편인 중국
남자 컬링팀 부주장 쉬샤오밍(30) 등이 그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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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한국 시각) 막을 내린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다양한 ‘러브 스토리’가 또 다른 화제였다. 본지가 단독
보도한 ‘빙속 여제’ 이상화의 남자친구 이상엽(왼쪽 사진)씨, 여자 컬링팀 주장 김지선과 남편 쉬샤오밍(중국 남자 컬링팀
부주장)이 만남을 갖는 모습(오른쪽 아래 사진),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 부인
우나리씨와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오른쪽 위 사진)도 본지 카메라에 잡혔다. /주완중 기자
커플들의 '열애 현장'은 본지 주완중 기자의 카메라에 생생하게 포착됐다. 주 기자는 안현수가 지난 15일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에서 이번 대회 첫 금메달을 따낸 뒤 우씨와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단독으로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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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경기에 출전한 이상화를 응원하러 경기장을 찾은 이 중위의 모습도 단독으로 포착했다. 안경이 깨지는
바람에 맨눈에 망원 카메라를 대고 관중석을 훑던 주 기자가 러시아 사람들 사이에 말없이 앉아 있던 이 중위를 발견한 것이다. 아주
먼 거리였지만 주 기자와 이 중위의 눈이 여러 차례 마주쳤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인 14일 경기장 밖에서 잠시 만난 김지선과
쉬샤오밍의 사진도 주 기자가 만남을 예상하고 경기장 밖으로 김지선을 따라 나가 단독 촬영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