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산 댁.
삼태기만한 달동네에 홍합처럼 다닥다닥 붙어사는 그 마을은 가난한 농촌이었다.
돌산 댁은 몸 배에 앞치마 두르고 머리엔 수건 쓰고 보리밥 접심을 준비한다.
흉년에 보리 고개라 채 덜 익은 풋보리를 잘라다가 가마솥에 삶아 햇빛에 말린다.
쿵덕쿵덕 절구질에 보리 알갱이 껍질 벗겨지고 붉어지면 치로 까부르고 다시 찧고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연신 절구질이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는데 언덕 위 고목나무에선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에 구멍을 뚫느라고 콩 콩 콩 콩 연신 콩콩거린다.
돌산 댁 절구질 하느라 쿵덕쿵덕 딱따구리는 나무 찍느라 콩 콩 콩 콩 절묘한 박자가 골짜구니를 울려댄다.
때마침 까치 두 마리 울타리에 앉아 까까 거린다.
마루에 걸터 앉은 시아버지 흐뭇해서 입이 바지게만큼 벌어지고 방귀를 뀌느라고 뿡뿡거리니 마루바닥이 들썩거리며 울려댄다.
다 찧은 보리쌀을 가마솥에 안치어 나무 가지 꺾어 아궁이를 쑤셔가며 불을 지핀다.
매캐한 연기가 콧구멍을 타고 들어가 골머리를 때리는지 재채기를 하다가 냄비를 떨어뜨렸다.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한바탕 악을 쓴다.
“늬는 뭐땀시 고로콤 냄비럴 떨어뜨리고 했쌌냐?”
“애가 방정맞아 염병 지랄발광얼 허고 자빠졌내”
“늬 서방언 논바닥에서 비오듯 땀얼 흘리는걸 모리냐?”
“늬 친정이서 뭘 배아갔고 시집얼 왔당가?”
“그러고도 목구멍에 밥이 들어가냐?”
한바탕 퍼부어대는 시어머니의 악따구리에 눈물 콧물 흘려가며 설설 긴다.
돌산 댁 흐르는 눈물 적삼자락으로 훔치며 고추보다 매운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다.
배고프다고 칭얼대는 어린새끼 젖 물릴 틈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텃밭으로 간다.
자갈밭에 감자 캐고 팔뚝만한 가지 따고 어린새끼 고추만한 풋고추 한 움큼 따가지고 소쿠리에 담아서 발바닥에 담 띠가 나도록 달려온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몽당 숟갈로 감자껍질 긁어 잘게 썰고, 풋고추 도마에 올려놓고 뚝딱 뚝딱 칼질을 한다.
후라이팬에 기름, 소금 두르고 달달볶아 접시에 담는다.
팔뚝만한 가지를 밥솥에 쪄가지고 풋고추와 배때지 허연 쪽파를 도마에 잘근잘근 다져서 간장 넣고 양념장에 버무린다.
울타리에 넝쿨 뻗어 올라가는 호박잎 한 움큼 따가지고 깨끗하게 씻어 밥솥에 살짝 진다.
뒤뜰 장독대에 항아리 뚜껑 열고 곰삭아 숙성된 누런 된장을 퍼서 종자기에 담는다.
때마침 호랑이가 장가가는지 소나기가 한바탕 퍼붓더니 금새 햇볕이 쨍쨍하다.
소나기가 지나가니 뻐꾹새가 뻐꾹 뻑꾹 뻑뻑꾹 노래를 불러대고 발정 난 꾀꼬리가 암놈한데 환심 사느라 목청을 가다듬고 한 곡조 뽑아댄다.
텃밭에 파릇파릇 소담스레 너울대는 상추 뜯고 쑥갓 뜯어 옹달샘 맑은 물에 살랑살랑 깨끗하게 씻어 사리 살살 대바구니에 담는다.
애호박 잘게 썰어 뚝배기에 두부 넣고 끓이는데 보글보글 냄새가 진동하여 이웃 할멈 울타리 넘어다보며 목젖 들어난다.
밥솥에 쌀 함 줌 얹어놓은 솥단지를 열어놓고 시 할아버지 시할머니 밥 먼저 뜨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밥을 뜬다.
남편과 시동생 다섯 그릇, 시누이 세 그릇, 모두 11그릇 뜨고 나면 돌산 댁 밥그릇은 언제나 꽁보리밥 절반아래 밑돈다.
마당에 멍석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입들을 하마같이 벌려가며 밥들을 먹는다.
뒤늦게 멍석 귀퉁이에 쭈그려 앉은 돌산 댁 시아버지 부끄러워 조심조심 호박 잎 쌈을 싸서 입으로 우겨넣는데 갑자기 골목 엿장수 가위질에 찌그러진 냄비주고 엿 바꾸어 새끼들 주고 싶어 한눈팔다 방귀가 뽕 하고 튀어 나왔다.
양다리를 오므리고 조심조심 한다는 게 그만 산통이 깨지고 말았다.
시아버지 헛기침에 놀란 닭들이 홰를 치고 살괭이 같은 시어머니 찢어진 눈으로 흘겨댄다.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 다물고 있는데, 시누이 새침하니 방귀냄새 독하다고 토라져서 돌아앉는다.
돌산 댁 하루하루가 종종걸음 저녁이면 녹초인데, 어느 틈에 생겼는지 밭두렁에 고구마 열리듯 새끼들 다섯에다 막내가 젖 달라고 징징거린다.
첫댓글 여자의 일생을 보았습이다.
어찌 남편은 꿀먹은 벙어리 였을까!
시집 오지 말지..^^
건강하시죠. ^^
저쪽집에서도 가끔 뵈었으면 합니다. ^^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