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5일(화)
* 시작 기도
(요 15:7, 16)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주님...
주 안에 있는 자들이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님이 주신다고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한다는 말은 나의 정욕과 욕심대로 내가 필요한 것을 아무 것이나 구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주님 안에 있는 자라면 그가 구하는 것은 정욕과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진짜 주님이 주기 원하시는 아버지의 뜻을 구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도무지 얻을 수 없는 영생입니다.
그 영생을 구할 때 주님께서는 기꺼이 주십니다.
그것이 복음의 능력임을 믿습니다.
하여 오늘도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나의 정욕으로 살려고 하는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게 하소서.
주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자는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생의 친구임을 믿습니다.
주님과 친구 사이라니요?
이게 말이 되나요?
죽어야 마땅한 자를 친구라 불러주시니 언감생심 두 손으로 입을 가릴 뿐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민 4:34-49
제목 : 30세부터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참여하여
34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고핫 자손들을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계수하니
35 삼십 세부터 50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
36 곧 그 종족대로 계수된 자가 2,750명이니
37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고핫인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이니라.
38 게르손 자손 중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39 삼십 세부터 50세까지 회막 봉사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라.
40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2,630명이니
41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회막에서 종사하는 게르손 자손의 모든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42 므라리 자손의 종족 중 그 종족과 가문을 따라 계수된 자는
43 삼십 세부터 50세까지 회막에서 복무하고 봉사할 모든 자라.
44 그 종족을 따라 계수된 자는 3,200명이니
45 이는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므라리 자손들의 종족 중 계수된 자니라.
46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레위인을 그 종족과 조상의 가문에 따라 다 계수하니
47 삼십 세부터 50세까지 회막 봉사와 메는 일에 참여하여 일할 만한 모든 자
48 곧 그 계수된 자는 8,580명이라.
49 그들이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모세에게 계수되었으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이 계수되었더라.
* 나의 묵상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레위 자손을 그 종족대로 30세 이상 50세까지 회막에서 일할 수 있는 자를 계수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모세와 아론과 회중의 지도자들이 그 수를 세었더니 고핫 자손은 2,750명 게르손 자손은 2,630명 므라리 자손은 3,200명으로 세 종족 곧 레위 자손의 수는 도합 8,580명이었다.
이들은 그들이 할 일과 짐을 메는 일을 따라 계수되었으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계수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요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제의 장소인 성막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특별히 레위 지파를 택하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 중에서 가장 귀한 부분인 30세에서 50세를 자기 자신을 위하여 쓰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 쓰도록 하셨다.
레위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
주를 위하여 인생의 한 토막, 그것도 가장 귀한 중간토막을 드린 이들이 바로 레위인들이다.
나는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한 분이 생각난다.
장미꽃이 필 무렵에 교회적으로 큰 슬픔에 빠진 일이다.
지금부터 8년여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것은 사랑하는 오경석장로님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신 일이다.
물론 70년의 인생을 마감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버지 품에 안기셨으니 이는 기쁨과 감사의 일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한없이 슬프고 또한 마음이 아픈 것은 감출 수가 없었다.
장로님은 경남 함안에서 대규모로 당근 농사를 짓는 농부다.
점심을 권사님과 함께 드시고 밭을 일구러 트랙터를 몰고 나가셨다.
밭을 갈려면 제법 높은 뚝으로 된 자갈길을 지나가셔야 하는데 앞에서 오는 트럭을 보고 비켜주려다가 그만 오른쪽 바퀴가 너무 밖으로 나갔는지 그대로 30m 언덕으로 굴러서 당신이 몰던 트랙터에 깔려 돌아가셨다.
갈비뼈와 두개골 파열로 그 자리에서.....
그런데 장로님 앞에 있던 트럭 운전사는 트랙터를 보고 멀리서 서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뚝길은 차 두 대가 비켜가기가 힘들 정도로 좁은 길이므로 비켜갈 수 있는 지점에서 트랙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잠시 한 눈을 팔다가 앞을 보니까 트랙터가 보이지 않아서 달려가 보았더니 트랙터가 언덕으로 굴러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그분은 얼른 트럭에서 내려 장로님께 내려가 보았더니 트랙터에 깔려 있어서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어 곧바로 119와 112에 신고해서 구급대원과 경찰들이 와서 인공호흡을 하였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그리고 구급차로 장로님을 싣고 병원으로 후송하였다.
교회 성도들은 장로님의 부음(訃音)을 듣고 모두 정신이 없이 할 말을 잃은 상태다.
나 역시 장로님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고 잘 믿겨 지지도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나흘 전 주일 오전에 함께 예배하고 오후에는 전교인 체육대회를 하면서 어린 아이와 같이 그렇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시다니.....
장로님은 부산의 모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65세에 조기 은퇴를 하시고 섬기던 교회를 나와 우리 교회로 와서 5년 가까이 함께 섬기셨다.
장로님이 기도하실 때 하셨던 한 마디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것은 ‘늘행복한교회는 이 시대에 희귀한 교회입니다.’라는 말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런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여기 와서 참 복음을 듣게 되었고 부족하지만 전교회적으로 성도들이 말씀묵상과 함께 복음으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 모습에 장로님의 마음이 감동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기도하실 때 ‘늘행복한교회는 희귀한 교회’라고 주님께 올려드린 것이다.
나는 그동안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면서 우리가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세상이 실상이 아니다.
이 세상은 모형이요 그림자이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것이다.
그러니 주님 안에서 소풍 나온 이 짧은 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살자.
그리고 우리의 진짜 인생, 삶의 실상이요 실체인 그 나라를 날마다 소망하며 살 것을 강조하였다.
마가복음 12:25-26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었지만, 하나님 편에서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진짜로 완전하게 살아 있는 산 자이다.
따라서 비록 허망하게 돌아가셨지만 오장로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계신 분이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오경석의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나는 믿는다.
아픔과 찢어지는 고통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잠시일 것이다.
복음이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실제이기에 오늘도 아들의 생명 안에서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강으로 감사하며 일어설 수 있다.
우리의 진짜 나라는 이곳이 아니라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 산책을 하면서 이곳 베트남 하이퐁에 활짝 핀 장미꽃을 보았다.
문득 오장로님이 생각났다.
사울 왕에게 쫓기는 다윗의 고백처럼 정말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다.
그런 죽음을 염두에 둔 삶은 결코 허투루 살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죄를 지을지라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주님의 은혜를 구한다.
거기에 영원한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고난을 당할 때가 있나이다.
그 고난은 결코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온전히 세우는 주님의 선물임을 믿습니다.
다윗이 고백한 것처럼 ‘나와 죽음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라고 한 말을 다시 새기는 기회가 되게 하옵소서.
육신적으로는 견디기 힘든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고통에 매몰되지 않게 하시고 주님을 힘입어 넉넉히 일어설 수 있는 주의 자녀들 되게 하소서.
목사인 나도 더욱 아버지의 품을 사모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