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직의 소회(所 懷)
당시 근무했던 '시흥2동 사무소'---지금은 시흥동어린이집
나는 1976년 2월22일 서울시 공무원으로 출발을 하였다
한마디로 공무원이 어떠한 일을 한지도 모르고 출발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미 1972년도 인천교육대학에서 초등교사 자격을 취득하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교육계 쪽으로 가기를 바랬다.
원래가 성격도 그렇고 ,아버님의 인품으로 봐서도 교사가 제 성격에 더 적격일것
같은 생각이었다. 경기도 교육청에서의 초등학교 교사 발령은 얼른 나지는 않고
노부모님을 모셔야 되는 처지에 있었기에 마음이 바뻤다.
그래서 중고등학교 교사 자격증에 대한 도전, 그것도 여의치 않아 ‘행정공무원’으로
방향을 잡고 노력을 해왔다. 말이 노력이지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 왔다.
그 때 공부를 했던 책 중에 ‘육법전서’가 지금도 제 서가(書架)에 꽂혀있다.
이번 이사 때도 아마도 이 책은 필연코 일착으로 가지고 갈 것 같다.
내가 서울 올라와서 해보고 싶었던 공부이기 때문에,지금도 어떤 때는 가끔 이 법서를
떠들어보곤 한다.
법조항 밑에 빨간줄 파란줄 쌔까맣게 줄이 그어져 있다. 어떤 목적을 달성을 하고
못하고가 문제가 아니라 .내 노력의 소산이며 내 삶의 편린들이다.
이렇게 하여 당초의 교사의 꿈을 접고 행정공무원을 향해서 부단히 약 2년정도 공부를
하였으나 얼른 목표를 달성을 하지 못하고 서울시 공직의 길로 선택을 한 것이다.
최초의 부임지가 영등포구 시흥2동 사무소이다.지금은 금천구 시흥동일 것이다.
2013년 가을철에 이곳 공직의 첫출발을 같이 했던 동료하고 이곳 시흥2동쪽을
같이 찾아가기도 했다.
옛날 동사무소의 위치를 찾아가는데 전혀 알수가 없고 하여 물어물어 찾아가보니
노후화된 건물인데 ‘시흥동 어린이 집’으로 변모를 했다.
그때의 시흥2동 산8번지 ,산32번지 산동네의 판자촌 지대가 최신식 아파트로 변모를
하여 산속의 아담한 아파트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변모에 우리는 상전벽해
(桑田碧海)란 말을 가끔 쓰곤 한다.
같이 갔던 친우하고 아파트촌을 경유하여 약40여년 전에 직장에 출근하기 전에 그
산을 올랐던 ‘호암산’을 같이 올랐으며 ,일명 칼바위도 옛날그대로 자리를 하고 이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서부 이천동,아니면 한강변의 저 지대에서 거주하며 한강변의 여름
철 장마철이면 홍수 피해를 입고 인명의 피해, 아니면 천막안에서 한여름을 지내야
하는 어려운 세대들의 집단이주를 해 놓은 지역이다.
그래서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의 동면이지만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시에 편입한 지역으로
서울시 시민이다.
이곳 시흥2동은 주 업무가 생활이 어려운 세대들의 밀가루를 나누어 주는 일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새마을사업’의 일을 하는 것이 이 지역 주민들의 주된 노동이다.
이새마을 사업의 노동으로 가정경제를 꾸려가는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어려운이웃들이
다정하고 소박하게 살아가며,쪽방같은 판자촌에 주거생활을 하고 있으며,교통이라고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경기도 시흥군의 동면인 일부지역을 편입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107번 옥성운수 뻐스를 이용해서 독산동을 경유하여 지나오곤 하였다.
나는 오늘 이사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내가 이곳에서 근무하다가 ‘구자춘’서울시장시절의
표창장 하나를 발견하다가 이글을 쓰게 된 동기가 된 것이다.
1977년 7월7일의 경기도 시흥지역 그리고 안양천변의 범람과 시흥2동 산동네의 폭우에
산사태가 나서 5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 했으며,전국적인 물자구호를 받어가면서
근무했던 추억이 새삼스러워 이글을 정리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첫댓글 직장 선배님을 만나니 반갑기도 합니다요.
저 역시도 늦게 들어갔지만 선배님 역시도 늦게 들어 가셨네여~~
으쨌든둥 반갑습니다요.
저는 주로 본청에서만 근무하여 서로 잘 모르겠지만도 같은직장 선배님이시라 남다르네요~
반갑습니다
이제 나이를 들어가니 옛젊은시절이 자꾸 추억으로 뇌리를 스치고합니다. 이글은 '서울시 시우회'카페에
문인회도 올렸습니다.서울시 시우회 문학회 이사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만장봉 아하~ 그렇습니까?! 박종길사무국장님이신가요? 그분 아직도 계시는지요?
만나시면 안부나 전해 주사이당. 반갑습니다.
@붕이 서울시 문학회 사무국장님은 '전오식'씨이며 , 현 회장님은 한길수씨입니다
10월달에 시화전을 연답니다
@만장봉 그렇군여.
그땐 가서 구경도 허고 옛 동료들도
만나봐야겠군..
감사 합니다.
여기서나마 자주 뵙고요.
@붕이 저는 나주향토문화연구회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영산강변의 영모정과 백호문학관이올해 개관했습니다
시간이 있으시면 한번답사를 권유합니다
@만장봉 아~녜.
축하 드리고
짬되면 내려가 볼께요.
건강도 하시고요.
@붕이 아~~~ 전 아무래도 돗자리 깔아야 할 듯 ㅎㅎㅎ
붕이님께서 전직 공무원이었을 같다는 제 촉수가 맞네요..ㅎㅎ
@고운물빛 이쿠야~~! 들켰네~ㅎㅎ 그리하야, 밴뎅이 같을때가 있다우~~ㅎ
추억은 참 아름답습니다.
아픈일일지언정 지나고 나면 더 마음이 가고...
옛동료들과 첫부임지를 방문하셨을때의 그마음..
감회가 새로울 그마음..충분히 이해가 갑니다..노래 가사처럼..
세월이 흐르다보니 그서울은 이제 아름다운 서울이 되었군요..
만장봉님..추억의 글 감사합니다!
해방 이후의 세대로써 '농경시대'를 탈출인지,먹고 살길이 없어서인지 서울로 상경하여 서울시 공직을 마감하고
나니 이제는 자꾸 옛추억이 새롭고 청춘을 다바치고나니 할이야기라고는 이것뿐인것 같습니다.
60년대 경제성장의 주역이며 스스로 개척한 세대라고 보아도 과히틀리지는 않을것 같습니다.
훌륭하신댓글에 머리숙여 감사합니다
그동안 애 많이 쓰시고 또 보람도 많이 쌓으셨을 것 같네요.
고운 글 잘 읽었습니다.
아이구 감사합니다
부족한글에 힘을 주시니............
보람도 조금은 느낌니다.고맙습니다
만장봉님 1972 년 교사자격취득
저는 2012 년(63세) 능력개발훈련교사2급 취득했으니 저보다
40년 선배님이시네요.
필수자격은 아니지만 동료가 권하여 응했답니다.
도전하는 자는 살아있다.
그리고 젊은이다. 라는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젊은 만장봉님 화이팅~~~~
아이구 저를 취겨 세우시는 훌륭한 님이 더훌륭하십니다
63세에 '능력개발훈련교사2급이라?
열심히 노후를 구가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노년의 시간이 아름다운 청춘의 추억으로 잔잔히 물들어 갑니다.
다음 회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힘이없어지는 노후에 이런추억이라도 먹고 사니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하십니다.................
훌륭하다보기보다 그냥젊음을 글허게 보냈습니다
발령이 나지 않아 초등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들어선 공직자의 길.
그 잔잔한 회상의 시간에
저도 선생님과 함께 마주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잔잔하고 차분한 댓글에서 저에게 힘을 주시는군요
저도차를 한잔 하면서 즐거운 답글로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장봉님의 훌륭한 삶의향기가 느껴집니다.
남은 여생도 늘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합니다.
'낭주' 방장님 감사합니다
훌륭한 삶의 향기보다 그냥청춘을 글허게 보냈기에 회상을 해보면서
시간을보내고 있습니다.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댓글에 감사드림니다
저는 봉사라고 생각을 하지않았습니다
직장자체가 항상주민들과 함께하고 있어서 일을 하면서도 다수주민을 위한족으로
일을 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니 그래도 보람이 있었던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감사합니다
젊은날 열시미 놀러다닌 저와 비교 되군요....그래서 늘그막이 못다한 일한다고 ,,,요즘 욕마이봅니다...
칭구야!
훌륭하구나~~
걍 평범하고 후덕한 쌤으로만 보였는데..
(첫 인상이 장난 꾸러기처럼 순수해 보였거든..)
젊은날을 아주 열심히 살았구나
아주 옛날 친구따라 갔었던
시흥동은 미로 그 자체였었는데..
열심히 살아오셨네요.
행복한 삶이 계속 펼쳐지기를 바랍니다.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