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품성 예수의 제자들의 기적같은 변화 e글2글 ・ 2026. 4. 1. 6:28 URL 복 본문 기타 기능
십자가 사건후에 예수의 제자들의 180도 변화는 젊은 시절 저에게 감동 보다는 오히려 신앙 생활을 뒷걸음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었다. 현실에서는 그와같은 극적인 변화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제자들의 급격한 변화는 그의 스승 예수의 부활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 맞습니다.
많은 크리스토인들, 그리고 심지어 크리스토를 믿지 않는 역사학자들까지도 이러한 제자들의 급격한 변화는 무언가 이들의 마음을 바꾸어내는 극적인 이벤트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와 함께 있는 3년반의 생활에서 이미 세 번이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적을 보았다. 또 수많은 병자들이 기적같이 낫는 것을 보았고 보리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을 먹이는 이적, 폭풍우가 잠잠케 되는 기적, 물위를 걸으시는 이적 그리고 변화산에서의 기적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적과 이적들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
그런데 그때는 변화하지 않았던 삶이 그의 스승 예수의 단 한 번의 기적(부활)만으로 11명의 제자들의 삶이 순식간에 그렇게 변화할 수 있을까요?
예수를 따라다니고 예수의 이적을 직접 보고 예수의 부활을 직접 보았던 제자들이 쓴 생생한 성경의 기록은 그들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의 부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부활, 그리고 나사로의 극적인 부활을 직접 눈앞에서 보았슴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들의 스승이 그렇게 가르쳤던 예수가 돌아가실 것이고 3일만에 부활할 것은 오히려 믿지 못했다는 것을 쓰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집중적으로 들었던 제자들은 믿지 않았지만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마태복음 27:63) 라고 오히려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180도 바뀐 삶은 영화같이, 드라마 같은 이야기처럼 저에게는 다가왔었다.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온)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로마)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가 말하되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오른쪽에, 하나는 주의 왼쪽 앉게 명하소서 ~~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누가복음 22:22-24절 - 예수님과의 마지막 만찬에서의 다툼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온) 인자는 이미 작정된 대로 가거니와 그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저희가 서로 묻되 우리 중에서 이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더라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마가복음 9:28절 - 변화산에 오르지 못한 제자들이 시샘으로 인하여 귀신을 능히 쫒아내지 못함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마가복음 9:31-34절 - 가버나움으로 가는 노상중의 쟁론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온)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쌔 제자들에게 묻되 당신들이 길 가면서 당신들이 길 가면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되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위에 오신 진정한 목적인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한 이때까지도 서로 누가 크냐 하고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 십자가 사건전의 제자들의 참 모습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6:56절 [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 골고다까지 따라 갔던 것으로 기록된 요한만 빼놓고 열제자가 다 도망감 마태복음 26:74-75절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 수제자인 베드로마저도 예수님을 저주하고 부인함 마태복음 26:40절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후의 제자들의 모습도 별반 다를바가 없어 보입니다. 요한복음 20:19절 [19]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 두려워하고 요한복음 20:27절 [27] 도마에게 말하되 당신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당신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 의심하고 마가복음 16:11-14절 [11]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서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 믿지 못하고 누가복음 24:37-38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가 말하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요한복음 21:3-4절 시몬 페트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 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줄 알지 못하였다 - 우리는 잠깐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이들의 상태가 어떠하였는지, 그리고 심지어는 그분이 다시 살아(부활)하신 이후에도 그들이 어떠한 상태로 있었는지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보았다. 그랬던 이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승천하신 후에 이렇게 변화하게 되었다.
역사가 에우세비우의 교회사와 외경등에는 12사도의 순교에 대한 사실적 기록들이 남아 있다. [페트로는 로마에서 전도하다 그의 아내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고 전합니다. 안드레는 그리스, 마케도니야, 고린도 등지에 가서 전도하다가 X형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했다고 했고, 12사도 중에 가장 먼저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야코보는 예루살렘에서 헤롯 아그리파 1세에게 칼로 목이 베여 순교했다고 합니다.
또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팔레스틴과 이집트, 시리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군중들로부터 곤봉과 방망이로 매 맞아 순교하였다고 하며,
요한은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전승에 의하면 끊는 기름에 던져지는 모진 박해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예수님의 12제자 중 유일하게 죽지않고 살아서 자연사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빌립은 도미니아누스 황제의 크리스토교 박해 때 소아시아 중서부 프리지아의 히에라폴리스에서 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바돌로메는 인도와 아르메니아에 가서 전교하다가 아스티야제스 왕에 의하여 참수를 당해 순교했고 ,
도마는 고대 이란에서 전도하였고 인도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던 중 창에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태 역시 유대를 순회하고 에디오피아에 가서 전도 하던 중에 참수 당했다고 하며, 시몬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페르시아에서 십자가형으로 순교했다고 합니다. 다대오는 페르시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활에 맞아 순교했다고 하고 끝으로 가롯 유다 대신 12사도에 들어온 맛디아는 카스피아 연안에서 박해를 받고 콜키스에서 돌에 맞고 참수형을 당했다고 합니다.]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다투던 제자들이, 자기들의 목숨이 아까와서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던 제자들이, 스승을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하던 페트로가, 의심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이 어떻게 저렇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그리고 기꺼이 순교자의 생애를 살도록 바뀌게 된 것일까요?? 그 첫 번째 이유는 예수의 기도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의 기도에 관하여 듣고 생각하고 묵상하다가 마음에 떠오른 감동을 이제 펴보일까 합니다. 누가복음 6:12~13절 입니다. "[12]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all night)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다음 날 아침 열두 제자를 사도로 임명하시기 직전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심지어 16절에 보면 나중에 당신을 십자가에 내어줄 유다까지도 제자로 임명하시는 것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때에 산으로 가셔서 하나님께 밤새도록 무엇을 위하여 기도하셨을까요? 우리들처럼 우리 가족만의 건강을 구하고, 우리 자녀들만의 축복을 구하고, 우리 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간청하고, 우리만 구원해 주고 축복해 주셔서 이 세상에서 어려움 없이 잘 살다가 천국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았을것이라고 여러분도 이미 아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다툴 그들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고 뿔뿔히 흩어져 도망갈 제자들을 위하여, 당신의 십자가 사건 이후 하늘로 되돌아 가신 후에 이 온 세상으로 이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려야 할 제자들을 선택하고 자신과 함께 할 시간속에서 메시아임을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또 그것을 온 세상 사람들과 후대를 위하여 나중에 기록해야 할 제자들, 그리고 최후에는 이 소식을 전하다 순교해야 할 제자들을 위하여, 심지어 자신을 제사장들에게 넘겨줄 반역자 유다를 위해서도 그분은 밤새도록 기도하셨겠지요? 3년반 동안의 자신과의 경험을 통하여 유다에게 유다 본연의 이기심과 야망과 욕심을 버리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과 품성을 배울 기회를 그에게 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팔 유다에게도 회개하고 자신의 삶을 따라 오도록 제자를 선택하던 이 기도에서 부터 시작하여 매일매일 아픈 손가락 유다를 위하여도 기도하셨겠지요....!! 마태복음 14:23 [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누가복음 21: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여기서 '쉬시다'는 의미의 헬라어는 단순히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교제와 기도를 포함한 영적 안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마가복음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새벽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누가복음 22장 31~32절 [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all of you)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예수는 제자들 모두와 특별히 페트로를 위하여 기도했고 말한다. 누가복음 22장31절에서 사단은 "너희를" 그러니까 예수의 제자들 모두를 시험하고 있다. 예수는 페트로를 위하여 "당신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 다른 번역에는 - "당신 믿음이 꺾이지 않기를" " 네 믿음이 없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 Luke 22:31-32 NIV “Simon, Simon, Satan has asked to sift all of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And when you have turned back, strengthen your brothers.” Luke 22:31-32 KJV And the Lord said, Simon, Simon, behold, Satan hath desired to have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thee, that thy faith fail not: and when thou art converted, strengthen thy brethren.
"Satan has asked to sift all of you as wheat~" " Satan hath desired to have you, that he may sift you as wheat~" 사탄은 제자들을 밀처럼 채로 흔들기 위하여 시험하기를 계속 요구(ask) 했는데 과거에 한 두번 요청하고 그만둔것이 아니라 (이런 경우에는 Satan asked to sift all of you) 이렇게 쓰여야 합니다. 그러나 "has asked 혹은 hath desired) 라고 쓴 것은 사탄이 과거에 한 두번 요청하고 그만둔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과거에서 부터 지금까지 계속 흔들고자 시험해 왔고 앞으로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이후에라도 계속해서 시험하고 흔들어서 넘어지기를 "desire" 바라고 그래서 욥에게 시험하기를 청구한 것처럼 끊임없이 예수님의 제자들과 베드로와 유다를 미래에도 시험하기를 하나님께 요청하고 바랬다는 뜻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날부터 이 제자들을 사탄이 타작마당에서 키질하듯 이렇게 제자들을 격렬하게 시험할 것을 아시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십자가의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최후의 만찬에서 조차도 누가 큰지 시기하고 다투었던 제자들이 키질하듯 흔들릴 것을 아시지 않으셨을까요? 자신을 버리고 목숨을 보존하고자 뿔뿔이 흩어질 제자들과 베드로의 실패속에서 제자들이 키질하듯 흔들릴 것을 아시지 않으셨겠습니까? 자신을 팔고 배반할 아픈 새끼손가락 유다가 키질하듯 더욱 격렬하게 흔들릴 것을 보시지 않으셨을까요? 부활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 숨고 믿지 못하고 의심하도록 키질하는 사탄에 의하여 속절없이 흔들릴 제자들을 보시지 않으셨을까요? 성경은 사실상 밤새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22장 32절에서는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I have prayed for thee, that thy faith fail not~)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도 유의있게 보셔야 할 것은 사탄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키질하듯 계속하여 흔들었다면 예수님께서도 그분의 제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계속하여 빠짐없이 쭉 기도하셨다는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마치 사탄이 제자들을 계속하여 빠짐없이 쭉 흔들었던 것처럼 그분도 그분의 제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계속하여 빠짐없이 쭉 기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듯이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수님, 베드로와 제자들이 믿음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듯이 저와 제 가족들이 믿음에서 꺾이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누가복음 22:40 그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고 마가복음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고 페트로에게 말하되 시몬아 자느냐 당신이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는 사탄이 제자들을 타작마당의 밀처럼 흔들어 시험해 왔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분의 마지막 사명을 앞두고, ( 마가 아버자 소유의 올리브기름 짜는 곳)겟세마네 동산(과수원) 에서 제자들과 페트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기를 원하셨다. 예수가 우리들을 위하여 기도해 오셨지만 우리도 예수의 제자들과 페트로처럼 기도하지 못하고 세상삶에 지쳐서 자면서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마태복음 26:40절 (막 14: 37)은 더 뭉클하기만 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자고 있었는데도 예수는 페트로에게는 특별히 더욱 "시몬아 자느냐 당신이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라고 안타까운 책망을 하였다. 사탄이 페트로를 무너뜨리기 위하여 채질하듯 그를 시험할 시간이 다가오는 이 시간에 예수는 그의 실패와 넘어짐에 더욱 애절한 관심이 많으셨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도 주변에서 넘어지고 실패하고 잠든 사람들을 보게된다. 그때 우리도 비난하고 정죄하고 뒤에서 험담하는 대신 예수처럼 애절한 관심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될 수 있다면 우리는 분명히 크리스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된 것 아닐까?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들의 변화는 드라마와 같은 변화는 분명 아닐 것이다. 땀 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탄원하셨던 예수의 기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기도가 이런 제자들의 변화를 이끌어 내었을 것이다. 2000년 전 제자들을 위해 기도한 예수가 오늘 저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우리의 삶에 극적인 변화가 오지 않을까? 예수가 (사람의 아들로 이 땅에온)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가 우리의 죄를 대신 죽기 위하여 왔다는 사실을 제자들처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먼저 되기를 다투었던 그들처럼 예수를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이용하려고 하는 우리들, 예수를 버려두고 뿔뿔히 흩어졌던 그들처럼 우리 자신을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시는 그분을 뒤에 남겨두고 세상으로 도망가고 숨기에 바빴던 우리들... 이제는 우리 안에 예수가 다시 부활하셔야 하지 않을까? 우리 속에 부활하신 그분을 만날때에야 우리도 제자들처럼 진정 변화한 제자들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를 위하여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탄원하시는 예수의 기도,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께서 지금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의 기도대로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낸 제자들이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 일수록 은혜 베푼 사람을 더욱 사랑하여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페트로로는 말할 것두 없고 예수의 제자들은 요한을 빼고 모두 그의 스승을 버리고 제 목숨 건지겠다고 도망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입장에서는 3년 반을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버림받은 배신과 배반일 것이고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으로 남아있었을 사건입니다.
그러나페트로의 경우에서 보듯이 예수는 배신과 배반으로 제자들을 정죄하고 비난하지 않았다. 부활후 예수의 제자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죄책감과 낙담에 바닥을 쳤을 제자들에게 자신의 죄가 용서 받았다는 기쁨과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는 다시 살아난(부활한) 스승에 대한 감동으로 가득차게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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