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단자
김성희
옷장 서랍 속에는 보물단지가 들어있다. 빨간 보자기에 싸여있는 남편과 나의 사주다. 결혼 한지 올 해로 20년 참 많이도 살았다.
남편이 가지고 온 함속에는 친정에서 보낸 사주와 남편의 사주가 들어 있었다. 남들은 함이 들어오면 다이아 반지에 목걸이며 값비싼 보석들이 들어 있다는데 내가 받은 함에는 빨간 보자기에 싸여있는 사주단자가 전부였다.
변변한 방한 칸 없이 시작한 결혼생활이었지만 서로의 믿음과 성실함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바르게 살아왔다. 가난한 우리는 돈에 마 추어 집을 얻을 수밖에 없어 이사도 자주 다녔다. 사글세방에서 전세방으로 그리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작은집을 장만했다. 헤아려보니 열 번도 더 이사를 다닌 것 같다. 세간살 이를 옮길 때마다 귀한 보물단지를 모시듯 사주단자를 챙겼다.
예전에는 중매쟁이를 통해서 결혼을 많이 했다. 중매결혼에는 서로의 사주를 보고 궁합이 맞아야 결혼이 이루어 질 수가 있었다. 요즈음 결혼문화는 많이 변화하여 순서도 뒤죽박죽 이고 사주단자를 보내는 자체도 생략하고 있다. 옛날처럼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이 많다보니 궁합을 따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그러다보니 사주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일반화 되어 가는 것 같다.
결혼을 약속하면 사주단자가 오고간다. 처음엔 사주단자를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히 여기다가 결혼이 끝나고 나면 사주단자가 어디에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사주단자가 뭔지도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부부의 연을 맺어 자식 낳고 늙어 죽음이 부를 때 까지 서로 아끼고 지켜주기로 한 혼인증명서와 같은 것이 사주다.
부모님의 세대 우리의 세대에는 그나마 풍습이 남아있지만 우리 자식들의 세대에는 어쩌면 사주라는 자체조차도 모르는 세대가 될 것 같다. 쉽게 생각하고 가볍게 결정을 내리는 자식들 세대에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부부의 인연을 귀하게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부부의 인연은 그냥 스치는 바람 같은 인연이 아닌 억천만겁을 스쳐야 부부가 되듯이 세상 모든 것이 변해도 부부의 인연만은 쉬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묵은 세간 살이 는 하나씩 버리고 정리하면 집안이 깨끗해진다. 그러나 사주단자는 많은 세월이 흘러도 버릴 수가 없는 물건이다. 사주단자는 살아온 삶이고 앞으로 살아갈 힘이 되는 것이다. 가끔씩 서랍 속에 간직한 사주단자를 보면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힘겨움도 즐거움도 함께 해온 사주단자는 때로는 아픔이고 행복이었다.
요즈음은 사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해오는 풍습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부부의 존재를 기억 할 수 있는 사주를 두고두고 꺼내 볼 수 있는 추억도 아름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빨간 천에 오색 끈으로 묶어놓은 사주단자를 보면 처음 결혼을 약속한 때가 떠오른다.
가난한 사람들이 만나서 서로의 믿음과 사랑하나로 시작한 결혼 죽는 날까지 부부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살아야하는 이유가 그기에 있었다. 사주단자만 들어있는 함을 받던 그 순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받아 들였다. 결혼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고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부모로 살고 싶었다.
조상들은 결혼 후 사주단자를 장롱 깊숙이 간직 했다고 한다. 나는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한 사주단자를 꺼내어 액자에 넣어 집안에 걸어 두고 싶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부부가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날 때 같이 태워주기를 바래본다.
첫댓글 해바라기님. 사주단자를 고이 간직하는 사람이 흔치 않을진데... 저도 고이 간직하고 있답니다. 맞아요. 세상을 마칠때는 사주단자도 함께 사라지겠지요. 감칠맛 나는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해바라기님 덕분에 솔 사랑방이 온기가 돕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칭찬을 해주시니 기분이 좋습니다.
" 가끔씩 서랍 속에 간직한 사주단자를 보면 힘들게 살아온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힘겨움도 즐거움도 함께 해온 사주단자는 때로는 아픔이고 행복이었다. "
저도 사주단자를 장롱속 깊이 두고 언제 꺼내 보았는지 기억이 없습니다. 부부인연을 상징하는 사주단자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주신글 감사합니다.
해바라기 선생님 사주단자에 대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첫인상이 차분하면서도 정감 있었습니다. 자주 글 올려 주십시오 감사 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의 장롱속에도 청실홍실이 아직도 빛바래지 않고 들어있답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 한번쯤 꺼내볼까합니다. 고맙습니다.
결혼풍속도가 많이 달라진 요즘 젊은이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글입니다. 이곳 캐나다 한인 2세들에게는 사주단자가 아주 생소한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호화판 결혼을 선호하는 버릇이 점점 한국을 닮아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김성희선생님 글을 읽으며 52년전 추억에 잦어 봅니다. 철모르면서 부르는대로 써서 보냈는데, 그것이 부부인연의 시발이었습니다. 감성이 곱게 깔린 글을 읽으며 추억의 강을 건너는 꿈을 꿉니다.
장롱 깊숙이 고이 간직했던 사주단자를 꺼내보시며 추억하시는 선생님의 감성이 묻어나는 글 감상 잘 하고갑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빨간 천에 오색 끈으로 묶어놓은 사주단자를 보면 처음 결혼을 약속한 때가 떠오른다.' 선생님의 성실하고 고운 마음을 엿보고 갑니다. 내내 행복하소서. 감사합니다.
사주단자.....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