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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싶은 .. 음악 .. 스크랩 등려군/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첨밀밀 가사자막 영상ㅣ 등려군에 대해서...
마니샤 추천 3 조회 635 15.12.04 07:0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42세의 나이로 요절한 대만출신 가수 '등려군'님의 곡과 이미지로 만들어본 영상입니다.
 
 
 

월량대표아적심/등려군 
 
첨밀밀(甛蜜蜜) OST
 
 

당신은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我??有多深, 我??有?分
(ni wen wo ai ni you duo shen, wo ai ni you ji fen )
 
내 마음은 떠나지 않아요,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비춰줘요.

我的情不移, 我的?不?, 月亮代表我的心
(wode qing bu yi, wo de ai bu bian,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부드러운 입 맞춤은,
내 마음을 울리게 하고,

??的一?吻, 已?打?我的心
(qing qing de yi ge wen, yi jing da dong wo de xin)

아련한 그리움은 지금까지 당신을 그리게 하는군요.
深深的一段情, 叫我思念到如今
(shen shen de yi duan qing, jiao wo si nian dao ru jin)
 
당신은 내게 물었죠.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냐고,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我??有多深, 我??有?分
(ni wen wo ai ni you duo shen, wo ai ni you ji fen)

머리에 그리며 바라보세요,
저 달빛이 내 마음을 이야기해줘요.

?去想一想, ?去看一看, 月亮代表我的心
(ni qu xiang yi xiang, ni qu kan yi kan, yue liang dai biao wo de xin)
 
 

【陳佳】?唱鄧麗君《月亮代表我的心》

 

1953년 1월 29일 ~ 1995년 5월 8일)은 중화민국 출신의 가수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주로 중화권 및 일본을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대한민국에서는 영화 첨밀밀이 소개되기 전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중화민국, 홍콩, 일본, 중국까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아시아의 가희(歌?)"라 불렸다.

 

이름[편집]

그녀의 본명은 덩리쥔(鄧麗筠, 등려균)이나, 데뷔 후 덩리쥔(鄧麗君, 등려군)으로 불렸고
영문 이름은 Teresa Teng으로 이 이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도 '테레사 텐(テレサ?テン)'으로
계속 불렸다.

이 영문이름 테레사는 그녀 자신이 존경한다고 이야기했던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라고 이야기되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세례명을 사용한 것으로
사후 밝혀졌다.

 


경력[편집]

1953년 타이완의 윈린 현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허베이 성, 모친은 산둥 성 출신으로
양친 모두 대륙 출신이다.

부친은 원래 국민혁명군의 직업 군인으로, 국공내전 이후 타이완으로 이주했다. 그

의 영향인지
군 위문 공연에 열심히 활동하였고, 중화민국에서는 '군인들의 연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1970년 16세 때 당시 중화민국의 인기 드라마인 '징징(晶晶)'의 주제가인

'당신만 보면 웃음이 나요(我一見?就笑)'를 불렀고

 

그 후 5년 정도 중화민국과 홍콩을 중심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73년에는 홍콩에서 만난 '도라스(ト?ラス)'의 사장 후나키(舟木稔)를 만나
일본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녀는 중화민국의 공식어인 푸퉁화를 비롯, 민난어, 광둥어, 일본어 및 영어로 된 노래들을 불렀고

중국어로 된 노래는 1,000여곡, 일본어로 된 노래도 260여곡에 달한다.

 

 

 

 

 

 


일본 활동[편집]

1973년부터 시작한 일본 진출에서 아이돌 계열의 노래인

'오늘밤일까 내일일까(今夜かしら明日かしら)'를 취입했으나

별 성과를 얻지 못하자 곧 엔카(演歌) 계열로 전환하여

'공항(空港; くうこう)'을 취입, 대히트를 하여

당시 '레코드 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1979년 인도네시아 위조 여권을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추방당했다.

 

이 후 1984년까지 미국, 홍콩, 중화민국에서 활동하다 일본 시장에 재입성,

'속죄(償還; つぐない)', '애인(愛人; あいじん)'이 각각 150여만매,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겨(時の流れに身をまかせ)'가 200여만 매가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 '전일본 유선방송 대상(全日本有線放送大賞)' 최초의 동서(東西) 유선 대상

3해 연속 대상 및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85년 12월에는 생전 마지막이 되는 솔로 콘서트를 NHK홀에서 진행하였다.

또한 같은 해에는 조용필의 일본 활동 후 '돌아와요 부산항에(釜山港へ?れ)'를 부른 가수로도 유명하다

(단, 최초 취입은 1983년 渥美二郞. 이후 계은숙, 美空ひばり, 森昌子 등이 취입/노래).


1987년 이후 일본에서 그다지 활동하지 않다가 1994년 11월

NHK '가요 자선콘서트(歌?チャリティ?コンサ?ト)'에 출연하였다.

1995년 취입할 예정이던 '잊지마(忘れないで; Time to Say Goodbye)'는

그녀의 사망으로 취입되지 않았다가 2001년 일본가수(幸治)에 의해 추도음반으로 발매되었다.

 

 


중국 내륙 활동[편집]

중화민국 출신으로 타이완 및 홍콩, 마카오 등 중국어권 지역에서의 활동도 활발했다.

1979년 위조 여권 사용 이후 중국어권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녀 자신의 오리지널 노래도 흥행했지만,
주로 일본인으로 태어나 만주국에서 활동한 리샹란(李香蘭; 山口淑子)의 노래들을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곡들에는 '밤에 오는 향기(夜來香)', '끝없는 사랑(不了情)' 등이 있다.
그러나 타이완 출신이 문제가 되었는지, 리샹란이 만주국 찬양, 2차대전 종전 후
일본 귀국 활동 등을 한 이유가 문제가 되었는지,

중국은 1983년까지(실제로는 양안관계가 해소된 1987년까지) 덩리쥔의 노래를 금하였다.

덩리쥔은 천안문 사건 반대집회 등 중국 민주화운동에도 참여하였고,

'언제 그대 다시 오나(何日君再?)'와 같은 항일 노래도 불렀다.


1987년 일본에서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활동적인 모습은 그다지 없었고,
홍콩 및 대만에서 활동만 유지하다 1990년 이후 홍콩 반환 등의 문제로 파리로 거주지를 옮겼다.

중국 대륙에서 금지곡이었던 그녀의 노래는 국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어 수많은 소문과 유언비어,

특히 콘서트에 관한 소문이 많았다.

양안 관계 해소 후 실제로 그녀는 그러한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천안문 사태를 야기한 공산당 정부에 실망하면서 실현되지 않았다.

 

 

 

 

 

 

 

 

죽음[편집]

그녀가 죽었다는 소문은 1990년, 1991년 한 번씩 흘러나왔으나 유언비어로 끝나고 말았다. 그

러던 와중 1995년 5월 8일 요양을 목적으로 가끔 방문하던 타이 치앙마이의 메이핀호텔에서

기관지 천식 발작으로 사망했다. 향년 42세. 1990년부터 동거 관계에 있던 14세 연하 프랑스인 '

스테판 퓨엘'이 최후의 간호를 했다.

같은 달 28일 중화민국의 타이베이에서 국장급의 장례가 치뤄져 전 세계 3만여명의 팬들이 몰렸다.

그녀의 관은 중화민국 국기와 국민당 당기로 덮였다.

 
현재 묘소는 타이베이 시 동북에 자리하고 있으며, 묘 앞에서는 동상과 레코드 장치가 설치되어

그녀의 노래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은 그녀를 추모하기 위해 사체를 화장하지 않고 그대로 매장하였다.

사후 50년 정도는 생전 모습 그대로 둘 예정이라고 한다.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기관지 천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마약 복용설, 민주화운동 및

반정부운동에 관련한 중공공산당에 의한 암살설 등 여러가지 의혹이 있다.

<네이버 위키 인물사전에서 응용>

 

 

 

MV 영상입니다.함께 감상하세요 

 

 

 

 

 

그동안 일이 너무 바빠서 포스팅에 많이 소홀 할 수 밖에 없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님들이 연일 찾아 주셨기에

죄송한 마음이 앞서네요.

 

연말이 다가 올 수록 없던 일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갈수록 일에 대한 스케줄도 타이트 해 지는것 같습니다.

 

포스팅을 작성키 위한 실행 의지가 선뜻

생기는 것은 ,(고단하니까요...)아니었지만,

 

우리 님들이 계시기에

억지로 억지로 하나씩 단계적으로 준비하다보니

 

사십여세의 나이로 요절한 안타까운 대만 가수 '등려군'

 

애잔한 보이스와 센치한 뉘앙스가 감도는 용모로

 세계적으로 수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대만 출신 가수 '등려군'님의 포스팅이 완성된듯합니다.

 

즐겁게 감상하시고 행복한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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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12.04 08:39

    첫댓글 감미롭고 사랑스러운 곡조입니다.

    일찍 타계한것이 안타깝습니다..

  • 작성자 15.12.05 08:56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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