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월요일 맑음
기차에서 아침을 맞는다. 눈을 떠보니 아직도 기차는 줄기차게 달리고 있다. 살며시 일나 창밖을 보니 날은 벌써 밝았고 초록색 평원이 넓게 펼쳐져 지나간다. 노란색 평원도 전깃줄과 함께 나타난다. 기차 안을 둘러보니 아직도 대부분 사람들이 자고 있다. 하얀 시트만이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잇다. 시트가 흩어져 있고 구겨지고 흘러내리고 있다. 내 자리는 커다란 물통보이고 쓰레기 봉지가 매달려 있다.
물티슈도 보인다. 마주보이는 침대에서는 양말신고 자는 발만 보인다. 화물 열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바가이(Vagay Вагай)라는 역을 지나간다. 이른 아침이라서 인지 역에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50분이다. 숲과 벌판이 이어진다. 얼룩소들이 들판에 보인다. 7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반갑다. 초원에 소와 양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조용하다.
짓다가 멈춰버린 건물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내고 있다. 4층 건물인데 중단된 지 오래된 것 같다. 낡은 아파트도 보인다. 여름인데도 추워 보인다. 여름 속에서 겨울이 보이는 것 같다. 사람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황무지가 펼쳐진다. 잡풀이 무성하지만 넓은 평원이다. 간이역에 1분 정도 쉬는 것 같다. 새떼가 날아간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노파가 보인다. 자작나무 숲이 길게 이어진다. 예쁘다. 일직선으로 줄 맞추어 자라고 있는데 도로를 따라간다.
늪지대가 나타난다. 갈대숲이다. 모여 있는 갈대가 같은 방향으로 바람에 흔들려 누워 있다. 그 앞에는 노란색 꽃들이 모여 있다. 흔들리는 기차에서 멍하니 창문만 바라보고 간다. 펼쳐지는 분위기가 비슷하다. 녹슨 건설 기계들이 낡은 버스와 함께 방치되어 있다. 창고 같은 간이역을 또 지나간다.
사람들이 일어난다. 복도가 분주하다. 음식 냄새가 난다. 위에서 자던 아내도 내려왔다. 시트를 정리했다. 우리도 아침을 먹는다. 버터와 빵, 오이 2개, 토마토 2개, 께피르를 탁자위에 펼쳐 놓았다. 물티슈로 오이와 토마토를 닦아서 먹는다. 기차 안에서 식사를 하는 것은 큰 일중에 하나다. 식사하는 시간은 모두 같지만 먹는 종류는 대부분 다르다. 여행차 가는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모두 삶을 사는 현지인들이다. 같은 기차를 타고 가지만 모두 목적은 다른 것 같다.
아침 8시 13분 에 이심(Ишим)역에 도착했다. 이 마을 은 이심 강을 끼고 있다. 12분 정차한다. 우리는 모두 내렸다. 담배도 피고산책도 한다. 스트레칭을 하는 이들도 있다. 밖에 나와 땅을 밟고 걸어보니 기분이 좋다. 코 끝에 느껴지는 공기도 상큼하다. 모두들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여무원이 타라고 할 때까지 모두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칸마다 근무하는 역무원들도 모두 내려 입구 앞에 서있다. 모두 기차에 다시 탄다. 또 출발이다.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철도 근로자들이 모여 있다. 5명이 보이는데 모두 모자를 쓰고 있고 짧은 장화를 신고 있다. 날씨가 차가운 것 같다. 창밖에는 또 끝없이 펼쳐지는 초원이다. 스쳐가는 간이역에는 가방을 맨 손님이 보인다. 하얀 구름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초원에는 가끔 자작나무의 하얀 기둥들이 나타난다. 10여 마리 되는 말이 보인다. 하늘에는 흰 구름 보다는 파란하늘이 더 많이 보인다. 성채같이 빽빽한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아내는 책을 본다. 모두 앉아서 나름대로 뭔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멍하니 창문을 보는 사람, 아내와 같이 책을 보는 이도 있고 마주 앉아 끝도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과일을 먹는 사람도 있는데 과차와 차를 마시는 사람이 제일 멋져 보인다. 과자가 먹고 싶다. 우리도 배낭 깊숙이 넣어둔 맛없는 비스켓을 꺼내 먹었다. 건너편에 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두 분은 친구 사이인 것 같다. 한분은 책을 읽고 한 분은 잡지를 뒤적이더니 차를 타 온다. 편한 차림으로 잘도 먹는다.
황금 빛 초원과 초록색 평원이 참 어울린다. 스레트 지붕을 한 민가가 나타나고 기울어진 나무 전봇대는 그 수명을 다해 가는 것 같다. 죽어서 목이 잘린 듯 세워져 있는 자작나무 기둥들이 엄청 많이 펼쳐진다. 쓸쓸해 보이고 무서워 보인다. 왜 이렇게 모두 목이 잘려 서 있을 까? 참 색다른 분위기다. 늪지대가 이어진다. 물이 듬성듬성 고여 있다. 갈대풀들이 넓게 자라고 있다. 건너편의 아주머니들은 다시 흰 시트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꼭 시체 같다. 아침 잠인가보다. 양철 지붕을 한 집들이 보인다. 한 가구에 안테나 접시 3개가 창가에 있고 TV안테나도 지붕에 있다. 하늘색 칠을 한 나무 울타리가 예쁘고 붉은 지붕이 따뜻해 보인다. 역에 잠시 도착했다.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다.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흰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져 있다. 기차역사는 초록색 지붕에 연두색으로 벽이 칠해져 있다. 나지바예프스크(Nazyvayevsk Называевск)역이다. 사람이 하나도 없다. 순록을 많이 키우는 마을이란다. 워터타워 같은 타워가 보인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져 있는데 제법 오래된 것 같다. 잎이 다 덜어져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여름인데 왜 잎이 없을 까? 죽어가는 것일까. 예쁜 집들이 나온다. 텃밭에는 꽃들과 푸성귀가 가득 재배 되고 있다. 울타리 안에서 영감님 부부가 텃밭을 가꾸고 있다. 지도를 보니 이 지역은 초원보다는 작은 호수들이 엄청 많이 분포되어 있는 낮은 지역인 것 같다.
수로가 길게 이어지는 마을이 나온다. 승용차들이 보인다. 비포장도로에는 질퍽거리는 모습이다.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집들은 지붕이 묘두 뾰족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인가보다. 기차 내부에 붙어있는 시간표를 살펴보니 이 기차는 모스크바를 출발해서 치타(Чита)까지 가는 기차다. 거의 65시간을 달리는 것 같다.
우리는 치타에 도착하기 전에 내린다. 멀리 아파트들이 보인다. 철길도 여러 개가 있다. 도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도시가 나타난다. 우리는 점심을 먹는다. 아직 12시도 안되었다. 분위기가 먹는 분위기다. 심심하던 차에 잘 됐다. 뜨거운 물을 이용해서 사발면을 먹었다. 수로는 직선으로 이어지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키 큰 풀들이 가득하다. 아파트 같은 고층빌딩도 보인다. 강변에는 모래를 채취하는 크레인이 많이 모여 있다. 하늘이 잔뜩 흐리다 곧 비가 올 것 같다.
옴스크(Омск)에 도착했다. 내리고 타는 사람들이 많다. 역사도 멋지다. 기차를 타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무리가 보인다. 가방을 맨 사람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 등 다양하다. 우리도 내렸다. 아내와 사진 찍기를 한다. 함께 타고 가던 아주머니들도 내렸다. 귀중품이 들어있는 작은 가방만 매고 내렸다. 꼬마도 내렸다. 지겨운가보다. 옴스크는 이르티슈 강 중류 유역에 있다. 매우 평평한 평원으로 이루어졌으며, 북쪽에는 매우 큰 늪지와 이탄 습지들이 있다. 그밖에 호수가 수없이 많은데 그 가운데 테니스 호가 가장 크며, 남부의 호수들은 대부분 염분이 함유되어 있다. 북쪽은 소나무·전나무·가문비나무·자작나무가 울창한 습지성 삼림지대인 타이가로 이루어졌으며, 남쪽으로 향하면서 자작나무 숲이 있는 삼림성 스텝과 순수한 스텝이 차례로 나타난다. 토양이 비옥한 삼림성 스텝과 스텝에서는 집약적인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1950년대 처녀지 및 유휴지 개발운동으로 많은 경작지가 생겼다. 농업이 경제의 기반을 이루며, 주도인 옴스크 시를 제외한 소도시들에서는 소규모의 식품가공업이 이루어지는 정도이다. 봄밀을 비롯한 곡물이 주된 작물이며, 아마·해바라기·겨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옴스크 시 주변에서는 시장용 채소 재배업이 활발하다. 많은 소와 양을 기반으로 하는 축산업과 낙농업이 고도로 발달했으며, 북쪽에서는 약간의 벌목이 이루어지고 있다. 옴스크는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배지로도 유명하다. 기차에서 내리면 기분이 좋다. 운동하고 사먹고....... 다시 타라고 하면 모두 탄다. 멀리 끌려가는 죄수 같다. 그러나 기분은 좋다.
기차는 또 출발한다. 낮 12시 15분이다. 아내와 카드놀이를 했다. 훌라도 하고 거짓말하기도 했다. 둘이 하니 좀 심심하다. 들판에는 산이 없다. 약간의 언덕도 업다. 그런데 나무와 풀이 가득하다. 그러나 바람과 햇빛밖에 다른 것은 없는 것 같다. 스쳐가는 간이역에 1928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1928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마도 역이 세워진 연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기차에서 처음으로 큰 것을 해결했다. 이제는 기차에 제법 적응이 되는 것 같다.
건너편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몇 모인다. 2층에 머물게 된 중년 아저씨가 아는 사람들 인 것 같다. 이 아저씨는 가지고 탄 많은 먹거리를 아주머니 앞에 펼쳐 놓았다. 거기에 다른 좌석에 있던 서 너 명의 모두 중년의 남자들이 합세를 했다. 아주머니들은 신났다. 우리에게도 꽃 사과 몇 개를 주셨다. 아저씨가 고향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란다. 시큼한 것이 맛있다. 고기도 먹고 튀김도 먹더니, 드디어 술도 들어간다. 아는 분의 사과 농장이 생각난다. 실컷 먹더니 이제 카드놀이를 한다. 낡은 카드를 가지고 놀이를 하는데 한참을 쳐다봐도 무슨 놀이인지 모르겠다. 카드도 장수는 같은데 우리 것과 다르다. 그림이 많이 그려져 있다.
어제 밤에 밤새 코를 골며 자던 뚱뚱한 새댁은 하루 종일 뜨개질을 한다. 겨울에 사용할 목도리를 자는 것 같다. 손놀림이 아주 능숙하다. 손재주가 있어 보인다. 남편과 함께 실을 감기도 한다. 꼬마는 침대를 오르내리며 장난을 친다. 꼬마들은 꼬마들끼리 모여 논다. 시간이 지나니 같은 칸에 탄 다른 여자 꼬마 아이가 와서 함께 놀고 있다. 모두 끼리끼리 모여서 놀고 있다.
바라빈스크(Барабинск)역에 도착했다. 아직도 호수가 많은 지역이다. 시간은 15시 58분 , 오후 4시다. 역사에 있는 온도계는 21℃를 표시하고 있다. 30분 정차시간이다. 모두 내렸다. 여기는 양손 가득 들고 온 장사꾼들이 많다. 훈제된 물고기를 팔러온 사람들이 가장 많다. 책을 팔러온 사람도 있고 양털을 비롯한 모피, 털모자를 팔러온 사람도 있다.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특히 물고기 훈제가 제일 인상적이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서 먹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아주머니는 훈제 물고기를 많이 샀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긴 그림자를 동쪽으로 만들고 있다. 비는 오지 않는데 검은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다. 쌀쌀하다. 팔고 있는 털모자와 모피 옷이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건너편에 모인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한다. 엄청 먹는다. 거기에 훈제 물고기를 풀어놓고 식사를 하는데 참 맛있게 먹는다. 우리도 저녁식사를 한다. 우리는 뜨거운 물에 누룽지를 불려서 고추장에 마른 멸치를 찍어 먹었다. 누룽지는 뜨거운 물에 담가 5분을 기다려도 딱딱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큰 생선 우리는 작은 멸치, 넓은 나라 사람들은 큰 물고기, 작은 나라 사람들은 작은 멸치가 반찬이다. 강물이 보인다. 어두워진다. 저녁놀이 서쪽 하늘에 멋지게 진하게 연출된다. 석양이 붉다. 그래도 기차는 달려간다. 기차가 흔들리고 약간의 소음은 잠을 잘 들게 한다. 이렇게 또 밤을 누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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