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의가 만난 전국 교육감>
교육 불평등을 깨고 아이들의 다양한 잠재력을 꽃피우겠습니다
조희연 서울특별시 교육감 / 개똥이네집 4월호 실림
최창의 : <개똥이네 집> 독자들 가운데는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가 많은데요, 교육감님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할 것 같아요.
조희연 : 저희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제가 다섯 살 때지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새어머니가 오셨는데, 그 전까진 열다섯 살 위인 누나가 엄마 노릇을 많이 해 주었어요. 정서적으로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지요. 성격이 세심한 편이라서, 신경 안 쓰려고 그랬는지 공부만 하고 교회만 다녔어요. 주변 환경에 무심하게 지내려고 했지요.
최창의 : 일찍부터 어머니 없이 자랐으니 힘드셨겠네요.
조희연 :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와서 해 준 말씀이 기억나네요. ‘어머니도 없는데 착하게 생활하는구나’ 하고 도닥여 주셨지요. 제가 5남 2녀 가운데 아들로는 막내였는데, 형들하고 스무 살 넘게 차이가 났어요. 새어머니는 아무래도 나이 든 형들과 갈등이 있었겠지만 저하고는 관계가 괜찮았어요.
최창의 : 그래도 모범생으로 자라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로만 걸어왔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는 말을 듣지 않으세요?
조희연 : 제가 어릴 때만 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가, 지금같이 신분이나 계급이 다른 것처럼 느끼지는 않았어요. 저는 그냥 공부 잘하는 학생일 뿐이고, 일상생활에서 학교나 교회에서 만나고 어울리고 그랬죠. 물론 중학교는 시험 봐서 전주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는 서울로 유학와서 다녔습니다. 공부를 잘해서 이름난 중고등학교를 다닌 건 맞지만, 엘리트 교육의 문제점을 개혁하려는 사고도 갖고 있습니다.
최창의 : 공부를 계속해 학자가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적은 없었나요?
조희연 : 1970년대 중반,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유신헌법을 반대하면 잡아들이는 ‘긴급조치 9호시대’였어요. 굳이 좌절이라면 대학 4학년 때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고 제적된 일이라고 할까요. 지방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아들 인생이 끝났구나 하고 낙망하기도 했지요. 감옥에서 나온 뒤에는 학교로 돌아갈 수 없으니, 노동 현장으로 가려고 ‘열관리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고요.
최창의 : 슬하에 두 아들을 뒀는데요, 자녀 교육은 어떻게 했나요?
조희연 : 교육감 선거를 치르면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운 게 한 가지 있어요. 아들 덕분에 마치 제가 반듯한 아버지의 표상처럼 비쳐졌지요. 상대 후보는 딸의 편지로 지나치게 깎아내려졌고요. 알려진 것과 달리 저는 오히려 아이들을 자유방임형으로 키웠어요. 애들이 자발적으로 하게 하고 거의 간섭을 안 했습니다. 제 성격이 부드러운 편이라서 아이들이 신경질을 내면 제가 참고 말아요. 그러면 아이가 격한 반응을 보였다가도 곧 분노를 조절하는 것 같더라고요.
최창의 : 선거 이야기가 나왔는데 지난 선거 때 한 발언 때문에 소송 중이지요. 어떻게 되어 가는가요?
조희연 : 선거 과정에서는 대개 여러 가지 의혹과 공방이 일어나거든요. 제가 교육감 선거하면서 상대편 후보에게 딱 하나 설명을 요구한 게 있는데요. 상대 후보가 미국 영주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해명하라고 공개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요구했지요. 그때는 선관위에서 주의 경고를 하고 끝냈어요. 그런데 뒤늦게 검찰이 기소를 해서 재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표현의 자유, 선거 활동의 자유 차원에서 접근할 수가 있는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제 입장만 내세울 수 없고, 4월 말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건전한 상식에 따른 판결이 내려질 거라고 기대합니다.
최창의 : 서울시 교육감이 되겠다는 생각은 어떤 계기로 갖게 되었는지요?
조희연 : 교육감 선거가 있기 전 2년 반 동안 제가 민주화교수협의회 대표를 맡았어요. 주로 교육 의제를 갖고 교육 단체들과 협의하는 활동을 많이 했지요. 그때 초․중등학교 현장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런데다가 교수단체와 교육단체 회원들이 강하게 권유해서 교육감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지요.
최창의 : 교육감 임기 4년 동안에 확실하게 바꿔 놓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희연 : 저는 4․16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의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의 교육은 1등주의입니다. 오직 1등을 강요하며 꼴등까지 줄 세우고 아이들을 닦달했어요. 세월호 이후의 교육은 오로지 한 사람 교육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꽃피워야 합니다. 그래서 입시 위주 교육체재를 개선하려고 합니다. 교육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힘쓰겠습니다. 잘사는 부모와 못사는 부모의 분화와 양극화 현상이 상상을 뛰어넘고 있어요. 부모의 경제력이 교육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을 공교육이 메꾸어 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최창의 : 우리 교육의 문제 가운데 크게 지적하는 게 아이들의 실제 삶과 학교 공부가 연관성 적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조희연 : 삶과 배움을 일치시키는 교육이 필요하겠지요. 삶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교육인데 좋은 직장이 목적이 되고 교육은 도구가 되어 버렸어요. 이런 왜곡된 교육을 개혁해서 삶과 공부의 괴리를 좁혀 주는 게 교육감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교육청이 지금 중학교에서는 자유학기제를 운영하고 있고요, 고교 1학년 단계에서는 이와 비슷한 ‘인생학교’를 시범으로 운영합니다.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하고 교육과정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지요.
최창의 : 당선된 뒤, 공약으로 내걸었던 자사고 지정 취소 문제에 의욕 있게 뛰어들었지요. 너무 서둘러 실패한 건 아닌가 하는 평가가 있습니다.
조희연 : 서울시에 있는 열네 개 자사고를 평가해 여덟 개 학교에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게 됐죠. 이런 노력들은 고등학교 교육의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였어요. 원래 목표대로 다 된 건 아니지만, 고교 서열화와 교육 불평등에 대해 새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적으로는 고교 입시의 선발 방식과 고교 서열화 자체를 개선하는 대책이 필요합니다.
최창의 : 좀 더 세부적인 교육 문제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아무래도 자연 생태 환경과 거리가 멉니다. 자연과 생명을 살리는 생태교육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요?
조희연 : 학교 공부가 아무래도 국․영․수 교과 중심으로 짜여 있지요. 공교육에서 어떻게 생태 감수성을 높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작은 출발이지만 학교 텃밭 운영을 현재 백십 곳에서 서른 곳을 추가로 늘였어요. 서울시가 도시농업전문가를 지원하기로 했고요. 농산어촌 유학을 교육과정으로 인정하고, 제주교육청과 협약해 일정 기간 교환 학습을 추진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최창의 : 교육감님은 감성을 키우는 문화예술체육 교육도 매우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지원을 할 계획입니까?
조희연 : 서울시교육청은 인성, 감성, 지성이 어우러지는 창의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지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창의인성교육센터를 다섯 개 권역별로 확대하려고 구상하고 있습니다. 학교 연극이나 집단적인 문화예술 활동도 복원시키고 지원할 계획이고요. 그리고 아이들이 적어도 악기 하나, 운동 하나 쯤은 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최창의 : 아직도 교육청과 학교가 변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관료주의와 타성에 젖은 보수성을 지적하는데요.
조희연 : 학교 민주주의는 교사와 학생 관계의 민주화가 핵심이지요. 혁신학교도 알고 보면 학교 민주주의 프로젝트이고, 관계가 민주화 된 겁니다. 교사의 자발성과 학생의 자기 주도성이 살아난 것이지요. 1980년대 절차 민주주의가 온 사회로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도 확산되지 않는 곳이 군대와 학교입니다.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 학생은 교복 입은 시민입니다. 군인도 학생도 시민으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존중해야지요. 그래서 서울시교육청에서는 학생자치 활동부터 활성화시키려고 합니다. 9시 등교를 학생들의 투표로 결정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최창의 :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에 스스로 참여하는 것도 중요하겠지요.
조희연 : 학교를 구성하는 여러 주체를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 맺기를 지원할 겁니다. 4월에는 학교 학부모회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제정합니다. 교사들이 일정한 자율성과 권한을 갖는 교사회를 갖는 것도 필요하고요.
최창의 :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와 교육 협력 사업이 잘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전망을 갖고 있나요?
조희연 : 지금은 교육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학교밖 청소년들을 제대로 돌보려면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이 협력해야 가능하고 효과도 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이 교육 사업에 적극적이어서 서울시교육청과 새로운 협력 모델을 많이 만들고 있어요. 서울시와 함께하는 교육 협력 사업으로는 학교 화장실 개선, 초등학교 스쿨버스 운영, 공립 유치원 확대, 햇빛 발전 설치 같은 여러 가지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최창의 : 교육감실을 둘러보면서 벽에 자전거가 매달려 있는 게 인상 깊었어요. 교육감님이 가진 교육관과 관련있을 거 같은데요, 마지막으로 서울 교육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전해주십시오.
조희연 : 교육감실에 나침반, 둥근 탁자, 자전거, 이렇게 세 가지 상징물을 두고 있습니다. 나침반은 방향을 가리키는 건데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가 교육에서 만들어 가야 할 변화의 방향을 잃지 않으려고요. 둥근 탁자는 소통하면서 그 방안을 만들어 가자는 뜻이고요. 자전거는 균형을 잘 잡고 달리자는 뜻입니다. 자전거는 달려야 넘어지지 않지요. 균형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달리면서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교육체제를 새로운 교육을 만들기 위한 원동력으로 전환하겠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혁신미래 교육을 꿈꾸고 실현해 보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도와주시고 때로 질책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