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뿌리 준경묘를 찿아서
삼척시 미로면에 있는 준경묘, 영경묘를 둘러보았습니다
준경묘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5대조이며 목조의 아버지인 이양무 장군의 묘이고 영경묘는 부인의 묘인데 준경묘로부터 4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양무 장군은 고려 의종때 정중부와 함께 무신정권을 수립했던 이의방의 동생인 이인의 아들이며
이양무의 후손은 목조로 추존된 안사, 익조로 추존된 행리, 도조로 추존된 춘, 환조로 추존된 자춘, 그다음으로 이성계로 이어집니다.
전주에 살던 이양무가 이곳 삼척 땅에 묻히게 된 것은 이유가 있습니다.
고려 고종 18년 그의 아들 안사가 지방관리들과의 불화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자 고령의 부모와 그를 따르던 170여가구의 식솔들을 데리고 삼척땅 활기리로 피신하였는데
그 이듬해 아버지가 운명하였기 이곳에 묻혔다고 합니다.
이안사의 삼척피신에 대하여 용비어천가에선 이렇게 적고있습니다.
지방호족인 목조는 당시 사랑하는 관기가 있었는데 새로 부임한 산성별감이 관기를 탐하게 되자
대판 싸움이 벌어지고 이것을 빌미로 역도로 몰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미자 이를 알아차리고
추종백성 170호를 이끌고 이곳 삼척으로 이주해와 살다가 1231(고려 고종 18년) 별세하였다고 ”
준경묘는 조선 왕실의 가장 오래된 선대묘로 그 터는 왕기가 서린 천하의 대길지로 조선왕조를 태동시켰다는 백우금관(白牛金棺) 전설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백우금관이란 이안사가 삼척에 자리 잡은지 1년 만에 아버지 이양무가 죽게되는데 이안사는 묘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산 저산 돌아다녀 보았지만 마땅한 자리가 없었던모양입니다.
피곤하여 지금의 자리에서 잠시 쉬고 있는 그때 한 도승이 동자승과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주위를 두루 살펴보더니 인적이 없음을 확인 한 뒤 대지로다, 길지로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안사가 나무 뒤에서 듣는 것도 몰랐습니다.
도승이 이어서 말하기를 이곳이 제대로 발복하려면 開土祭에 소 백 마리를 잡고 시신을 금관에 안장하여 제사 지내야 한다.
그러면 5대 손안에 왕자가 출생하게 되며 기우러져 가는 나라를 바로잡고 창업주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땅은 천하의 명당자리이니 발설하지 말라 라고 동자승에게 이아기 합니다.
동자승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자신의 귀를 의심한 이안사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생각에 골몰하였으나 가난한 살림에 소 백마리를 어디서 구하며 더구나 금으로 만든 관은 어디서구할 지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친의 묏 자리를 명당에 써야했습니다.
이안사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생각해낸 것이 소 백마리는 힌소 한 마리로 대체하고 금관은 귀리 짚으로 대신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마침 처가에 있는 힌 소를 잡고 금관은 밀짚으로 대신하여 아버지의 장사를 지냈다는 전설이네요.
목조는 17년동안 삼척에서 지냈는데 부모 모두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그런데 이무슨 일인가. 전주에서 다투었던 산성별감이 안찰사가 되어 삼척으로 온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이안사는 다시 북한의 의주(지금덕원) 피신하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병마사로 있다가 죽었다고 하네요. 묘소는 경흥에 있다고.....
준경묘를 찿아가는길은 준경묘 관광안내소가있는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후 두타산 등산로를 따라
1.8Km정도 올라가면 됩니다.
주변엔 금강송 들이 많이 있는데 2008년 12월 10일 문화재청은 광화문과 숭례문 복원공사를 위해
이곳 준경묘에서 황장목 20본을 벌채하였다고 하네요.
사진몇장 올립니다
두타산 줄기에 자리잡고 있음.
주차장에서 1.8km 걸어올라가는데 오르막 경사가 좀있네요
아름들이 금강송이 즐비하다
광화문과 숭례문 복원공사를 위해 이곳에서 금강송을 벌채하였다고
홍살문 전각
멀리 준경묘가 보인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까이간다
잡풀하나없이 곱게 다듬어진잔디, 울울창창한 낙낙송이 장관이다
준경묘
조선왕조를 낳은 천하의 명당, 봉분주변에 석불이 없는것을 제외하고는
다른왕릉 못지않게 위험과 규모를 갖고있다
금강송이 울창
이곳의 소나무들은 모두 묘소를 보고 경배하는것이 특이함
급수대
정 이품송(혼례소나무)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소나무의 혈통보존을 위해 10여년의 연구와 엄격한 심사를통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형질이 우수하고 아름다운 소나무를 찼았는데 이 소나무가 선발되었다
나이 95살, 키 32m, 가슴둘레높이 2.1m인 이 소나무는
충북 보은군 속리산에 있는 천연기념물 103호인 정이품송을 신랑으로 맞아
2001년 5월 8일 신순우 산림청장이 주례를 맡고 김종철 보오은군수가 신랑(신랑역: 삼산초등학교 이상훈)
혼주 (김일동) 삼척시장이 신부(신부역: 삼척초등학교 6학년 노신영)혼주로 참석하여
이곳준경묘역에서 많은 하객들을 모시고 세계최초의 "소나무 전통 혼례식"을 가짐으로서
한국기네스북에 올랐으며 이 행사를 계기로 삼척시와 보은군은 사돈관계의 인연을 맺게되었다
자세히보면 정말로 잘생긴 소나무다
영경묘(이양무 장군의 부인묘)
준경묘에서 4km 떨어져 있으며 조금은 허술한감이있음
급수대
이곳에도 금강송이 많네요
첫댓글 삼척쪽을 지날때마다 가보야지 하면서 들리지 못하였는데 들러보았네요.
역사적인곳이죠, 이쪽은 남기현청장님의 고향이기도 하죠
대단하십니다. 그 후손도 아직 참배를 못하였는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