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 소수파 핍박의 도구로 민주적 입법과정 정면으로 허물 것"
"보수정당은 과거 보수이념 가치의 보전에 게을렀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과거 노태우(민정당), 김영삼(민주당), 김종필(공화당)이 보수정당 통합을 이루었을 때(1990년) 김대중은 이를 도덕적 타락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김대중도 그 ‘3당통합’의 주역 김종필과 손잡고 연합해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다. 김대중 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더 심했다. 그는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 정치 순결의 핵심 요소로 삼당통합 참여여부를 한 기준으로 삼았다.
촛불 군중혁명 후, 이제 총선을 앞두고 한국 정계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정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및 약간 어색하게 가담한 바른미래당의 정치연합이 만들어졌다. 한국 좌파는 3당통합이라는 보수연합에 대해 한 세대 안에 좌파연합(이하, ‘4좌연합’)으로 보복한 것이다. 이 나라 지배적 이념 스펙트럼의 극적인 굴곡을 본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 올 그림들을 먼저 그려본 후 역설계(逆設計)로 내민 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괴이한 선거규칙이다. 이는 한국 역대 선거제도 중 가장 복잡하고 난해한데, 상식있는 국민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바로 그 점이 바로 이 제도를 택한 한 요인이다.
문재인 정권의 제 1 목표: 보수정당 말살
여당이 패스트트랙으로 통과시키려는 이 선거제도는 자유한국당은 물론 여당 자신의 의석도 줄이게 만드는 불리한 제도이다. 오히려 정의당 등 군소정당에게 그 이득이 돌아간다. 정당의 목표는 집권이고 구체적으로는 의석의 극대화를 추구한다. 집권 여당이 제 의석 손해 보는 선거 제도를 앞장 서 추진함은 한국 정당사에 매우 독특한 현상이다. 왜 여당은 이 기이한 일을 추구하는가?
그것이 주는 시사점은 지금 집권 세력의 본질을 가늠하게 해 준다. 첫째, 현 집권당이 무엇보다도 좌파이념에 철저한, 마치 중동의 종교 정당, 골수 정당처럼 그야말로 이념 정당임을 보여준다. 둘째, 제 의석조차 일부 버려 연합체 동료인 군소정당들에게 넘겨주지만 실은 그 군소정당들을 사실상 제 몸처럼 부릴 여지가 많다. 이들은 사실상 더불어민주당과 독립된 것이 아니라 대선을 통해 나타났듯이 그 정치 스펙트럼의 일부를 분담하는 하위 집단으로 보아도 무방한 동족들이다. 셋째, 이렇게 정치 이익을 포기하고 경쟁적인 보수정당을 철저히 진멸하면 나중에 장기 집권할 수 있다. 요컨대, 여당이 연합을 결성해 제 의석 손실마저 감수하면서까지 선거제도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바로 지금 정권의 1차적 목표는 경제도, 통일도, 복지도, 외교도 아니고 오직 ‘보수 정당 죽이기’라는 것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어법은 좌파가 세 불리일 때 생존을 구걸하는 논법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수파가 되는 그 순간, 차라리 북의 김정은 정권과 더 가까이 소통할지언정 보수정당만은 철저히 도륙하고 항구적 독재를 도모한다. 이해찬이 표정 관리를 자제하지 못해 ‘20년 집권’을 헤프게 내뱉었지만 망언이 아니라 플랜A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러한 좌파연합(야합, 통합, 제휴, 동참...뭐라 부르든)에서 조선의 당쟁 선조들이 내려준 불멸의 유전자를 본다. 소위 3당통합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정치 도덕적 순결이라고 자처해 온 당신들은 무엇이 다른가? 보수연합 그리 욕하더니 그들 또한 돌고 돌아 기껏 좌파야합이고 또 다른 따돌림의 정치이다. 보수가 혹 과거 3당통합에 대해 가졌을 일말의 도덕적 열등감은 이제 확실히 씻겨 졌다: 좌파는 우파보다 더 추하구나, 야합에 대한 무안함이 아니라 그게 민주적 개혁이란 독선까지 더했으니.
패스트트랙에 대한 제어 장치
국회의 전체 재적의원 3/5 이상 또는 소관위 재적위원 3/5분 이상의 찬성으로 ‘신속처리대상안건’으로 지정된다(국회법 85조의2). 현실에서 전체 재적의원 3/5의 연합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므로 보통 소관위 3/5 의원 동의로 패스트트랙으로 올리게 될 것이다. 상임위 안에서 정파 연합이 3/5의 지지를 얻기는 상대적으로 더 쉽다. 이번에 ‘사보임’이란 참으로 낯부끄러운 소동 때문에 ‘사기(詐欺)특위’란 오명을 받은 ‘사개특위’도 그런 예이다. 소관위에서 신속처리 법안으로 지정된 이상, 법사위 통과도 쉬워지고 최종적으로 본회의(금회, 혹은 적어도 차기 본회의에서)의 과반수 지지만 있으면 된다. 이 괴이한 선거제는 내년 총선 전까지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제도는 제정 당시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거기에 운용 경험 부족까지 더해 지금은 몇 가지 위험한 국면을 드러내고 있다. 본래, 법규들은 일응 정치 ‘게임 규칙’을 설정하는 법과, 어떤 게임 규칙 하에서 구체적인 자원 배분을 집행하는 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 중에서도 일반적 규칙, 곧 ‘규칙의 규칙’의 집합이 바로 뷰캐넌이 의미하는 헌법(constitution)이다. 일반적 규칙의 성격이 강한 것은 헌법이 직접 규정함이 보통이지만 법 현실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선거제도와 같이 정치 게임의 규칙에 해당되는 법이고 실질적으로는 그 일부는 헌법에 해당할만한 일반적 게임 규칙 성격의 법을, 그것도 상호타협과 민주적 정치과정을 거치는 정상적인 입법 절차가 아닌 패스트트랙이라는 예외적 입법 절차로 입법화하는 것이 무제한적으로 가능할까?
만약 패스트트랙에 의한 입법에 어떤 제한이 없다면, 다수를 이룬 정파 연합이 다른 정파를 배제하고 제 집단이익만 고려할 위험을 안고 있는 패스트트랙 입법제도는 소수파 핍박의 도구가 되고, 다수연합은 정상적 입법 과정이 아니라 일응 간편해 보이는 이 제도가 대개 입법 통로로 이용할 것이다. 그것은 국회의 가치인 민주적 입법과정이란 가치를 정면으로 허무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입법을 통해 만든 선거 제도가 주권 의사를 특정 정파에 과도하게 편향 혹은 배제되게 만든다면, 그것은 헌법의 근본 규범에 해당되는 국민주권 원리를 왜곡하게 된다. ‘현행 패스트트랙제도를 완화 혹은 강화하는 새 국회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입법화할 수 있을까?’ 정당법, 선거법, 심지어 헌법 가치에 관련된 정치 질서규칙 자체에 관한 법은 민주적이고 정상적 입법 절차로 입법화되어야 함이 타당하다. 따라서 패스트트랙 절차로 정치 게임의 규칙에 해당되는 법을 만드는 데는 일정한 제한이 따른다고 해석함이 합당하다. 선거법을 이런 절차로 통과하려는 것은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이런 성격의 입법은 민주적 타협과 여야 합의에 따른 정규의 입법 과정에 의거함이 마땅하다. 현행 패스트트랙제도는 이 위험을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채 도입되었고 지금 4좌연합은 이를 전혀 무시한 채 보수정당 죽이기에 이를 동원하려는 것이다. 십여석의 제 살을 군소 패거리들에게 나누어 주면서까지.
이념이 곧 당(黨)
정당이 목표가 정책 경쟁이 아니라 상대 학살이 일차적이라면 보수정당은 지금까지 참 바보였다. 한때 보수가 과반의석을 차지했을 때에도 좌파 죽이는데 패스트트랙을 사용하지 않았거나 못했고, 대선에서 압승했을 때조차 좌파 박멸은커녕 압승에 스스로 도취하여 ‘이념은 끝나고 실용이 중요하다’며, 죽은 시늉하는 좌파에게 헤픈 관용을 베푼 대실책을 저질렀던 것이다. 이제 회생한 좌파는 그 ‘실용’을 감옥으로 보내는 것으로 되갚았다. 어설픈 선량함이나 국정의 무책임으로 결국 오늘 한국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원죄를 지은 것이다.
앞으로 좌파연합이 만들어 낼 입법들이 걱정스럽다. 이를 막으려면 결국 선거에서 좌파연합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런데 이 선거 규칙 자체가 여야 교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보수 정당은 편향된 게임 규칙 밑에서 정치를 하기 직전에 몰렸고, 패스트트랙을 탄 선거법은 좌파의 장기 집권행 급행 도로가 된 것이다.
선거 규칙제도에서 패배 직전에 몰린 보수정당은 과거 보수이념 가치의 보전에 게을렀음을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어차피 정치란 냉엄한 피-아의 차별이고 여기에 불성실하거나 어떤 어설픈 로망을 품는 자마다 반드시 패배한다.
좌파연합의 철저한 보수 정당 죽이기와 일관된 사회주의화 프로그램을 보며 보수 정당은 절망과 더불어 교훈을 배우기 바란다. 혹 다시 집권한다면 주어진 권한과 권력을 행사하여 철저히 좌파부터 진멸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곧 자유 민주주의 국정의 위임을 받은 자의 소명이고 의무라는 것. 그건 미래 일이고 패배 직전인 지금은?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 fashion 쇼 말고 passion 쇼를 보여주는. 사람은 사라지나 이념만 보존해주면 다음 기회가 있지 않겠나. 보수 정당의 이념은 장식이 아니다. 모든 정치는 오직 그것으로 귀결되고 그거야 말로 진정한 실용이니.
김행범 객원 칼럼니스트(부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