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길치
집으로 가는 길
길라잡이 남자
동물과 귀소본능
잃어버린 지난 삶
난 길치다. 평생 나보다 심한 길치는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직선으로 가기만 해도 찾을 수 있는 곳도 심지어 기억 못 한다. 더 답답한 것은 10년 전 누구네집 돌잔치에 몇 명이 왔고 무슨 음식이 나왔는지 어떤 옷을 입고 갔었는지는 다 기억한다.
40년 전 초등학교 동창들 이름도 줄줄 다 외우면서 길만 유독 못 찾는 이유는 뭘까?
집 나간 I.Q60의 애완견 별이가 돌아오는 길도 난 못 찾는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노선변경 불가이다.
주막까지도 기억하는 김유신의 말보다 지능이 현저하게 낮음을 인정한다. 수십 년째 가도 혼자서는 절대 못 찾는 단골식당 때문에 절대 이혼 못한다.
참을성이 1도 없는 성질머리 때문에 한번 간 길은 반드시 기억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남편과 살고 있다. 연애시절 남편이 길을 잃었더라면 절대 결혼 불가였을 것이다.
소주 4병 넘게 마시고도 멀쩡하게 집을 잘 찾아오는 상남자다운 모습에 일주일에 5일 이상 감동하며 현재까지 잘 살고 있다.
지인 A는 술 마시고 대전의 타임스퀘어인 타임월드 번화가 사거리 전봇대 아래 쓰레기봉투를 베개 삼아 자기도 했고, 심지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옷 다 벗어서 가지런히 접어놓고 잠든 적도 있었다.
다행히도 속옷은 안 벗어서 최후의 보루는 지켰다. 새벽에 경비 아저씨께서 남편 들어왔냐고 인터폰으로 연락을 주셔서 알았다고 했다.
다행히 남편은 신통방통하게도 꼭 집에 들어와서 잔다.
홀로 산에 올랐다가가 실종자 신고에 이름을 올리는 순간 전 국민에게 키와 몸무게가 공개될까 두려
워서 산행은 미리 피한다. 평소에 키 과장해서 말한 거 다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확진자로 방송을 탄 이후, 개인정보공개 소리만 들어도 겁이 난다.
나이 들면 산을 찾는다는데 영원한 길치인 나는 산을 보기만 해도 거대한 제우스처럼 느껴져 경외감부터 든다. 남편은 꿈이 에베레스트 등반인데 같이 가자고 하는 순간 이혼위기가 올 것 같아서 혼자 간다고 미리 선언했다.
극장이나 대형 백화점 화장실 갔다 오면 다시 제자리로 절대 못 돌아간다. 덕분에 가장 최근 본 영화가 1994년 <주라기 공원> 1탄이다. 인생도 그러했다. 내가 인생의 경로를 바꾼 게 아니라 삶이 강제로 변경시켰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대전에서 제일 찾기 어렵다는 고난이도 큰 마을 아파트이다. 이름처럼 일단 크다.
택시 운전기사님들도 헷갈리는 별***** 다섯 개 최종 코스를 가지고 있다. 남편 친구들은 아파트 입구까지 오는데 10분 걸렸는데 단지 안에서 20분 걸렸다고 했다.
신화 속 미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올수록 찾기가 더 어렵다고도 했다. 처음 입주 당시엔 남의 집에 와서 자기 집이라고 우기는 술 취한 아저씨 때문에 심야에 벌벌 떤 적도 있었다. 아파트 사이사이 미로 같은 굽은 길이 있어서 입주하고 처음엔 두려워 혼자 밖에 못 나갔다.
세상엔 나보다 뛰어난 길 찾기 능력을 가진 동물들이 넘쳐난다. 영재 벌이다. 심지어 벌은 댄스로 길 안내도 해준다.
길 찾기 천재 비둘기는 편지를 나르는 신통력으로 전쟁영웅이 되기도 했다. 발걸음을 세는 천재 개미(6 곱하기 6이 가능하다), 물을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도 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추풍령, 문경새재, 죽령 다 헷갈려서 과거는커녕 집도 못 찾고 김삿갓처럼 방랑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길만 펼쳐졌던 내 인생이 하루아침에 다른 길이 되어버렸다. 내가 아니라 삶의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변경했다. 이전에 꿈꾸었던 모든 삶들이 나를 배신했다. 영원한 길치인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갑자기 범람한 고대 이집트의 나일강처럼 삶이 노선을 바꾸어 버렸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두려움이 나를 파괴했다.
이제 삶의 내비게이션을 업그레이드할 때가 되었다. 사랑도 행복도 목적지만 잃지 않으면 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첫댓글 온이가 곁에 있는 날, 윤희가 함께 있었다. 주영이는 서해안 바닷가로 훌쩍 떠났지만 난 행복했다.
멀리 갔어도 마음은 우리 곁에 있었으니까.
온이야, 윤희와 주영아, 로지야 행복해 하는 내 마음 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