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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유콘은 알래스카와 인접한 곳으로 한반도 면적 2배 이상의 크기이지만 인구는 약 3만 명에 불과한, 캐나다 사람들에게조차 익숙하지 않은 곳이다. 이 지역은 북극곰에서 순록에 이르기까지 많은 야생생물이 있고 여름철에는 백야, 겨울철에는 오로라를 볼 수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원시산악을 재현하고 있다.
우리가 첫 번째 트레킹을 하게 될 클루아니국립공원(Kluane National Park)은 청정한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한 팀을 12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때문에 총 15명인 우리 팀은 8명, 7명으로 나눠지게 되었고 내가 속한 팀은 킴벌리 메도(Kimberly meadow)를 탐사할 예정이었다.
출발 당일 가이드가 지도를 가져왔다. 킴벌리 메도는 현지 가이드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곳이라 출발 전날 가이드 미팅에서 가이드는 가본 적이 없다. 난이도도 코스도 모르며 지도도 없다고 말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 ▲ 민들레와 비슷한 풀이 꽃밭을 이룬 언덕을 지나 마운틴 옵서베이션으로 향하고 있다.
대원 스스로 헤쳐나가기 위해 가이드와 결별
탐사 출발 당일에야 우리는 드디어 우리가 가게 될 고도와 대략적인 코스를 알게 됐다. 그런데 그렇게도 궁금해 하던 탐사 지역의 청사진을 보고도 기분이 개운하지 않고 기운이 나지 않았다. 반대편에서 패킹하고 있는, 우리와 다른 코스를 가게 될 8명의 대원을 보니 이곳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탐사를 위해 채워둔 에너지가 딱 8명만큼 사라진 것 같았다.
“다들 다치지 말고 다녀오세요. ‘나의 기억’이 ‘우리의 기억’이 될 수 있게 저 역시 많이 보고 듣고 담아 오겠습니다!”
클루아니공원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곤히 잠든 대원들의 얼굴을 보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드디어 오랜 이동시간 끝에 눈앞에 마주한 클루아니국립공원은 탐사에 대한 불안함과 팀원들과의 이별로 인한 아쉬움을 감싸안아 줄 만큼 장엄하고 강렬했다.
본격적인 탐사를 위해 클루아니국립공원의 방문객센터(Visitor Center)에 들렀다. 부대장은 꽤 오랜 시간 이곳에서 정보를 얻더니, “두 팀이 같이 탐사하게 됐다”는 소중하고 또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까 사라진 8명분의 에너지가 두 배, 세 배가 되어 다시 충전되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야영지에서 다음 날부터 있을 본격적인 탐사를 준비하면서 마음속에 그려질 유콘에 대해 상상해봤다.
드디어 고대하던 트레킹이 시작되었고, 시작과 동시에 우리 팀 가이드는 끊임없이 요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곳은 곰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고 또한 탐사 중에 곰을 만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미리 소리를 내어 멀리 떨어져 있는 곰에게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했다. 곰돌이 푸우 캐릭터의 귀여운 이미지를 상상하며 꼭 곰을 보고 싶다고 철없이 생각했다. 하지만 탐사 내내 우리 15명 대원의 끊임없는 수다와 노랫소리는 굳이 따로 소리를 내지 않아도 다가오려는 곰도 등을 돌리게 만들 정도였다.
- ▲ 가이드와 함께 탐사지의 지도와 자료를 보며 대상지에 대한 사전조사를 하고 있다.
- 첫날 트레킹 목적지에 당도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개울(Creek)을 건너야 했다. 돌을 밟고 쉽게 건널 수 있었던 정도의 첫 번째 개울과는 달리 두 번째 불런 개울(Bullion Creek)은 물살도 꽤 세고, 깊이도 깊었다.
개울을 앞에 두고 허기진 배를 달래며 쉬고 있는 대원들이 날카롭고 시끄러운 가이드의 고함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대원들이 쉬는 동안 개울을 안전하게 건널 만한 위치를 찾아보러 상류 쪽으로 올라갔던 대장에게 가이드들이 외치는 소리였다. 그들은 “가이드가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아 안내해 줄 텐데 왜 말을 따르지 않느냐”며 대장에게 언성을 높였고, 결국 처음 산행을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1시간이 넘게 그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조율했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다시 돌아갈 것만을 고집했고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 날 밤 우리는 가이드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개울을 건너는 것뿐만 아니라 처음 가이드를 만났을 때부터 생겨났던 갈등의 씨앗들이 감정의 골을 끝없이 깊어지게 만들었다.
이 날 꽤 오랜 시간 우리 팀원들 각자가 갖고 있는 생각, 불만, 의견 등을 가이드들에게 전달했다. 이번 오지탐사와 유콘에 대한 대원들의 기대감, 첫 번째 트레킹에서 느낀 실망감, 대장과 부대장에 대한 믿음, 가이드가 아닌 우리 힘으로 탐사하고 싶다는 의지 등 대원들의 다양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내내 먹먹해져 오는 가슴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한 번의 브레이크가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린 것이라거나 욕심이었다거나 경솔한 행동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 그레인저산 정상을 향하는 대원들. 설사면 뒤로 보이는 곳이 정상이다.
‘한국 초등’에 성공한 그레인저산에 ‘오탐봉’ 이름 붙여
다시 산행을 시작하던 날, 날씨가 전날에 비해 더 안 좋고 같은 길을 다시 한 번 돌아가야 함에 허탈하기도 했지만 대원들의 끊임없는 웃음소리는 우리가 아주 소박하게 ‘즐겁게 산행하는 것’ 하나만 원했다는 것을 말해줬다. 가이드는 그것을 위해 충분조건은 될 수 있지만 필요조건은 아니었다. 가이드를 남기고 우리 15명의 유코너스(Yukonous·탐사대 이름)가 드디어 본격적인 오지탐사를 시작했다.
그렇게 걷다가 마주한 문제의 불런 개울. 대장이 먼저 건널 수 있을 만한 곳을 살펴보고 대원들이 2인 1조로 함께 건넜다. 한 손으로는 서로의 어택을 잡고, 한 손으로는 스틱을 찍으며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차갑고 거친 개울을 무사히 건넜다. 이미 건넌 대원들은 나머지 대원들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서로가 ‘우리’라는 이름 아래에 더 끈끈해져갔다.
첫 번째 트레킹 코스는 슬림즈 웨스트 트레일(Slims west trail)은 클루아니국립공원 내에 있는 슬림즈강(Slims river)을 따라 옵서베이션산(Mt. Observation·2,114m)을 등반하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다. 다른 지역으로 파견된 다른 탐사대처럼 고산을 느낄 만큼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옵서베이션산을 위해 긴 트레일을 걸어왔고 팀원들 모두 정상에서 볼 멋진 풍경을 기대하며 산에 오를 기대감에 빠졌다.
수많은 개울을 건넜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눈앞에 남아 있는 끝없는 개울들로 지친 우리 팀에게 그 개울들만큼이나 차가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설상가상으로 개울을 건너기 위해 어택 옆에 메어둔 나의 등산화 한쪽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단단히 메어놨는데.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며 대원들 모두가 등산화를 찾아보았지만 3시간이 넘게 헤매고 있는 그 넓은 곳에서 결국 등산화는 찾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