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PNAS.org
외할아버지 집에 만 4살에 들어 갔을 때 그 집에는 그녀보다 5살 위인 이종사촌인 데이비드 랙스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친남매처럼 지내다가 친하여져서 그녀가 14살 때 첫 애를 낳고 둘째도 낳은 후 그녀가 만 21세 되었을 때 결혼을 한다. 그들은 버지니아주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다가 결혼 후 친척의 권유로 매릴랜드주로 이사하여 데이비드는 철강공장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위 부부는 매릴랜드주에서 아이 3명을 더 낳고 위 사진과 같이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5번째 자식인 죠셉을 낳은 다음 해인 1951년 1월 헨리에타는 배에 응어리가 지고 하혈을 계속하여 동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으나 원인을 알 수 없어 "죤스 홉킨스" 병원으로 소개되어 그 곳의 전문의로부터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는다. 그 곳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서 그녀의 사전 동의 없이 암 조직세포를 일부 추출하여 병원에서 체세포 배양을 연구하는 "죠지 가이(George Gey) 박사에게 보낸다.
죠지 가이 박사는 헨리에타 랙스의 암세포가 몇번 분열 후 죽는 일반세포와는 달리 무한대로 분열하면서 죽지 아니하는 불멸의 특성을 가지는 것을 발견하였다. 분리된 하나의 세포로부터 계속 분열되는 "세포주(cell line)"를 만들어 그 것을 헨리에타 랙스의 이름을 약자로 하여 "헬라(HeLa)세포"라고 명명하였다.
헨리에타 랙스는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았으나 1951년 10월 4일 사망한다. 사인은 "요독증"으로 되어 있으나 사후 부검과정에서 암이 몸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죠지 가이 박사는 "헬라 세포(HeLa)"를 배양하여 연구 목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었다. 1954년 죠나스 솔크 박사는 헬라 세포를 통한 실험으로 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하였다. 그 이후 헬라 세포주는 암, 에이즈, 화학물질 독성 테스트 등의 광범위한 연구 목적에 사용되었다. 냉전 시대에 미국 러시아가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헬라 세포는 러시아에도 전달되었고 우주에서 생물실험을 하는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2009년까지 헬라 세포를 이용하여 60,000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매달 300편이 발표된다고 한다(헨리에타 락스의 전기를 쓴 레베카 스쿨르트 조사 결과).
출처 위키미디아 공용 형광염료로 채색된 헬라 세포
헬라세포는 실험접시 표면에 붙어 자라는 상피세포로 몇번 세포 분열 후 멈추는 일반세포와는 달리 영양분을 제공하여 주고 적당한 조건을 맞추어 주면 영원히 분열하여 자라는 "불멸의 세포"이다. 염색체 끝에 있으면서 생명의 시계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telomere)가 점점 짧아지는 것을 방지하는 효소인 텔로머레이즈(telomerase)가 활성화되는 것에 기인한다.
텔로머레이즈를 활성화하여 인간의 수명을 늘릴 수 있다는 제안도 있었다. 그러나 인체에서 텔로머레이즈를 활성화시킬 경우 암의 발생률을 높이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그래서 오히려 텔로머레이즈를 억제하여 암을 치료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다. 참고로 렐로머레이이즈는 1984년 버클리에 교수로 재직중이던 블랙번 등이 처음 발견하였고 그 공로로 그 연구팀은 3명이 공동으로 2009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헬라세포는 헨리에타 랙스의 체세포에 파필로마 바이러스가 인체 유전자를 추가적으로 옮기는 것에 기인하여 일반인의 46개의 염색체보다 훨씬 많은 82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즉 이러한 유전체 변형으로 헬라세포는 헨리에타 랙스의 원래 세포와 별개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지금 수천톤 이상이 배양된 헬라세포를 인간과 별개인 새로운 생물종으로 분류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파필로마 바이러스는 현재 여성들에게 자궁암 등의 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분류된다. 파필로마 바이러스의 암 위험성을 줄이기 위하여 최근 그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어 젊은 여성들에게 접종이 권장되고 있다.
헬라세포는 그 왕성한 번식력으로 의학 및 생물학 연구에 가장 많이 사용된 "불멸의 세포"이다. 참고로 헬라세포 이후 다른 "불멸의 세포도 다수 발견되어 의학 및 생물학 연구에 사용되지만 헬라세포만큼 많은 양이 사용된 것이 없다. 헬라세포는 왕성한 번식력으로 실험실에서 잡초와 같이 다른 세포주를 오염시키는 문제도 일으켰다.
헬리에타 랙스가 만 31세로 사망한 후 그녀는 버지니아의 가족 묘지에 묘비도 없이 묻힌다.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도 집안을 간수하던 어머니를 잃고 어려움을 겪는다. 그 가족들은 헬리에타 랙스의 암세포가 "불멸의 세포"로 자라 많은 과학자나 생명공학 회사에 의하여 이용되는 것을 오랬동안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헬리에타 랙스가 죽은 후 20년이 지난 1970년대에 그 자녀들은 혈액을 기증하여 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헬라 암세포가 다른 세포주를 오염시키면서 그 유전 특성을 정확히 알기 위한 것이었다. 그 때서야 그녀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암세포가 의학 생물학적 연구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암세포는 우주 여행도 하였다.
참고로 헬라 세포주를 배양하여 보급시킨 죠지 가이 박사는 헬라 세포주에 대해 특허권 신청을 하지 아니하고 무료로 다른 연구진들에게 보급하였다. 그 자신도 만 71세에 췌장암으로 사망하였는데 사망하기 직전에 자신의 암세포를 채취하여 세포주 연구에 이용하려는 생각을 하였는데 다른 사람들이 협조를 하지 아니하여 화를 내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듯이 순수한 열정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헬라 암세포주가 헨리에타 랙스 본인이나 가족들의 동의 없이 채집되어 순수한 연구 이외에 생명공학 회사나 제약회사들에 의해 상업적인 개발에 이용되었는 데도 불구하고 헬리에타 랙스의 가족들은 어떤 경제적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의료보험도 없이 미국서 어렵게 생활한 것은 모순이 아닌가 하는 점을 심각하게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순된 사정을 "레베카 스쿨르트"라는 작가가 조사하여 2010년 출간한 "헨리에나 랙스의 불멸의 삶(The Immortal Life of Henrietta Lacks )"이라는 책은 뉴욕타임즈에서 호평을 받고 2010년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위 책에서 레베카 스쿨르트는 헬라 암세포주가 "불멸의 세포"로 의학 및 생물학적 연구에 이용되어 수백만 명의 목숨을 건지고 많은 생명공학회사들이나 제약회사들이 그 과정에서 돈을 버는 과정에서 헨리에타 랙스 가족들은 소외된 상황을 치밀한 조사를 통하여 보여준다.
헨리에타 랙스의
2012년 김정한 한림대 의대교수와 그의 동생인 김정부 일본 국제대 교수에 의하여 한글 번역판도 출간되었다. 일반인에게 생명공학의 자유로운 연구 보장과 가족들의 권리를 조화하여야 하는 심각한 윤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로 위 사안에서는 헬라 세포주를 개발한 죠지 가이 박사가 특허를 출원하여 개인적으로 상업적 이득을 취한 바 없다. 그러나 죤 무어라는 사람이 1976년 UCLA의대 병원에 들어가서 백혈병 치료를 받은 후 담당 의사가 죤 무어의 분리된 췌장에서 세포주를 개발하여 특허를 내고 상업적인 이득을 취한 사안이 있었다. 죤 무어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1990년 " Moore v. Regents of the University of California " 라는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이 심리하게 되었다. 이 경우에서 캘리포니아주 대법원은 연구자의 자유를 더 존중하여 죤 무어가 그의 분리된 신체 부분에 대해 재산적인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다만 이러한 상황을 의사가 제대로 고지하지 아니한 것에 대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서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판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캘리포니아주 대법원 판결이 의학 연구자에 너무 치중된 것이 많다는 비판도 많다. 향후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전에 합리적으로 조정을 하는 방안이 마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레베카 스클루트의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 셀러가 된 후 그 반향이 크게 일어났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자궁암으로 5명의 자녀를 남기고 가면서 헨리에타 랙스가 남긴 헬라 세포가 인류의 의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비석도 없던 그녀의 무덤에 새로 비석을 세우고 그녀의 자손에 대한 의료, 장학 기금도 만들어졌다. 자손들도 그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인류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의료문제는 점점 더 심각하여 질 것이다. 최근 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이용한 "맞춤의학"이 의료비 절감과 질병의 조기발견이나 예방 등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 주면서 반면에 그 자료가 공개 될 경우 보험이나, 취직 등에 차별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헨리에타 랙스의 경우를 보면서 각 개인의 유전자 정보나 의료 샘플을 이용한 의료발전 연구와 그 개인의 존엄성이 합리적으로 조화되는 방향으로 사전에 조정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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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공석환 생각 원문보기 글쓴이: 사슴의 정원
첫댓글 죽으면 어차피 썩어서 없어지던가,,,,죽으면 화장을 하여서가루가되어 없어지던가,,,,찬찬히 읽어보왔다,,,우리나라에서 실험에 기부하는 몸(사체)이 적어서 힘이든다는 애기를 들었다,,,,내가 죽어서 나이외 다른사람에게 좋은일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난 나의 몸에 사후여러게의 장기를 기부를 하였다,,,내가 알던 수덕사 주지스님이였던 법장스님 (총무원장님:김계호)지금은 작고하셨지만 신체기증일부라도 기증운동을 하였지,,,그래서 나도 거기에 동참하였다네,,,우리가 죽으면서 뭘 더 바라나,,,,,해줄수가 있으면 해주어야지,,,,
신체 기증 운동도 좋고 사체 기부 운동도 의학 발전에 도움이 된다.
내 친척 중 가장 유명하신 공병우 박사님이 사체 기증을 하신 바 있다.
그러나 그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