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니?”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시어머니가 자리에 앉으면서 번갈아 쳐다본다.
“예,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요.”
애순이 먼저 대답을 가로 챈다.
넷이 되니 또 선희는 남의 식구 속에 끼어있는 듯 뭔가 거북하고 불편하다.
세 사람은 척척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은데 자신만 이야기 속에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낯설다.
수용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다.
세월이 가면 낳아질 것인가?
잠시 이런 생각에 빠져 있었다.
“배 타러 가자니까, 무슨 생각하느라고 넋 놓고 있어?”
태무가 언성을 높이고 있다.
“예? 저는 배를 탈 생각 없어요, 어지러워서요, 아가씨, 아가씨랑 타고 오세요.”
누구에게라도 미루고 싶었다.
“그래도 언니랑 타셔야지요, 누가 보면 오빠랑 나랑 부부사이로 오해 하겠다.”
웃으며 태무를 올려다보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왜, 배를 못 타니?”
“예, 좀 어지러워서요.”
시어머니를 보며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애순에게 다시 눈짓을 했다.
“정말 안 타려고요?”
애순이 몸을 일으키며 선희 얼굴을 말끄러미 쳐다본다.
“다녀오세요.”
태무와 애순이 어께를 맞대고 배타는 곳으로 갔다.
“왜, 어디 아프니?”
“아니요, 요즘 속이 좀 울렁거리고, 좀 어지러운 것 같아서요.”
“그럼 오늘 공연히 놀려 나왔구나.”
“아니에요, 바람을 쏘이니 좀 괜찮은 것 같긴 한데요.”
“그래?”
대수롭지 않을 일을 다 말하는구나, 하는 표정인 것 같다.
시어머니가 호수 쪽을 보고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지 손을 흔들어 보인다.
바다를 보고 자란 탓인지 작은 호수가 큰 정원의 연못이라는 생각이 들고 작은 배를 띄우고 좋아들 하는 것이 장난 같기도 했다.
길 건너 진디 밭에서 들어 올 때 만났던 아주머니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언니, 여기요, 여기!”
몇 번을 불렀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과 근처에 모여 구경하는 사람들 말 속에 묻혀 누가 누굴 부르는 지 알 수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저기 그 아주머니께서 부르시네요.”
호수 쪽에 아들을 눈으로 쫓느라 정신을 팔고 있던 시어머니가 돌아보고 알았다는 듯 손을 흔들어 보인다.
“애들 나오면 갈 테니 먼저 저리 가 있어라.”
“예.”
“그래 색시네 집이 잘 산다며?”
“잘 살기는요, 그저 그렇지요.”
“소문이 짝 났어, 부자 집 며느리 얻어, 언니네 팔자 폈다고.”
“아이, 부끄럽게 그러지 마세요, 잘 살지 못해요.”
“곱게도 생겼네, 꼭 인형 같다, 드레스 입었을 때보다 가까이서 보니 참 예쁜 얼굴이다.”
감탄한 듯 입을 벌리고 혀를 홰홰 내두른다.
아주머니의 과장된 표정과 칭찬이 쑥스러워 고개를 숙이고 입을 막고 웃었다.
“아냐, 나도 사람 보는 눈은 있어, 정말 곱다, 심성도 참 곱게 생겼겠다.”
“부끄러워요, 아주머님 그만 하세요.”
얼굴을 붉히며 아주머니를 쳐다봤다.
“눈도 어쩜 그렇게 곱나? 참 곱다 고와!”
말도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한숨을 푹 내쉰다.
“아이고, 언니 성격에 시집살이나 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어쩌나?”
선희의 손을 꼭 쥔다.
“언니 성격이 보통인 줄 아니, 여기서 장사를 못하고 쫓겨난 게 순찰 얼굴을 손톱으로 핥기고 넘어뜨려 놓고 발로 지근지근 밟아 녹초를 만들어 버렸었단다, 도망가다가 넘어져서 태무가 땅에 이마를 찍어 다쳤었거든, 애기 얼굴에서 피가 나는 걸 보더니 정신없이 덤비는데, 어휴, 그 때 창경원이 들썩했지, 장사하는 아주머니들 모두 보름 정도 장사도 못하고 얼씬도 못했지. 그런 시어머니다, 성질 안 건들게 조심해라. 어유, 어쩌면 이렇게 곱게 생겼을까.”
등을 다독거리며 속사포처럼 쏘아댄다.
뭐라 대답할 새도 없다.
“순찰 아저씨 창피해서 여기 더 근무 못하고 그만 뒀지, 하기야 그 바람에 다시 장사하려 나왔더니 순찰들이 좀 순해지긴 했더라.”
그때를 상기하는지 허리를 붙들고 한참 웃는다.
“다 옛날이야기가 됐구나, 그리고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해서 돈 많이 벌었단다, 나도 그때 시장 가서 장사나 할 걸 여기 장사가 이십 년이 다 되가는구나.”
연신 말을 하면서 보자기를 끌러 구워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오징어를 한 마리 권한다.
“자 이것 좀 먹어 봐, 군것질하면서 구경하는 것이야,”
신문지를 펴고 받지 않는 오징어를 쭉쭉 찢어 놓는다.
나무 도시락에 김밥도 풀어 놓고 삶은 달걀도 내놓는데 눈은 시어머니 쪽을 보고 있다.
“저기 온다, 내가 한 말 언니한테는 하지 말라, 알았니?”
하라 해도 못할 말을 하지마란 아주머니 얼굴을 보며 킥킥 웃는 선희는 오랜만에 마음 놓고 웃는 웃음이다.
“오빠 먼저 걸어 가, 언니가 눈치 챌라.”
“도둑이 제 발 저린 다고, 오늘은 자연스럽잖아?”
“아니야, 언니 눈치가 이상해.”
“별 걱정을 다하는구나.”
“오빠 보트 타러 갔을 때 뭔가 꼬치꼬치 묻더라니까.”
몇 발짝 앞서가는 태무어머니가 들릴까 봐 소곤거리며 걷다보니 바짝 붙어 걷고 있었다.
앞서 걷던 시어머니가 돌아보며 태무와 애순에게 말을 건네는 바람에 선희도 그들을 보고 있었다.
“너 네들은 뭐가 그리 좋아 히득거리니?”
얼른 한 발짝씩 떨어지며 당황하듯 어색한 표정을 감추고 있었으나 조금 떨어진 거리라서 선희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예, 갑니다.”
태무가 대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고, 애순이 느린 걸음으로 뒤에 처졌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니?”
“별 얘기 아니어요, 지나가는 사람 이야기 했어요.”
“애가 싱겁긴.”
둘러 앉아 오징어며 김밥을 먹는데 선희는 식욕이 없어 들었다 놨다만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삶은 달걀에 소금을 뿌려 건너며
“목 메이면 이 사이다 마시고,”
병마개를 따 주며 너랑 나랑 둘이서만 이야기한 친한 사이라는 듯 눈으로 웃는다.
마주 웃어주며 두 손으로 받아들고 한 입 베어 무는데 노른자위 비린내가 오늘따라 역겹다.
뱉을 수 없어 사이다를 한 모금 입에 물었는데 냄새가 입안에 부풀 듯 입안 가득 차오른다.
손으로 입을 막고 일어나 몇 발짝 가서 구부리고 뱉어냈다.
“아니, 달걀이 상했나, 제가 왜 저래?”
시어머니 퉁명스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고 아주머니가 뒤이어
“아침에 나올 때 삶아 온 건데 상하기는 왜 상해요?”
황급히 일어나며 선희에게 다가서며 하는 말이다.
등을 쓸어주며
“왜, 사래들었나?”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비위가 상해서요.”
미안하다는 듯 몸을 수그려 꾸벅 인사하며 미안하다는 듯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노른자위가 비리니?”
“예, 다른 땐 몰랐는데요.”
한 손을 선희 등에 얹고 태무네 가족이 앉아 있는 쪽을 향해 반색을 하며 소리치듯 말한다.
“언니, 애들 애 가질 때 됐지요?”
“뭐?”
“좀 이상하네요, 노른자위가 비리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