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 이어 미국이 확대한 불확실성이 16일 국내 금융시장을 덮쳤다. 주식·채권·원화가 동반 급락하는 '트리플 약세'가 나타났다. 이란과 이스라엘의 대립에 따른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미국의 소비지표까지 호조를 보이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이 낮아진 여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50원 오른 1달러=1394.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오전에 한때 1400원대에 도달하기도 했다. 장중 1400원을 기록한 것은 2022년 11월 7일부터 17개월 만이다. 이처럼 원화 가치가 급락하자 외환당국도 공식적으로 말 개입에 나섰다.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오후 3시경 환율 동향, 외환 수급 등에 각별한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도한 외환시장 쏠림은 한국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45원 이상 떨어졌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 12일 1370원대, 15일 1380원대에 도달한 데 이어 16일 1390원 수준까지 넘어서는 최근 하락폭은 가파르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장중 1400원까지 기록한 것은 닥치는 대로 달러를 사들이는 패닉성 심리가 나타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안전자산인 달러를 일단 사두자는 심리가 작용한 것" 이라고 말했다.
이날 주가와 채권 가격도 동반 하락했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2.28% 내린 2,609.63으로 마감했다. 1월 17일의 2.47% 하락에서 3개월만의 하락폭이다. 삼성전자가 2.68% 하락, 셀트리온이 3.70% 하락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 대부분이 내림세를 보였다. 외국인 투자자가 2700억원 넘게 순매도하며 증시 전체를 끌어내렸다. 한때 1400원까지 올랐던 환율이 외국인의 자금 수급에 악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 굳건한 미국 경제, 한국 시장엔 악재로
채권시장에 따르면 10년물 국채금리는 전날보다 0.057%포인트 오른(채권가격은 하락) 연 3.618%로 장을 마쳤다. 올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이다. 3년물 국채 이율도 0.029%포인트 오른 연 3.469%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한국 시장에는 견고한 미국 경제가 전방위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강한 경기지표에 미국 경제가 둔화되지 않고 '노랜딩(무착륙)'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대했던 금리 인하 전망도 크게 후퇴하면서 고금리 고통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5일 발표된 미국의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해 시장 전망치인 0.3%를 웃돌았다. 5일 발표된 미국의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30만 3000개 늘어 시장 전망치인 20만개를 크게 웃돌았다.
물가 상승이 쉽게 둔화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시장도 금리 인하 기대감을 낮추는 분위기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FED워치는 소매판매 지표 발표 직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9월 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횟수도 1회에 그칠 확률이 가장 높다고 예상했다. 시장에서는 FRB가 지난 6월 첫 금리 인하를 시작해 올해 세 차례 금리를 내릴 것으로 봤다. FED워치에 따르면 16일 오후 5시 기준 6월 금리 동결 확률은 74.9%, 7월은 51.9%에 달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차분한 통화정책 불안심리를 미국 소매판매 서프라이즈가 다시 자극했다"고 밝혔다.
고금리 장기화 우려는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지수(1973년=100)는 이날 106.21로 올라 5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엔-달러 환율도 154엔대까지 하락해 1990년 6월부터 34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안갯속 중동 정세도 위험자산 회피 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13일 밤 본토를 공격당한 이스라엘은 이란에 대한 재보복 카드를 고심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확전을 택한다면 달러 강세가 심화되고,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는 더 크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전쟁으로 에너지 가격이 높아지는 가운데 미국의 강한 소비까지 이어진다면 물가상승률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FRB도 금리 인하 수준을 낮출 수밖에 없지만 이에 따른 환율과 경기 불안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