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5 - 4. 30 성옥기념관갤러리(T.061-244-2527, 목포)
이동해 개인전
Flower`s Talk #6 ‘꽃들이 말하다’
이동해 작가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인생과 예술과 신앙이 삼위일체로 통합되는 과정이기도하다. 그러므로 그림 그리는 과정이 영성과 종교적 경건을 실천하는 일과 다름없다.
글 : 모지환(미술비평)
Flower's Talk 그리움속으로145.5x112.10cm천에 분채 석채 2014
자연의 관상학
이동해 작가는 자연을 관상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는 꽃들의 얼굴에서 희로애락을 감지하고 그들의 운명을 점지한다. 거대한 잠으로부터 홀연히 솟구치는 영혼의 투명한 외침.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잠에서 깨우는가? 화가는 목격자다. 세상에 무수한 몸짓이 있고 화가는 그것을 증언한다. 그러자 마침내 꽃들이 스스로 말을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꽃들은 제각각 무용수들이며 그들의 몸짓 하나 하나가 각각의 우주다. 우주는 양자(量子)들의 거대한 춤을 통해 기묘하게 균형잡혀 있는데 꽃과 나비는 그러한 춤추는 우주에 대한 가장 시적인 은유다. 자연 풍경에서 떨어져 나온 이미지들은 꿈의 작용에 의해 심상이 된다. 그것은 광활한 우주속 신성한 행성을 꿈꾸는 지구인의 화접몽(花蝶夢)이다.
Flower's Talk 기쁜날53.0x45.5cm 천에 분채석채2016
에코토피아의 사계(四季)
이동해 작가의 회화세계와 작업방식은 19세기의 유명한 유토피아주의자 윌리엄 모리스를 떠올리게한다. 이동해 작가의 작업환경을 보면 전인적 인간으로 추앙받고있는 윌리암 모리스(William Morris)의 생활양식이자 신념이었던 생활 유토피아가 연상된다. 아름다운 서창호수가 한눈에 펼쳐지는 언덕위의 하얀 집 '푸른호수'갤러리는 자연을 동경하며 자연과 함께 숨쉬는 이동해 작가의 에코토피아(ECOTOPIA)를 위한 실천적 작업 공간이다.
그곳 '푸른호수'의 정원 곳곳에는 엉겅퀴,루드베키아, 달맞이꽃 등 야생화들이 꿈틀대고 있다. 이동해 작가가 그리는 꽃은 예쁜꽃들이 아니라 그저 정원에 피어있는 꽃들이다. 화가에게 수많은 꽃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는 정원에 꽃씨를 뿌리고 손수 가꾸어 낸 꽃들을 그린다. 뿌리없는 꽃이거나, 내 뜨락에서 자라지 않은 꽃들은 아무런 영감도 주지 못한다고 스스로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언뜻 생명이 없어보이는 작은 씨앗이 위대한 형상으로 변모해가는 대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경이를 지켜보면서 만물에 편재해있는 신성(神聖)을 체득하고자 한다.
Flower's Talk 모정53.0x45.5cm 천에 분채석채2016
에덴동산의 기억속으로
플라톤은 화가란 사물의 그림자를 그릴뿐이라고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모방을 통해서 원형, 즉 이데아를 기억해 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리는 행위 자체가 어쩌면 모방이 아니라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무엇에 대한 기억인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이름을 부르기전에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꽃들에게 이동해 작가는 이름 대신 얼굴을 되찾아준다. 꽃들의 풍부한 표정은 대지의 일종의 생리현상이다. 작가는 그것을 풍자의 캐리커처로서가 아니라 미학적 인식의 확대경으로서 조명한다.
그럼 왜 꽃일까? “어느날 집에서 키우던 야생화들을 자세히 살펴보다가 꽃들도 사람들처럼 제각기 표정들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여기서 예술가의 감각적 예민함은 윤리적 이상,종교적 각성으로 나아간다. 땅위에서 핀꽃이 시든 이유는 병들어서가 아니라 “먼저 핀 꽃이 새로 필 꽃을 위해서 시들어가면서 나중것의 양분과 지주가 되어 줍니다”
이동해 작가는 가장 낮은곳에서 존재자의 숭고한 영성(靈性), 자연의 섭리를 본다. 그러므로 시들어가는 꽃들은 작가의 화폭에서 존엄하게 마지막 불꽃을 피우며 희열한다. 캔버스는 이제 영혼의 평화를 간청하는 레퀴엠이 된다.
이동해 작가에게 그림 그리는 행위는 인생과 예술과 신앙이 삼위일체로 통합되는 과정이기도하다. 그러므로 그림 그리는 과정이 영성과 종교적 경건을 실천하는 일과 다름없다. 자연과 세계의 하모니를 염원하는 작가의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통해 생명의 회복은 신의 은총으로, 작가의 소명은 신명으로 귀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