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8]<한글서예변주전> 단상(2)
<한글서예변주전>에 출품한 작품 82점 모두 짧은 설명이 있어도 좋겠지만, 아무래도 무리이다. 개인적으로 1편에 이어 꼭 실었으면 하는 우리말 노래 6곡을 뽑은 ‘무례’를 양해하시라.
#6. 백설희의 <봄날이 간다>
너무나 유명한 노래. “한국 가요사가 낳은 최고의 절창”(작사가 이주엽). ‘봄날’이라는 키워드로 인생의 수많은 비밀을 풀어낸, 단순한 것같으나 심오한 뜻을 가진 노래. 이 땅의 가수라면 한번쯤 자기 식대로 불러보고 싶은 노래. 1953년 당시 3절로 발표됐으나, 문인수 시인이 4절을 덧붙였고, 5절은 언론인 임철순이 추가했다. 하석 박원규님은 5절의 노래말을 써 출품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맹세에/봄날은 간다/(후략)>
같은 곡인데도 가수마다 노래의 색깔이 다르다. “조용필은 슬픔을 단단히 끌어들이고, 장사익은 토해낸다. 배호는 절제된 슬픔을, 한영애는 끈적하고 퇴폐미 넘치는 슬픔을 보여준다. 김정호는 처절하다. 이토록 수없이 다시 부른 노래가 또 있을까?”(작사가 이주엽의 평). 아마도 없을 듯하다.
한 문학평론가(박영진)는 『사랑의 인문학 번지점프하다』에 이 노래를 문학적으로 풀어낸 특강을 실었다. 그 스토리텔링이 흥미진진하다. 어느 시전문지가 국내 유명 시인 10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을 물었는데, 단연 <봄날이 간다>가 1위. 2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3위 <북한강에서>였다고 한다. 가장 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한 노래. 가장 많은 시인들이 읊은 시, 소설로, 희곡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연극으로, 악극으로, 뮤지컬로, 심지어 미술로도 영역을 변주하여 넓힌 그 노래.
#7. 전래 단가 <사철가>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정녕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왔다갈 줄 아는 봄을 반겨한들 쓸 데 있나/(후략)>
영화 <서편제>(1993)에서 주인공 유봉(그 덕분이었을까? 김명곤은 문화관광부장관을 지냈다)이 불러 널리 알려졌다. 전반부는 사계절로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허무함을, 후반부는 어떤 사람도 늙음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더 늙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할 일(효도와 우애)을 하고 놀아보자는 내용이다.
판소리하기 전에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短歌이다. 1969년 김연수가 처음 <사시풍경>이라는 이름으로 녹음한 게 최초. 89년 조상현이 녹음한 내용은 처음 것과 많이 다르고 조금 쉽게 풀었다.
향원 김윤숙님은 일면식도 없지만 어떤 인연으로 임실 나의 우거에 <愛日堂> <久敬齋> 편액을 써준 고마운 분이어서, 이 작품이 더욱 반가웠다.
#8. 나훈아의 <세월 베고 길게 누운 구름 한 조각>
음치를 무릅쓰고 최근 내가 곧잘 부르는 노래 작품 앞에 섰다. <테스형>을 부르면 박수를 받기도 한다. 가황歌皇 나훈아의 노래는 버릴 것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음치일수록 노래말이 길어야 하고 단조로워 한다. 주위의 눈치 볼 것없이 끝까지 불러야 하고 노래말을 분명히 전달해야 ‘힘’이 있다. 흐흐. 2절의 노래말을 더 좋아한다.
<(전략)/늙은 소 긴 하루를 힘들어하네/음메 하며 힘들어하네/삐딱하게 날아가는 저 산 비둘기/가지 끝에 하루를 접네/여보게 우리 쉬었다 가세/남은 잔은 비우고 가게/가면 어때 저 세월/가면 어때 이 청춘/저녁 걸린 뒷마당에 쉬었다 가세/여보게 쉬었다 가세>
임영웅, 박서진도 불렀다. 석지 김응학님이 썼다.
#9.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불고 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에 공원/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한국전쟁 직후 명동의 주점 <은성>에서 살다시피 한 예술인 중에 댄디스트 시인 박인환 (1926-1956)이 있었다. 그의 시 <세월이 가면>을 노래로 만들었다. <지금도 마로니에는 피어 있겠지/루루루루루/어쩌고저쩌고> 박인환 시인 덕분에 대학로의 ' 마로니에’ 나무 이름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내 친구 시인(원탁희)은 시전문계간지 <시현실> 을 창간하여 90호가 넘게 아직도 펴내는 뚝심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문학적 공적 중 하나는 <박인환문학상>을 제정,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시상해 오고 있는 걸일 터, 24회째이다. 그의 똥고집이 아니면 이뤄질 수 없는, 진짜 대단한 일.
#10. 김태곤의 <송학사>
1976년 한복에 삿갓, 짚신 차림으로 꽹과리, 장고, 대금 등을 들고 나와 <송학사>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절이름의 노래를 부른 가수가 있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매나/밤 벌레의 울음 계곡 별빛 곱게 내려 앉나니/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가 보세/(후략)>
퓨전음악이었다. 산 모퉁이 바로 돌아 절이 있다는 것은 ‘진리가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여기 있다’는 것을 뜻하는 거라며 불교계가 반겼다고 한다. ‘깊은 산속을 헤’맨다는 것은 무명無明 속에서 방황하는 중생의 모습을, ‘님에게로 어서 달려간다’는 것은 피안彼岸을 향해 간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같다.
#11.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
<창문을 열고 음 내다봐요/저 높은 곳에 푸른 하늘 구름 흘러가며/당신의 부푼 가슴으로 불어오는/맑은 한 줄기 산들바람//살며시 눈 감고 들어봐요/먼 대지 위를 달리는 사나운 말처럼/당신의 고요한 가슴으로 닥쳐 오는/숨가쁜 자연의 생명의 소리/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주리오/내 작은 가슴을 달래 주리오//(후략)>
<시인의 마을>은 1978년 정태춘의 데뷔앨범 타이틀곡. 군대를 갓 제대한 후 지은 내공이 그때부터 보였다. 앨범에는 또다른 히트곡 <촛불>도 있었다. 노래말이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가사 일부를 고쳐 발표했으나, 이후 정태춘은 음반 사전심의제에 분연히 항거하고 모든 인터뷰도 사양했다. 그의 줄기찬 노력으로 95년 국회에서 법률개정안이 통과됐다. 오죽하면 <촛불> 등 지극히 서정적인 노래들을 부르지 않고, 민중가요에 집중했을까. 그의 곁에는 가수 박은옥이 항상 함께 했다. 그들처럼 아름다운 ‘가수 부부’는 흔치 않을 듯. 백기완선생 출판기념회때 그 좁은 ‘학림다방’에서 육성으로 <황토강으로>를 팔뚝을 불쑥 내밀며 불러제키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노래말처럼 그가 ‘일몰日沒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방랑자’처럼 보인다. 외로운 것같아도 전혀 외롭지 않은 '사상가'가 된 듯하다. 그는 이제사<촛불>, <시인의 마을> <북한강에서> 등도 부른다. 그의 웅숭깊은 목소리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