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3.1.6(금) 15;50-17;50 ★관람 장소;대한극장 3층 ★관람인원;10명 ★만찬 장소; 대한극장 맞은편 쌈사랑(02-2261-3233)
대열동기생 여의도포럼은 2023년 1월 첫째주 금요일로 대한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웅'을 관람하는데 있다. 하늘은 비나 눈이 내릴 것 같은 잔뜩 흐린 날씨였다. 오후 3시 20분 충무로역 1번출구에 동기생 10명이 모였다. 영화관람시간은 오후 3시50분부터 5시50분까지 2시간이다. 전인구 회장은 티켓과 팝콘, 커피를 구매한 후 동기생들과 함께 영화관 3층으로 향했다. 영화관에는 평일이라 그런지 객석이 썰렁한 분위기였다.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의 삶을 그린 뮤지컬 장르 영화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3년 동안 개봉을 기다렸던 작품이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목 영동방 청풍리(현 황해남도 해주시 광석동)에서 안태훈(1862-1905)과 어머니 배천 조씨 조마리아 사이의 3 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안중근은 태어날 때 등에 검은 점이 7개가 있어 북두칠성의 기운으로 응하여 태어났다고 하여 어릴 때에는 '응칠'로 불렸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조국의 독립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머나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함경북도 신아산에서 1908년 7월 국내 진공작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동지들은 포로로 잡힌 왜군들을 총살하려고 하였으나 의병 대장인 안중근 의사는 만국공법에 따라 죽이지 않고 놓아준다.
그러나 영산전투에서 진지가 폭로되어 독립군은 참패를 당한다. 안중근 의사는 마음을 다시 잡고 대한독립 의지를 불사른다. 이를 위해 네번째 손가락을 자르고 조국의 독립에 대한 결의를 태극기 앞에 맹세한다. 이를 단지동맹이라고 한다. 그렇게 의열항쟁은 시작한다. 최우선 목표는 이토히로부미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후 독립운동가 최재영을 만난다. 거사 당일 하얼빈역에서 잠복하게 되는데 시간이 다가올수록 일본군은 추격이 점점 더 심해진다. 일본 경찰에 쫒기는 안중근 의사 일행은 무사히 빠져나와 성공한다.
안중근 의사는 정보원으로 부터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 회담을 위해 하얼빈 방문한다는 중요한 정보를 접수하게 된다.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에서 러시아 재무대신과 만주관할권 협상과 한국 식민지화에 대한 협상할 예정이었다. 1909년 10월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러시아 의장대 앞으로 걸어나오는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후 '코레아 우라(대한민국 만세)'라고 크게 외치며 러시아 군대에 체포된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의 1, 5, 7, 10대의 총리이자 청일, 러일전쟁 승리의 주역이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죽이고 재판을 받을려고 했다.
그러면 전 세계의 언론이 이 재판에 주목할 것이다. 여기서 일본이 뭘 잘못했는지를 낱낱이 밝히려고 했다. 이렇게 치밀한 계산을 하고 거사를 치른 것이다. 재판이 열릴 때 자신의 동양평화론을 알리고자 했다. 현장에서 체포된 안중근 의사와 세 동료는 살인 죄목으로 일본 법정에 서게된다. 안중근은 누가 죄인인가?라는 의연한 태도와 모습에 큰 감동을 받았다.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두 손 묶인 채 감옥으로 향하는 남편 안중근 의사를 보고 오열하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조마리아 여사는 뤼순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어미 보다 먼저 죽는 것은 불효라 생각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서 목숨을 구걸하지 말라" 라는 편지를 쓰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폭풍같은 눈물이었다. 다른 관객들도 똑 같은 반응이라 생각된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직전에 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옥중에 있던 안중근의 평화주의적인 사상 <동양평화론>을 지켜보던 일본인 간수는 안중근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으며, 안중근은 일본인 간수에게 "위국헌신군인본분'' 이라는 글귀를 선물로 준다. 안중근 의사는 어머니가 보내주신 수의을 입고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형장에서 말하기를 "나는 대한 독립을 위해 죽고, 동양평화를 위해 죽는데 어찌 죽음이 한스럽겠소"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옥중에서 많은 휘호를 남기고 자신의 사상을 논하는 글인 "동양평화론"의 서문을 저술하다 사형이 집행되어 생을 마감했다.
이 때 안중근 의사의 나이가 32세였다. 안중근 동생들은 형의 시신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일본은 거부했다.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항일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안중근 의사의 시신은 1세기가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어디에 묻혔는지 모른 채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묘는 효창공원에 있지만 묘는 비어있다. 안중근 의사는 대한제국 말기에 활약한 계몽운동가이자 군인이며 독립운동가, 평화적 아시아주의자이다. 유관순, 김구, 안창호, 이봉창, 윤봉길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운동가이며 애국자이다.
뮤지컬 영웅은 우리에게 모두가 기억해야할 안중근 의사의 뜨거운 마지막 1년을 알려주고 있다. 이 영화는 애국심을 고취시켜준 하나의 작품으로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뜨거운 열연이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여 잊지못할 여운을 선사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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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짧지만 안중근 의사의 애국활동이 잘 요약된 성근이 후기 잘 읽었네. ! 나도 1월27일 신사역 인근 롯데시네마에서 안중근 의사 어머니 좌마리아 여사로 분한 나문희 배우의 노래를 듣고 눈물흘릴 것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