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1일(월) 욥기 36:24-33 찬송 453장
24.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25.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26.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27.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그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30.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32. 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33.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개역 개정)
지난 말씀(1-23절)에서 엘리후는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밝히며 고난 중에도 그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며
그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을 얻어야 함을 교훈했다.
특히 바로 앞단락인 17-23절에서는 고난 중에 경계해야 할 일들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고난받는 자의 마땅한 자세를 역설적으로 교훈하였는데
오늘 말씀에서는 보다 포괄적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와 권능을
여러 가지 자연 현상을 통해 설명함으로써 그 안에 살고 있는
하나의 피조물로서의 인생이 마땅히 취해야 할 찬송과 겸손의 자세를 교훈한다.
즉 엘리후는 인생들이 마땅히 찬송해야 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자연 현상들 속에서 찾아내어 증거하고 있는데
특별히 여기에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 두 가지가 강조되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측량할 수 없이 무한하신 하나님의 섭리의 위대함이며(25-26절)
또 다른 하나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권능이다.(27-33절)
특히 여기에서 그러한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을 설명한 엘리후의 의도는
각각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담긴 고난을 지극히 현상적이고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세 친구와 욥의 신앙적 한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또한 그 고난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섭리와 절대적인 주권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는 듯한 욥을 향해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과 공의로운 섭리 앞에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순종할 것을 인식케 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실로 무한하신 섭리와 권능으로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로서의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을 찬송함으로써 그분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일이다.
또한 온 우주의 현상을 친히 이루시고 공의로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연 현상을 심판의 도구로 이용하시든지,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시든지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의 섭리와 절대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그러한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 앞에서 지극히 연약하고 허물많은 인간은
오직 겸손하게 순종할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26절)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엘리후는 하나님은 크고 높으시므로 인간이 그를 알 수 없고
그 연수를 계산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연수를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은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유한한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 어떤 노력으로도 판단하거나 조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한한 존재를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은 찬송과 경배의 대상일 뿐
인간들에게 판단의 대상이 되실 수 없는 분이라는 말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하나님을 함부로, 멋대로 판단한다.
특히 하는 일들이 내 뜻대로 잘 안될 때
너무 쉽게 하나님을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다.
가나안 땅을 탐지했던 열두 명의 정탐꾼들 가운데
가나안 땅에 대해 악평한 열 명의 사람들(민13:31-33)은
하나님을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부짖으며 모세를 원망했다.
차라리 애굽에 그냥 있는 것이 낫지
여기까지 와서 이제 몰살을 당하게 하느냐며 원망했다.(민14:1-3)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탐꾼들이 탐지한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명의 정탐꾼들은 자기들이 그 땅을 살펴본 결과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으며
백성들은 그들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급기야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는 말까지 하게 되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을 판단한 것이 된다.
자기들이 탐지한 결과 그 땅을 도저히 차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결국 그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판단한 것과 같다.
즉 그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하나님으로 판단한 것이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제사장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함부로 판단했다.
자기들이 만든 교리와 계율 속에 하나님을 집어넣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판단하고, 하나님도 그런 분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은 그 어디에도, 어느 것에도 제한을 받지 아니하시는 분임에도
그들은 하나님을 율법의 틀 속에 집어넣고 그릇되이 하나님을 섬겼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준엄한 책망과 경고를 들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생각과 고집만을 내세우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극악한 죄를 범하기까지 하였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므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분을 높여드리며, 찬양하며,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경배할 뿐이다.
우리의 작은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제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고전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