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조선여성기질-김남천
분야: 어문 > 수필 > 중수필/평론
저작자: 김남천
창작년도: 1938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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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89명이 이번 봄에 전문 정도의 학교를 나와서, 사회로 가정으로 흩어졌다. 이 밖에 동경이나 또는 서울 외의 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도 많을 것이요 중학교를 졸업한 채 가정으로 돌아온 분도 많을 것이므로 조선사회는 새로이 적지 않은 숫자의 고급 학문의 수업 여성을 맞이한 셈이다. 모두 20 전후의 젊은이들이매, 그들의 가슴속에는 제 각기 하나씩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품고 교문을 나섰을 것이다. 이미 이 해도 반이 기울어서 그들의 무지개들이 얼마나 찬란하게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지 차츰 실험기에 들어가고 있다 할 수 있는데, 하나 하나 그것을 조사할 길이 없으니 상세한 바를 묘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문을 나서기 전에 졸업을 앞두고 그이 들이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었는가의 일단을 규시(窺視)할 수 있는 통계가 나에게 있다. 그들의 사상을 물을 것도 아니고, 그들의 인생에 대한 태도를 질문한 것도 아니나, 이러한 것이 가장 비비드하게 노골적으로 노현(露顯)될 수 있는 이상적 남편의 선택 기준에 대한 숫자이다. 어떠한 사나이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가? 그들의 무지개의 실제적인 뉘앙스는 어떠한 것일런가? 이것이 그 곳에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사를 『여성』지 3월호에서 읽어보고 이즈음 여학생들의, 불과 한 달이 지나면 당당한 숙녀가 되는 결혼 적령기 처녀들의 가슴에 품고 있는 무지개가 얼마나 빈약하고, 또한 실리적인 것임에 일경(一驚)을 끽(喫)한 이는 결코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다른 조항은 다 말고 ‘취미’와 ‘직업’을 물은 곳만 생각해 보아도 이들이 생각하는 바가 어떠한 정도의 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의 취미를 물은 곳에서 이들 89명의 처녀들은 제1로 문학을 들었다. 그 수가 35명. 그 다음 33명은 스포츠. 제3위로 음악이 28명이다. 이 이외에도 또 여럿이 있으나 그 중 주의할 것은 대부분이 ‘문학과 음악’ ‘문학과 스포츠’ ‘스포츠와 음악’ ─ 이렇게 두 개씩을 겸하였다고 하는 동지 기자의 주가 붙은 곳이다.
이 ‘취미’를 보면 이즈음 처녀들이 얼마나 세련된 감각과 건강한 취미를 향락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다. 사상적인 것이 퇴조를 한 뒤에 이들은 교양미라든가 섬세한 감각미라든가, 건강미라든가를 좇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니 이 또한 시세의 탓으로 수긍할 모가 없지 아니하다.
그런데 한편 눈을 돌려 남편의 직업은? 하고 물어 보았을 대 그곳에 나타난 숫자는 단연 실업가가 제1위로 33인, 전체의 3분지 1일 훨씬 넘는다. 교원이 17인, 월급생활자가 14인, 의사가 9인, 변호사가 5인 등등이다. 이상 5위까지의 직업을 보면 모두가 현세에 있어 가장 튼튼한 직업뿐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생활의 안정을 구하는 것이다. 이 통계로 보면 신여성이 결혼을 일종의 취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극언하여도 대답할 길이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자산을 물은 곳을 이 곳에다 함께 놓고 보면 직업은 상당하더라도 기본 자산으로 1, 2만원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 24명, 중류라고 한 것이 15명, 5만 원이 7명, 10만 원이 6명이다.
*(현재 시세로 1만 원은 500억 원 이상)
이상 직업으로 실업가를 희망한 처녀 중에 취미로서 문학이나 음악을 들은 이는 적지 아니할 것이다. 과연 지금과 같은 상태로써 실업가라고 지칭되는 분들 중에 문학을 독서하고 음악을 즐길 자가 얼마나 될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그러므로 이들, 이노센트한 처녀들의 희망대로 그들의 눈앞에 대실업가가 나타났다고 하여도, 그가 또한 음악이나 문학을 취미로 하는 자일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이런 상대자가 하나의 고상한 취미도 갖지 않았고 타방 불안한 생활이기는 하나 높은 취미는 가지고 있다는 자(者)의 들을 놓고 어느 것을 취하겠는가고 물을 때에 이 귀여운 처녀들이 무엇에다 점을 칠지는 명확한 일이 아니냐? 그들은 서슴지 않고 돈 잘 버는 실업가요─ 했을 것이다.
이것이 최고 학부에 있는 우리 여성들의 전체적인 기질의 개관이다. 그러나 흥미는 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자 여성에 더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 빈약한 조선에도 부인 박사나 학사가 수두룩하고 또 사회에 대하여 높은 영향력을 가진 부인네도 적지 아니하다. 이들 중에는 독신주의자가 많은 것이 특색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만혼이 많다. 아니 극언하면 독신주의자거나 그렇지 않으면 만혼자. 이렇게 두 종류로 갈라 버려도 부방할 것이다. 이들은 모두 그의 가슴속에나 일상 행동에서 각자 자신이 가장 우리 민중의 지도자인 거나 같은 도고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짐이 보통이다. 이러한 환상이 언제까지 민중을 즐겁게 하고 다시 그들 자신을 고요히 잠들게 할 것인지는 이즈음의 고명한 부인 박사들의 거취에서 흥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인 이제 새삼스럽게 운위할 필요도 없으나 그것보다도 우리에게 항상 자미(滋味)있게 추궁해 볼 제목으로 되는 것은 역시 그들의 독신주의와 만혼사상에 있을까 한다.
독신생활은 과연 부인을 행복되게 하는 것인가? ─ 이 문제를 정면으로 취급한 소설이 한 편쯤은 여성잡지에 연재되어도 좋을 것이다. 가끔 부인잡지에서 독신 생활하는 이름있는 부인네들의 생활기록을 보았으나 모두가 허장과 위세가 심하여 보잘것이 없고 일종의 자기 위안을 책(策)하는 류에 지나지 않는 감이 깊었다. 사람은 남녀가 함께 살기로 되어 있다. 이 자연에 등을 돌리고 혼자서 별별 잔소리를 다하며 살아간댓자 유쾌할 것이 없을 것이다. 이들의 허세와 가장의 생활을 펼쳐보고 인간의 생활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낱낱이 보여주는 짓궂은 소설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시 독신주의의 밑을 흐르고 있는 것은 결혼에 대한 공포나 혹은 경멸의 사상이 아닐런가. 이 공포와 경멸의 뒤엉킨 심리상태를 분석해서 그 실제적인 뉘앙스를 묘사하려면 소설의 형식과 묘사력을 빌지 않으면 가히 할 수 없는 복잡한 면모일 것이나 대충 이것과 관련되는 몇 가지 현상을 생각을 해보아도 적지 않은 흥미가 솟아난다.
남녀관계의 문제가 가까이 자미 있는 전회점(轉回点)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불란서 혁명 이후일 것이다. 이 역사적 전환점이 인간 해방의 신계단으로 신분관계의 철폐를 가져다 준 이래 이랫거나 저랫거나 남성은 일정 한도의 계단 위에 올라설 수 있었으나 여성은 결혼이란 협착한 복장에 얽매여서 남자들이 올라선 장소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곳까지 도달하기 위하여 많은 희생이 생기게 되는 것이 우리 동양적 사회에서는 더욱 피치 못할 필연적인 현상으로 되고 말았다. 더구나 이것을 바라보고 용감히 길을 떠난 이른바 이 땅의 신여성들이 역사적 동향이나 세계적 임무에 대하여 정당한 과학적 인식을 갖지 못한 때문에 많은 여성이 등산 도중에서 굴러 떨어져서 깊은 심연에 처박혀 버렸고 또한 지금도 침통한 울부짖음을 지저귀고 있다.
이들의 욕구가 이러한 개인적인 항의나 미온적인 행동에 의하여 달성할 수 없고 더욱이나 히스테리칼한 성적 반동에 의하여는 아무러한 성과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하였다고 하던 30년대의 사회주의 전성시대의 여성들도 결국 일종의 성적 혼란이나 자의적인 개인적 합리주의에 떨어져 버린 것이 많은 것은 우리들이 친히 보는 바와 같다.
과거 사회주의 시대에 활약하던 여성들이 지금 누구와 어떻게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나에게 가끔 커다란 흥미를 주어 마지않는다. 가정생활을 갖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이들 혁혁한 부인 용사가 지금은 그 남편의 본처와 시앗 싸움에 바쁜 것을 가끔 보는 것은 지극히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최근의 각 부인단체(예컨대 여자기독청, 가정부인협회, 직업부인협회, 여자기청절제회, 동업협 등등)나 학교의 지도 여성들의 독신, 만혼사상에는 그들이 의식했건 안 했건 ‘개성의 자유냐, 그렇지 않으면 성의 충족이냐’하는 딜레마가 밑을 흐르고 있지나 아니한가. 결혼에 대한 공포나 경멸이나 성에 대한 승려적 해석이나 모두 이것의 실제적인 뉘앙스가 아닐까.
가장 흥미있는 현상은 이들 간에 유행하는 동성연애의 경향이다. 여학교 시대부터 시스터를 만들어서 소위 교제라든가 에스를 맺는다든가 하는 것은 일종의 연애 예측 연습 해위 같아서 어느 곳에나 흔한 풍경이지만 이 교양이 높고 상당히 건방진 노처녀 제씨의 동성연예의 경향에는 상당히 변태적인 상모를 띤 것조차 없지 않아서 흥미가 깊다.
이러한 동성연애는 결국 결혼에 대한 공포나 경멸이나 성에 대한 왜곡된 해석에서 나온 성행위의 변태적인 상모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일방 이들의 동성연애의 유행에는 다른 한편의 원인도 없지 않은 듯싶다. 만일 동성연애의 행위가 죄악시된다든가 핍하시된다든가 한다면 명성과 명예 욕심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영악스런 분들이 이런 행동을 공공연하게 펼쳐놓을 리는 만무할 터이다. 그러므로 나는 서양서 건너온 코큰 늙은 처녀 할머니들의 모방에서 이런 것들이 합리화되고 있지 않은가 하고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처녀로서 이런 외지에 와서 종교 사업을 일생을 바치는 미인(米人) 부인들이 제 학교의 이쁜 색시를 수양딸을 삼아서 학비를 대주고 미국 유학을 시키고 끝까지 뒤를 도와줄 뿐 아니라 한 침실에서 잠자리를 함께 하는 등의 흡사히 부부나 또는 스왈로를 기르는 것 같은 행동을 아무에서나 꺼리지 않고 내보이는 기이한 풍습이 그 둘의 밑에서 자라나고 일시는 그들의 피애호자이었던 우리 최고급의 신여성들 간에 전염된 것은 이 또한 그럼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밖에 흥미있는 여성의 타입은 광범한 계층에 흩어져 있는 직업여성들이다. 먹기 위하여 또는 돈을 벌기 위하여는 이러한 절박한 강제적 경제 관념은 상당히 넓은 범위에까지 침윤되어 있는 직업여성의 공동된 심리인가 한다. 이런 것이 타고난 환경과 직업의 차이와 성격의 다름에 따라 각각 자미난 기질을 보이고 있다. 관청 은행의 여사무원, 타이피스트, 쇼프걸, 간호부, 교환수, 여급, 기생, 창기, 여공 ─ 이들을 만나 한 시간씩만 이야기해보면 각양 각색의 기질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공통된 한 가지 인상을 받을 것이다. 그것은 최고학부의 여학생들의 전술한 기질과 또는 여성운동의 지도자 교육가의 성품이나 풍습과 결코 담을 쌓고 장벽을 세울 만한 근본적으로 별개의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부인들의 성품과 기질 속에 새로운 ‘모랄’이 확립되는 날은 다른 노동 여성의 영거(younger ─ 편자) 제네레이션에 의하여 초래(招來)될 수 있을 것임을 막연하게나마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6ㆍ4)
(『사해공론』, 1938년 8월)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