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IS NOT SHORT-2nd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의 이어지는 글이다.
4부 가장 많이 밟힌 길이 가장 위험하다. “양 떼 안에 있을 때는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르기에 주변을 본다. 다른 사람이 어디로 가는지를 보고 그 방향이 맞는다고 믿는다. 양 떼는 앞선 양이 풀밭으로 가는지 절벽으로 가는지 중요하지 않다, 앞의 양이 간다는 사실 자체가 이유가 된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오래된 함정이다. 소문에 순응하는 습관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것을 가장 좋은 것이라고 믿고, 진짜 좋은 것 대신 그럴듯해 보이는 것을 택하고, 이성이 아니라 모방 때문에 살아간다. 이 습관에는 무서운 특성이 하나 있다. 바로 전염된다는 것이다. 양 떼 안에 있을 때는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 한 발짝은 떨어져야 무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때, 자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보인다. “다수가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하는 일일수록 그것은 더 나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사람은 더 나은 것을 고를 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 옳다는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의심해야 할 이유다. 길은 발자국 수로 고르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고 고르는 것이다.
군중은 진리의 가장 나쁜 해석자다. “군중에게 길을 물으면, 군중이 가는 곳으로 안내받을 뿐이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까? “가 떠오르면 당신은 이미 자기 삶을 살고 있지 않다. 이런 삶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자연을 안내자로 삼는 것이다. 행복한 삶이란 자기 본성에 맞는 삶이다. 자기가 시대에 맞게 적용하되 몸에 끌려다니지 않고, 삶을 꾸미는 것들에 적절한 무게를 두되 어느 하나에도 과도한 무게를 두지 않고, 운명이 주는 것을 누리되 그것에 무릎 꿇지 않는 삶이다. 이런 삶에는 끊어지지 않는 평온함과 자유가 따라온다. “자기 본성에 따라 살라“는 말은, ”본능대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본능은 동물의 영역이다. 인간에게는 이성이 있다. 이성은 본성을 들여다보고, 본성에 가장 잘 맞는 길을 찾아낸다. 욕망이 ”저것을 가져라“소리칠 때, 이성은 ”그것이 정말 네 것이냐“ 묻는다.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방향이 보인다.
행복은 이미 당신 안에 묻혀 있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파내는 것이다.” 행복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사람이 있다. 새로운 지위, 새로운 도시, 새로운 자극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그러나 손에 넣을 때마다, 행복은 당신을 놀리기라도 하듯 한 발짝, 더 먼 곳으로 물러난다. 이유는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파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깥을 향해 가는 한, 영원히 도착하지 못한다. 행복은 밖에 없다. 행복은 당신 안에 묻혀 있다. 밖을 보느라, 자기 발밑을 파볼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예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결핍 속에 살고, 아무것도 없는 자가 충만 속에 산다.는 얘기를 한다. 행복이 밖에 있다면, 이것은 설명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오래 산 사람만이 깨닫는 것이 있다.” 내가 평생 찾던 것이, 처음부터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이었구나. “이 깨달음은 안도이면서 동시에 슬픔이다.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 후회마저 쓸모가 있다.
”충분함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다. 가진 것을 보는 눈에 달려 있다.“ 조금만 더는 당신이 평생 외쳐온 말이다. 10년 ~30년 전에도 한 말이다. 그동안 가진 것은 분명히 늘었다. 마음의 갈증은 다르다. 한 잔, 백 잔을 비워도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마음의 갈증은 마실수록 자라는 갈증이다. 필자는 다음을 예로 들었다. 부자 ‘아피키우스’는 호화로운 식탁을 차리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의 재산은 원로원 의원 한 사람 평생 모은 재산의 100배를 쌓은 사람이다. 그는 그 재산을 먹는 데 썼다. 페르시아 진귀한 향신료를 치고, 노예를 멀리 있는 바다에 보내 생선을 사들이는 데 평민의 1년 치 생활비를 썼다. 황제의 식탁보다 그의 식탁이 화려하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회계 장부를 보니, 재산이 많이 줄어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평민 100명이 평생 모아도 닿지 못할 액수가 그의 손에 남아 있었다. 그는 앞으로 호화로운 식탁을 차리며 살 수 있었다. 누구도 그가 가난하다고 부를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견디지 못했다. “예전처럼 살 수 없을 것“이라며 절망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비극은 가난이 아니고 그의 기준선이 그의 가진 그것보다 항상 한 발짝 위에 있었다. 가진 것이 늘면 기준선도 함께 올라간다. 줄어들면 기준선은 함께 내려오지 않는다. 거기에 그의 비극이 있었다. 당신의 기준선은 어디에 있는가? 10년 전의 기준선과 지금 당신의 기준선이 같은가. 가진 것은 그동안 분명히 늘었다. 그런데 충분하다는 느낌은 왜 여전히 한 발짝 앞에 있는가? 충분함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가진 것을 보는 눈에 달려 있다.
쾌락은 하인이지 주인이 아니다. “쾌락은 밖에서 온다, 행복은 안에서 온다. 쾌락은 짧다. 행복은 길다. 쾌락은 반복할수록 약해진다. 행복은 길어질수록 단단해진다.” 덕은 가장 힘든 자리에서 만난다. 먼지투성이에, 햇볕에 그을리고, 거친 손을 가진 채 묵묵히 서 있다. 보기에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다. 쾌락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있다. 향기에 절어 있고, 화장으로 덮여 있고, 눈을 피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 덕은 끝을 모른다, 포만감도 없고, 후회도 없다. 올바른 마음은 변하지 않으며,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쾌락은 가장 매혹적인 순간에 죽는다. 범위가 좁아서 금세 물리고, 시작될 때 이미 끝을 향하고 있다. 쾌락은 꽃이 피면서 동시에 지듯, 자기 기능을 다하는 순간 소멸한다. 당신이 자유로운지 알고 싶은가? 지금 매일 누리는 것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가. 보낼 수 없다면 그것은 이미 쾌락이 아니다, 족쇄다. 쾌락은 좋은 하인이다. 그러나 끔찍한 주인이다.
당신의 불행은 정말 가난 때문인가, 비교 때문인가, ”한번 솔직하게 물어보라. 당신의 불행이 정말 가난 때문인가? 아니면 비교 때문인가?“ 당신은 충분히 부유하다. 그런데 이웃이 더 부유해지면 가난하다고 느낀다. 동기가 높은 자리에 오르면 낮다고 느낀다. 어제까지 만족하던 것이, 누군가의 것을 보는 순간 초라해진다. 달라진 그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의 삶은 그대로인데 눈이 옆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부족해진다. 이것은 가난이 아니다. 비교라는 병이다. 가난한 사람은 먹고사는 걱정을 한다. 부유한 사람은 옆집 걱정을 한다. 비교를 멈춰라. 옆을 보지 마라. 당신의 불행은 가난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옆을 보는 습관이 만든 것이다.
어제의 결심을 또 깬, 당신에게. “결심은 완벽한 사람만 시작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시 시작하는 사람만이, 시작한 사람이다. “어제 결심하고 오늘 깼다.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깼다. 한 가지도 아니다. 좋은 습관, 더 부지런하겠다, 더 친절하겠다, 더 절제하겠다고 결심했다. 깰 때마다 자신에게 실망하지 마라. 진짜 패배는 결심을 깬 것이 아니다. 다시 결심하지 않는 것이다. 필자가 글로 쓴 것 중에 내 일상이 도달하지 못한 것이 수없이 많다, 그 간극이 필자를 부끄럽게 한단다. 그러나 그는 그 부끄러움을 피하지 않으려 한다. 깬 결심을 다시 결심하지 않을 때, 그때 당신은 자기 자신을 그만둔 것이다. 결심을 깬 것은 패배가 아니다. 다시 결심하지 않는 것이 패배다.
소박함이라는 사치. “더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사치다.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모두가 더 많이 가지려고 달려갈 때, 더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이것이 가장 큰 사치다, 가장 어렵기 때문이다. 더 갖는 것은, 욕심만 있으면 된다. 덜 가지고도 충분한 것은 힘이 있어야 한다. 허식을 내려놓아라. 그 장식이 아니라 쓰임으로 판단하는 데 익숙해져라. 욕망은 필요한 만큼만 허락하라. 생활은 유행이 아니라 형편에 맞춰라, 이것이! 전부다. 검소함은 자발적인 가난이다. 검소함은 가장 우아한 형태의 자유다. 빼앗길 것이 없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이 없는 사람은 누구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소박함과 가난을 분별하라. 소박함은 선택이다. 이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다.
행복한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다른 사람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표정을 보라. 진심으로 기뻐하는가, 아니면 입은 웃는데 표정은 어딘가에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느껴지는가.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 남의 행복 앞에서 흔들리지 않은 사람은 자기 안에 이미 단단한 것이 있는 사람이다. 남의 행복 앞에 작아지는 사람은 자기 행복의 기반을 아직 자기 안에 세우지 못한 사람이다. 어제까지 자랑스러웠던 성과가 동료의 출세한 소식에 보잘것없어진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집도 그대로고, 성과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단 하나, 당신의 눈이 옆을 봤다는 것뿐이다. 이것이 비교의 구조다. 비교는 당신이 가진 것을 건드리지 않는다. 당신이 가진 것을 보는 눈을 망가뜨린다.
5부 신은 편안한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선한 사람에게는 어떤 악도 닥칠 수 없다. 물과 불이 섞이지 않듯, 악은 선한 사람의 내면에 자리를 잡지 못한다. 강물과 폭우가 바다로 쏟아져도 맛은 변하지 않는다, 용감한 마음도 그렇다. 역경이 밀어닥쳐도 균형을 잃지 않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자기 색깔을 입힌다. 신도 같은 방식으로 사랑한다. 선한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시험하고, 단련하고, 자기와 닮은 사람으로 만든다. 방종한 자들은 쾌락 속에서 녹아 없어진다. 누구도 그들을 깨우지 않는다. 깨울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통이 닥쳤을 때 “왜 나에게”라고 묻지 마라. 운명은 만만한 상대와 싸우지 않는다. 당신이 쓰러지지 않을 거라고 보았기 때문에 당신을 골랐다. 가장 쉬운 삶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삶이다. 당신의 삶이 힘들다면, 누군가 혹은 무언가 아직 당신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한 번도 시험받지 않은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 진짜 불행한 사람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아니다, 한 번도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되고, 소원을 빌기도 전에 이루어진 사람을 신들은 호의적으로 본 것이 아니다. 시험할 가치가 없다고 본 것이다. 불운도 마찬가지다. 가장 강하고 곧은 사람을 찾아 그에게 자기 힘을 시험한다. 당신에게 힘든 일이 닥쳤다면, 그것은 불운이 당신을 무시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약한 사람에게는 불운도 손을 대지 않는다. 건드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험받지 않은 삶은 편한 삶이 아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끝내 모르는 삶이다.
2026.08.02.
LIFE IS NOT SHORT-2nd
세네카 지음
하와이 대저택 편역
논픽션 간행
첫댓글
올려주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잠시 머무르면서
공부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