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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朴槿惠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 1952. 2. 2, 대한민국 경북 대구 |
| 대한민국 |
| 정치인,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한국의 첫 여성대통령이기도 하다.
1997년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지원하며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8년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래 5선 의원을 지냈다.
정치력을 인정받아 2004년 한나라당의 대표로 선출되었으며,
2012년 18대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재임 기간 동안 활발한 외교 활동과 함께 위안부 합의와 개성공단 중단 등을 시행했다.
그러나 2016년 9월부터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12월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결정을 내리면서 파면되었다.
이후 직권남용과 강요,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아 구속되었다가
2021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생애
1952년 2월 2일 대구에서
당시 육군 정보학교장이던 아버지 박정희와 어머니 육영수 사이의 1남(지만) 2녀(근혜·근령) 중 장녀로 태어났다.
9살이 되던 해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이던 박정희 소장이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으면서
청와대에 들어갔으며, 장충국민학교와 성심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다.
1974년 서강대학교 이공학부(전자공학 전공)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으나 6개월만에 어머니 육영수가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문세광의 총에 맞아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귀국했다.
당시 22살이던 박근혜는 이때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직무대행을 하면서 외국 사절 영접과 소외계층 봉사활동 등 대외 업무를 수행했다.
5년 뒤인 1979년 10.26 사태로 아버지 박정희도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서거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 27일 새벽 당시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비보를 듣자마자
박근혜가 "전방은 괜찮습니까?"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이후 박근혜는
1982년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은데 이어
1988년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와
1989년 근화봉사단을 발족시키고 ‘조국의 등불’이라는 영화도 만드는 등
아버지의 명예회복에 몰두했다.
그러나 육영재단 1) 운영권을 둘러싸고 동생들과 다툼이 시작되어
1990년 11월 박근혜는 박근령에게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넘겼다.
육영재단은 소송 끝에 2008년부터는 박지만에게 넘어갔다.
박근혜는 1995년부터는 정수장학회 2) 이사장직도 맡았다.
정계 입문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를 지원하면서 정치에 입문했으며.
1998년 대구 달성 재보궐 선거에서 출마해 당선된 이후 이곳에서 내리 5선을 했다.
정계입문 이후 단숨에 초선 부총재로 뛰어오른 박근혜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를 비판하면서 총재직 폐지와 당권-대권 분리, 국민참여경선 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가 당헌 개정안에서 배제되자
2002년 2월 28일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
5월 10일 박근혜는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단독 면담했다.
이후 탈당 9개월 만에 이회창 총재가 개혁안을 상당부분 수용하면서
2002년 한나라당에 재입당했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불법 대선자금 차떼기 사건'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의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때 박근혜는 이른바 ‘천막당사’를 열고 당시 평가액 1100억 원 대의 천안 연수원을 국가에 헌납하는 등의 승부수를 띄웠다.
3월 30일 TV 정당 방송연설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연설을 이어가 화제가 됐다.
이에 힘입어 위기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121석을 얻어 개헌저지선을 확보하며 기사회생했다.
2005년 12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사학법을 직권상정해 처리하자
53일간의 장외투쟁을 진두지휘해 사학법 재개정을 이끌어 내었다.
대표로 재임 2년 3개월간 지방선거와 각종 재, 보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0의 완승을 거두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운동 때 오세훈 서울시장후보 지원 유세 도중
오른쪽 뺨을 커터칼로 베이는 테러를 당했는데,
수술 이후 병상에서 선거상황을 보고받으며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며
박빙의 대전 판세가 뒤집어져 승리를 따냈다.
제17대 대통령 후보 경선
2007년 대권 도전을 선언하고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과 격렬한 당내 경선전을 치렀다.
이때 '세금은 줄이고 각종 규제는 풀고 법기강은 세운다'는 뜻으로
'줄푸세' 정책을 내세웠으나 패배했다.
당시 박근혜는 “경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한다.
경선과정의 모든 일들, 이제 잊어버리자.
하루아침에 잊을 수가 없다면 며칠 몇날이 걸려서라도 잊자”는 승복 연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이른바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의 갈등은 이명박 정권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에 치른 18대 총선 공천에서는 친박 상당수가 배제되면서
‘친박 대학살’이라는 말도 나왔다.
박 당선자는 공천 결과를 두고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말했다.
당시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친박연대’를 창당하고
일부는 '친박무소속연대'를 결성해 출마해 각각 14명, 12명의 당선자를 냈다.
이후 박근혜는 친박계 정치인들의 한나라당 복당을 꾸준히 요구해, 60여명의 복당을 관철시켰다.
2011년 12월 한나라당이 재보궐 선거에 참패한 뒤 박근혜는 다시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비대위는 당 색깔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전 청와대 수석,
‘4대강 사업 반대’ 등으로 이름을 알린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을 영입하는 등 쇄신 작업을 벌였다. 그 결과 2012년 4.11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었을 수 있었다.
제18대 대통령 당선
2012년의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는 새누리당의 후보로 선출되었다.
그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국민대통합, 경제민주화실현, 복지확대 등의 의제를 내세워
20개 분야 672개의 공약을 내놓았다.
특히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라는 모토로 내세운
'국민행복 10대 공약'이 집중적으로 홍보됐다.
'국민행복 10대 공약'은 △가계부담 덜기 △확실한 국가책임 보육 △교육비 걱정 덜기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정책 추진 △창조경제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새로운 일자리 늘리기
△근로자의 일자리 지키기 △근로자의 삶의 질 올리기
△국민 안심프로젝트 추진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의 경제 민주화 △지역균형발전 등이었다.
박근혜는 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의 후보 문재인과 맞붙어 51.6%의 득표를 통해 당선됐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최초 과반 이상 득표라는 기록을 세웠다.
박근혜는 1577만 3128표를 얻어
1469만 2632표, 49.02%를 차지한 문재인과는 108만 464표 차였다.
투표율은 선거인수 4050만 7842명 중 투표자수 3072만 1459명으로 75.8%를 기록했다.
대통령 재임 시기세월호 참사 사고
2014년 4월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 476명이 탑승한 세월호가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면서 299명의 사망자와 5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해경의 늑장대응과 정부의 부실대처, 컨트롤타워의 부재 등이 드러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선체는 2017년 3월 인양되었으며, 2022년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서도 침몰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2015년 5월 코로나바이러스가 병원체인 메르스가 발생하여 많은 사망률을 보였다.
메르스 사태는 2015년 5월 20일 첫 확진 판정으로 시작되어 217일 만인 12월 23일 종료되었는데, 그동안 18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중 38명이 사망했다.
정부의 사전 대응 미비 및 초기 대응 실패, 대형병원의 비협조 및 정부의 병원명 공개 거부 등
방역조치 부족 등 총체적 부실이 드러났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동개혁
박근혜 정부는 '고용창출'을 내세워 이른바 '노동개혁' 법안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2015년 말 313개 전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금융권과 대기업으로 확산됐다.
2015년 9월 '9.15 노사정 대타협'이 이뤄졌으나 대타협 직후 정부가 파견근로자보호법,
기관제근로자보호법 등 합의되지 않은 내용까지 포함해
입법을 추진하다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을 샀다.
정부가 내놓은 5개 노동개혁 법안은
△실업급여 수급위한 가입기간을 180일에서 270일로 연장(고용보험법)
△출퇴근하다 다쳐도 산업재해로 인정(산업재해보상보험법)
△법정 근로시간을 주당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근로기준법)
△35세 이상 근로자가 원하면 4년까지 연장계약 가능(기간제근로자 보호법)
△55세 이상 고령자와 고소득 전문직 파견 허용업종 제한 폐지 및 금형·용접 등
뿌리산업 6개 업종에 파견 허용(파견근로자 보호법) 등이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2016년 초 일반해고를 가능케하고
노조의 동의 없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한 쪽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2개 행정지침의 강행을 예고했다.
이에 야당과 노동계의 반발은 깊어졌고 2015년 정부가 제출한 노동개혁 법안들은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한채 19대국회 마무리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4.13 총선 이후에도 노동 개혁 관련 법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2015년 10월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청와대는 기존 역사교과서가 ‘현대사의 부정적 측면만 부각’,
‘무조건적 반기업 정서’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역사교육 정상화 방안으로 특단의 조치를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학계, 시민단체, 야당 등은 "국정화가 정권이 입맛에 맞는 역사관을 주입시키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라며 강하게 반발하며 큰 논란이 일었다.
위안부 합의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결 방안에 합의하고
합의 사항의 이행을 전제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했다.
청와대는 "일본 정부가 도의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명확히 표명했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죄와 반성의 입장'을 공개적, 공식적으로 분명하게 밝혔다"며
외교 성과로 자평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에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피해자들을 배제한 졸속합의'라고 반발하는 등 적지않은 논란이 일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박근혜 정부는 2016년 들어 북한이 4차 핵실험과 로켓 발사 등을 강행하자
예고없는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청와대는 남북관계 정책 성과로 ‘북핵폐기를 위한 전면적 조치 착수’를 꼽으면서
개성공단 전면중단 조치를 두고 "강력한 압박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기 위한 조치"라고 자평했다.
대통령 탄핵 정국
박근혜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 소추에 의해 파면된 대통령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 재판에서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이 되어 형사상 불소추 특권을 상실함으로써
곧바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르게 되었으며,
또한 경호·경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예우가 박탈되었다.
비선실세 최순실 의혹 보도
이른바 '탄핵정국'의 시작은
최순실 씨가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로 미르·케이스포츠재단에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고 있다는 의혹이 <한겨레> 등 언론으로부터 제기된 2016년 9월부터였다.
10월 24일 JTBC는 최순실의 태블릿PC를 입수해 '대통령 연설문 등 44개 문건이 확인됐다'고 밝히는 등 최순실의 국정개입 정황을 자세히 보도했다.
보도 다음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불구하고 10월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3만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첫 촛불집회가 열렸고,
이후 매주 토요일마다 규모가 커지며 11월 12일에는 100만 명까지 참가자가 늘었다.
11월 14일 여야가 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검법에 합의했고
11월 20일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모 혐의를 인정하는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안 발의
박근혜 전 대통령은 11월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임기 단축을 비롯한 진퇴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3일 우상호·박지원·노회찬 등
야3당 의원 171명의 서명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소추안은 13가지 탄핵 소추 사유를 나열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 집행에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배했다'고 밝혔다. 소추안에는 △공무상 비밀 누설 △최순실 씨 등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
△사기업에 대한 금품출연 강요 △특정 언론사 사주 퇴임 강요 등 언론 탄압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직무공백 등 5가지 헌법 위반 사항이 명시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은 12월 9일 불참 1명,
찬성 234명, 반대 56명, 무효 7명으로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재판소는 탄핵심판 사건 주심으로 강일원 재판관을 배당했다.
첫 촛불시위로부터 탄핵 심판 직전인 3월 4일 촛불집회까지 집회 참여 누적인원은 주최 추산 서울 1303만 명, 지방 234만9140명 등 전국적으로는 1537만9140면에 이르러 주최 추산 1500만 명을 돌파했다. 한편 박근혜 탄핵 반대를 주장하는 이른바 '태극기 집회'도 열렸다.
특검, 박근혜 피의자 신분 입건, 검찰 이관
2016년 12월 1일 박영수 변호사(국민의당 추천)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에 임명됐다. 90일의 특검 수사 기간 후,
특검은 3월 6일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대통령과 최순실에 대한 뇌물 공여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를 확인했으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를 한 혐의,
최순실에게 여러 차례 공무상 비밀이 담긴 문건을 이메일 등으로 전달하여
국가 기밀을 누출한 혐의 등으로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
관련 수사를 검찰에 이관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대통령 박근혜 파면 결정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가 대통령(박근혜) 탄핵심판 청구에 관해 재판관 8인 전원일치로 인용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최종 선고까지 헌법재판소는 3번의 준비절차 기일과 16번의 변론기일,
최종 변론기일까지 총 20번의 변론절차를 진행했다.
탄핵심판 사건은 최종 선고까지 총 92일이 걸렸다.
모두 25명이 증인으로 나섰고, 5만쪽에 이르는 검찰 수사기록을 검토해
대통령 측은 252쪽, 국회 측은 297쪽 분량의 최종의견서를 냈다.
헌법재판소는 선고에서 △문화체육관광부 간부의 좌천 인사 등 공무원 임면권 남용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한 언론자유 침해
△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생명권 보호 의무와 직책 성실 의무
△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 등 크게 4가지 부문으로 나눠 판단했고,
이중 최순실의 국정 농단을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최서원) 이권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으며 이는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으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미르재단과 케이스포츠의 설립 등에 직 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행위도 기업의 재산권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봤다.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는 많은 문건이 최순실에게 유출된 점은
국가공무원법의 비밀엄수 의무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수감 및 특별사면
박근혜는 2017년 4월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으며 직권남용, 강요 등 18개 혐의,
국고손실 등 2개 혐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1심, 항소심, 상고심, 파기환송심을 거쳐 2020년 대법원의 재상고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 원, 추징금 35억 원이 확정되었다.
박근혜는 2021년 12월 31일, 수감된 지 4년 9개월만에 문재인 정부에 의해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되었으며, 대구에 마련한 사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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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박근혜에 “죽기 전 용서 구하고 싶어”…자필 편지 공개
이실유 기자2026. 7. 11. 10:28
정유라, 페이스북에 최씨 자필 편지 공개…“배신한 적 없다” 해명
“수감생활 동안 신의 저버린 적 없어”…박근혜 향한 그리움 전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이 과거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안함과 그리움을 전한 자필 편지가 공개됐다.
최씨의 딸 정유라씨는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님께’로 시작하는 최씨의 자필 편지 사진과 관련 글을 올렸다.
해당 편지에는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을 향해 “그동안 잘 지내고 계시는지 항상 염려스럽다”며 “지방선거 유세에 나서는 모습을 보며 세월의 변화를 많이 느꼈다. 몸도 예전과 다르신 것 같아 걱정된다”고 적은 내용이 담겼다.
이어 최근 자신의 언론 인터뷰를 둘러싼 일부 오해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최씨는 “얼마 전에 저의 소회를 밝힌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오해와 걱정을 하신 것 같다”며 “제가 이제 와서 11년 수감생활 동안 지켜 온 신의를 저버리고 갑자기 대통령님을 배신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삶을 사는 동안 곁에서 지켜드리려고 노력했고 특검 때는 어떤 말도 압박·강압 수사에도 대통령님을 지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끝으로 “앞으로 죽는 순간까지 뵈올 날이 있을 줄 모르지만, 그 마음은 영원히 가지고 하늘나라에 갈 것”이라며 “부디 건강하시고 어려운 일 잘 이겨내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정유라씨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최서원(최순실)씨 자필 편지 사진. 정유라 페이스북 갈무리
정씨의 페이스북에는 자필 편지 외에도 최씨의 추가 발언이 게시됐다.
최씨는 해당 글에서 “이 편지가 박근혜 (전) 대통령님께 전해 들어가길 바라며 아픈 팔을 부여잡고 썼다”며 “의도치 않게도 그분 곁에 간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되었지만 재심을 하는 것도, 수없는 고발을 강행하는 것도 저의 억울함 보다는 유일하게 곁을 내주셨던 대통령님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죽기전에 뵙고 죄송했노라 용서해주셔라 전하고 싶었는데 이미 늙고 병들어 얼마 남지 않은 저는 다시 뵐 수 없을 것 같다”며 “대통령님 죄송합니다. 이 사람의 남은 후회와 미련은 손주들과 대통령님에 대한 자책 뿐”이라고 했다.
최씨는 게시글 말미에 손주 명의 계좌번호를 올리며 병원비 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죽기 전에 바라는 것은 하나뿐인 딸에게 병원비라는 빚만은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며 “딸에게 병원비라는 또 하나의 짐을 지어주지 않도록 마음을 베풀어 달라”라고 호소했다.
한편 최씨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20년 징역 18년과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원을 확정받았다. 이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해 왔다. 그러다 2022년 수감 중 낙상 사고로 척추를 다쳐 수술을 받았으며, 최근 척추 수술 부위 감염 치료 등을 이유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일시 석방된 상태로 알려졌다.
이실유 기자
© 경기일보.
7. 선거 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98 | 4월 재보궐선거 (국회의원) | 대구 달성 | 한나라당 | 34,271 (62.50%) | 당선 (1위) | 초선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 37,805 (61.39%) | 재선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 한나라당 | 45,298 (70.03%) | 3선 |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50,149 (88.57%) | 4선 | |||
| 2012 |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 비례대표 | 새누리당 | 9,130,651 (42.80%) | 당선 (11번) | 5선 |
| 제18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 15,773,128 (51.55%) | 당선 (1위) | [ |
8. 소속 정당
9.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