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음력으로 7월 7석이다.
보통 '칠석날'로 부른다.
칠석은 七夕이다.
그런데 왜 7과 석을 같이 사용할까?
음력 7월은 신월(申月)이다.
8월은 유월(酉月)이요, 9월은 술월(戌月)이다.
신유술은 모두 5행으로 金이라고 한다.
金은 단단한 걸 가리키는데, 새벽에 솟는 태양의 기운을 木이라 하며, 한낮의 뜨거운 기운을 火라 하고, 오후의 서늘한 기운을 金이라 하며 밤의 차가운 기운을 水라 하는데 이를 가리켜 4상이라 한다.
오전과 오후의 틈새를 가리켜 土라 하는데, 대개 한낮에서 저녁이 되기 까지의 무덥고 습한 기운을 가리킨다.
여하튼 저녁 무렵의 서늘한 기운을 가리켜 금이라 하는데, 1년으로 친다면 가을에 해당한다.
숫자로 말한다면 음력 1월, 2월, 3월은 木이라 하고, 4월, 5월, 6월은 火라고 하며, 7월, 8월, 9월은 金이라 하고, 10월, 11월, 12월은 水라 한다.
이처럼 1월에서 6월은 1년의 전반을 가리키며, 7월에서 12월은 후반을 가리킨다.
우주만물을 음과 양으로 구성되는데, 전반은 양이 주관하여 생물의 기운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며, 후반은 음이 주관하여 단단하게 모아 놓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金은 생물의 기운을 단단하게 모아 놓는 시발점이며, 그걸 숫자로 치면 7이요, 하루로 치면 저녁 夕이라고 하였다.
성경에 '七七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일종의 추수감사절이라고 한 것은 이런 맥락과 상통한다.
칠석의 유래는 다들 알다시피 견우와 직녀의 전설에 나왔다.
견우(牽牛)는 '소를 끈다'는 뜻이니 목동을 가리킨다.
직녀(織女)는 '짠다'는 뜻이니 베짜는 여인을 가리킨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사랑에 빠진 나머지 업무에 태만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하느님은 두 사람이 1년에 한 번만 만나게 하였는데, 그 날이 바로 7석날이었다고 한다.
견우는 소를 치는 목동이다.
소는 주역에서 2곤지다.
아이들에게 '곤지곤지'하면서 손가락으로 다른 손바닥을 가리키는 게 있는 놀이가 있는데, 그것은 곤지, 즉 땅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땅을 알라는 것은 곧 음이 모든 복록의 시원임을 알라는 뜻이다.
소는 음의 상징이다.
양은 물질적인 형상을 변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음은 흩어진 기운을 다시 수렴하여 보전하는 역할을 한다.
그것이 어머니의 역할이며 음의 역할이다.
견우가 소를 쳤다 함은 양이 음을 찾아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그것은 다 때가 있는 법이다.
음은 가을이 되어야 비로소 튼실해 지는 법인데, 아무 때나 견우와 직녀는 사랑을 나누려고 했으니 하느님의 입장에서 가만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직년은 베를 짜는 여인이다.
베를 짠다 함은 날줄과 씨줄, 즉 '날씨'를 주관한다는 의미다.
날씨는 천지의 기상을 가리킨다.
기상은 모든 사물의 옷을 가리킨다.
따라서 직녀는 뭇 생물을 감싸고 보호하는 어머니요 음을 가리킨다.
음은 당연히 양을 만나야 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견우다.
소(丑)가 원숭이(申)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인데 과연 몇 사람이나 이를 알아들을까?
여하튼 견우와 직녀는 오늘 만난다.
오작교를 건너서 둘은 상봉을 한다.
오작교는 '까마귀와 까치가 놓는 다리'다.
까마귀와 까치는 음양을 상징한다.
광한루에서 춘향이와 몽룡이가 만나는 다리가 오작교다.
광한루廣寒樓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누각.
보물 제281호.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란 말은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이다. 1461년 신임부사인 장의국(張義國)이 요천강(蓼川江) 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를 화강암과 강돌로 축조하여 월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84년 송강 정철에 의해 수리될 때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의 삼신산(三神山)을 연못 속에 축조하므로 광한루, 오작교와 더불어 월궁과 같은 선경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전소된 것을 1638년(인조 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춘향전에 의해 많이 알려졌다. 인공정원 속에 건립된 대표적인 누인 광한루는 앞면 5칸, 옆면 4칸 팔작지붕의 이익공계(二翼工系) 다락집이다. 지금은 동쪽에 3칸의 부속건물이 붙어 있고, 북쪽에 팔작지붕을 중첩한 3칸의 계단을 두어 4면의 모습이 모두 약간씩 다르다. 아래층의 기둥은 둥근 석주이며 의장효과를 위해 모서리에는 네모난 석주를 세웠다. 이익공계의 공포이면서도 쇠서와 세부기법에서는 다포계의 양식을 보인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어렴푸시 알았는데...확실히 알았네요..감사해요. 저의 생일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