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손
오월 첫 화요일은 어린이날이었다. 어디로 떠나는 산행을 정하지 못하고 아침나절 정한 일정이 있었다. 지난 주말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 순을 지인의 텃밭에 묻어둘 일이 기다렸다. 고향 형님 댁에선 고구마 순을 밭이랑에 심어 두어 파릇하게 생기를 띠어가고 있었다. 북면 지인 농장엔 고추나 가지를 비롯한 다른 모종들은 이랑에 심었으나 고구마 순은 아직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료포대에 담아온 고구마 순은 아파트 계단에서 이틀 밤을 보냈다. 어린이날 아침 식후 고구마 순을 들고 화천리로 나갔다. 지인은 차을 몰아 마중을 나와 주었다. 지인이 마중 나아 주지 않았다면 고구마 순이 담긴 비료포대를 들고 산마루를 넘어 갔으면 힘이 좀 들었지 싶다. 나는 새참거리로 곡차를 세 병 마련해 지인이 운전하는 동반석에 앉았다. 비포장 도로 산모롱이를 돌아갔다.
지인은 이른 아침 텃밭에 나아 하루 일과를 설계하고 있었다. 보름 전 사 들인 스물다섯 마리 병아리들은 활기차게 뛰놀았다. 농막에서 지인과 환담을 나누면서 곡차를 몇 잔 비웠다. 안주는 지인이 준비해 두었던 두부와 김치였다. 곡차를 몇 순배 들고 고구마 순을 묻을 박스를 물색했다. 아궁이 곁에서 큰 플라스틱 대야를 찾았다. 담긴 물을 비우니 고구마 순을 키우기 알맞은 자리였다.
손수레를 밀어 빈 밭이랑에서 흙을 몇 삽 옮겨왔다. 플라스틱 대야에 흙을 채우고 거름을 한 층 더 얹었다. 거름 위에 싹이 트고 있는 고구마 덩이를 심었다. 시골에서 가져온 고구마는 시세가 더 나가는 호박고구마였다. 오일 장날에 파는 고구마 순도 밤고구마 순보다 호박고구마 순이 더 비싸다. 대야에 심어둔 고구마에선 며칠 지나면 파릇하고 자주색을 띤 순이 자라 나올 것이다.
고구마 순을 묻어 놓고 아까 비우다 남긴 곡차를 마저 비웠다. 등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농막엔 보라색 등꽃이 피어났다. 바라다 보인 가까운 산기슭엔 아카시나무에서 허연 꽃이 피기 시작했다. 신록이 싱그러운 계절은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지인은 아침나절 예초기로 소나무가 자라는 밭둑의 풀을 자를 것이라고 했다.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은 나는 텃밭 근처 산자락으로 올랐다.
산비탈 과수원을 지나 언젠가 봐둔 고사리 군락지를 찾았더니 누군가 선행주자가 고사리를 꺾어간 흔적만 남았다. 이삭을 줍다시피 고사리는 몇 가닥만 꺾었다. 고사리는 비가 온 뒤 쑥쑥 자라나온다. 아랫마을 사람이 어제나 오늘 아침 일찍 올라 새로이 돋아난 고사리를 꺾어갔지 싶었다. 나는 산등선을 따라 승산마을 방향으로 걸었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은 처음 올라본 산자락이었다.
승산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나아갔다 지인 텃밭이 있는 골짜기로 내려섰다. 아까 지나온 산등선에서 취나물을 찾아보려다 숲이 너무 우거져 마음을 접었더랬다. 숲이 끝나고 단감과수원이 나올 즈음에서 취나물을 몇 줌 뜯었다. 철이 늦어 취나물은 조금 쇠어 가고 있었다. 과수원을 내려서니 젖소를 키우는 농장이 나왔다. 그 농장에서 지인 텃밭과는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
지인은 텃밭의 풀을 자르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산에 올라 뜯어온 취나물을 꺼내 놓고 지인과 곡차를 몇 순배 들었다. 이후 나는 푸성귀 이랑의 김을 매었다. 상추는 제법 자라 잎이 너풀거렸다. 옮겨 신은 부추 이랑의 김도 매었다. 올봄에 씨앗을 심은 우엉도 싹이 돋아 잘 자라고 있었다. 나는 호미로 이랑마다 긁어주고 잡초는 뽑아 바깥으로 들어내었다.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남새밭 김을 매고 나니 점심때가 가다왔다. 그 즈음 지인과 터놓고 지내는 사이인 우렁각시가 텃밭을 찾아주었다. 살림공간에는 깔끔한 점심상이 차려졌다. 우렁각시는 짧은 시간에 간고등어를 굽고 취나물을 헹구고 쌈장을 마련했다. 가는 봄날에 왕이 부럽지 않을 밥상이었다. 불청객 내빈이었지만 나름대로 밥값은 했지 싶었다. 고구마 순을 묻어두고 푸성귀 이랑의 김도 매지 않았는가. 15.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