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문무학 편
석야 신웅순
서재 가까이 두었으나 일정에 밀려 이제야 문무학 시인의 시조를 읽었다. 시인은 시조시인협 중국한시기행 때 필자와 동행한 룸메이트였다. 시인은 여행 중에도 언제나 책을 읽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벤치, 침대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시에 격조가 있듯 사람에게도 격조가 있다. 문무학 시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 연구가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한국문학사에서 시조비평 사를 처음 기술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고, 한국문학사 보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문무학 시인의 저서 『시조비평사』의 머리말 자서 일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비평사이다. 1565년 「도산십이곡발」에서부터 1949년까지의 문집, 가집, 신문, 잡지, 단행본을 통해 전개된 시조비평문을 연구 대상으로 한 박사논문이기도 하다.
고대․개화기․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조비평사를 한눈으로 일별해 놓은, 시조 문학의 길을 제시해준 민족 문학의 자존심이며 뼈대이며 시조 비평의 전범이다. 이를 문무학 시인이 했다.
내쳐서 삼천리를 다 못가고 마는 땅
․․․․․․․․․․․․․․
가다가 툭 끊긴 길 끝에 이념만이 선명한
- 「중장을 쓰지 못하는 시조,반도는」
「중장을 쓰지 못하는 시조,반도는」은 허리 잘린 반도처럼 허리 없는 시조다.통일이 되면 반도 의 허리도 내 시조의 허리도 온전해질 것이다.
슬픈 민족사이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나 같을진대 얼마나 아프면 절로 이런 시조를 나왔을까. 시조는 오랜 전통을 가진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형시이다. 그런 정형시의 허리가 잘려있다. 거기에는 14개의 못이 휴전선을 따라 차례로 박혀있다. 남과 북, 이념이 무엇이길래 시조 중장까지 싹뚝 잘라냈는가. 글자로는 나타낼 수가 없어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어서 시인은 점자로 한 자 한 자를 각자해놓았다. 14개의 대못이 박힌 슬픈 허리가 꼼짝못하고 있으니 세계에 이런 민족이 어디 있는가. 시조 중장에까지 와 3․4․3․4, 우리가 우리의 호흡율로 스스로 허리를 잘라 냈다. 동서고금에도 이런 일은 없으리라.
늦은 저녁상을 받으신 어머니가
수전에 밥술 흔들며
머리까지 흔드신다
세상사 서러운 일 많다 해도
이만한 일 또 있을지
- 「어느 저녁」
슬픈 가족사이다. 별다른 기교 없이 늘상 있는 풍경을 그대로 그렸다. 소소한 것들이 얼마나 위대한 것이냐. 수전증에 쳇머리까지 흔드는 어머니. 이 하나만으로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다. 어머니의 수전증은 민족사이면서 개인사이고 개인사이면서 민족사이기도 하다. 허리에 대못을 박지나 않나 쳇머리를 흔들지나 않나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과 ‘사랑’ 글자가 서로 닮아
사람이 사랑하는 법 넌지시 날려준다
‘사람’의 모난 받침을
어루만져
‘사랑’이라고
-「낱말 새로 읽기․45」 - 사랑
국회의사당 역 스크린 도어에 있는 시조이다. 따뜻한 잠언시 같다. 그러나 얼마나 인간을 매섭게 몰아치고 있는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길 잃은 인간, 작금의 자화상이 아닐까.
애초부터 ‘사람’과 ‘사랑’은 그렇게 닮아있다. 모난 ‘ㅁ’을 어루만지면 둥근 ‘ㅇ’ 사랑이 된다는 것을,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사람과 사랑은 하나인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여기에는 무거운 메시지와 매서운 채찍이 있다. 시인의 일격이 우리를 전율케한다. 그의 시조는 이렇게 짠한 호소문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육신과 영혼을 풀어주고, 때로는 영양소가 되어 주며, 비평, 고발하기도 하는 것이 시가 해야할 일이다. 그동안 시조는 역사를 말해왔고 정치를 말해왔고 윤리를 말해왔다. 자연을 말해왔고 인간을 말해왔고 문화를 말해왔다. 누가 시조를 음풍명월이라 치부했는지는 몰라도 이는 한쪽 면만을 본 것이지 전부를 보고 말한 것이 아니리라.
내 어느날 그대 향한 바람이고 싶어라
울 넘어 물 넘어 뫼라도 불어 넘어
그 가슴 들이받고는 뼈 부러질 그런 바람
- 「바람」
바람, 그 가슴 들이받고는 뼈부러질 그런 바람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필자는 오래 전에 이 시조를 읽었다. 맴돌고 있어 잊혀지지 않은 시조이다.
자선 시론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열쇠를 버려야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버티어 선 불신의 성을 허물게 해야한다. 그 불신의 성은 핵폭탄으로 무너지지 않는다.…중략… 열쇠가 전혀 필요없는 세상이 올 때까지 시는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자물쇠로 존재해야한다. 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여는 열쇠여야 하지만, 시가 해야할 일은 끝내 그 열쇠를 버리게 하는 데에 있다. 시는 우리 곁에, 우리 사이에 이렇게 있어야 하고 또 그렇게 존재한다.
그대는 세상이고 바람은 시이다.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부조리한 세상을 가슴으로 들이받아야한다. 그렇다. 시는 인간의 양심을 지키는 자물쇠로 존재해야한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인간 양심의 마지노선이다. 열쇠가 필요 없을 때까지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시는 우리 곁에 있어야한다.
이를 일갈이라고 한다.
‘서다’라는 동사를
명사화하면 ‘섬’이 된다.
뭍에서 멀리 떨어져
마냥 뭍을 그리는 섬
사람은
혼자 서는 그 때부터
섬이 되는 것이다.
-「섬」
우리 선인들은 시로 묻고 시로 대답해왔다. 시에서 소통이 이루어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시는 사라지고 말만 남았다. 이 때부터 시는 길을 잃었고 그래서 두 발로 서려는 순간 사람은 외로운 섬이 되었다.
시인은 인간의 아픔을 꿰뚫고 있다. 흔히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한다. 김석준은 ‘문장부호 시 읽기’의 해설에서 문무학의 시조를 이렇게 애기하고 있다.
시인 문무학은 그러한 낱말들의 문자적 속성들을 꿰뚫어보면서 낱말들의 이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해서 시인은 낱말 속에 새겨진 의미적 사태를 시말로 예인하면서 삶-시간-세 계를 정관하고 있다.
…중략…
주체와 언어기호 사이의 간극을 무한히 확대했다가, 이내 낱말의 기호적 표상을 인간학의 주체 로 환원시키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시인은 문자의 제의가 펼쳐내는 비경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엘도라도가 낱말에 있다니 시인은 결국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나 진배 없다. 천․지․인을 조합시켜 만든 것이 한글이니 분명 낱말 자체에 금맥이 있을 것이다. 흙이 묻어 보이지 않을 뿐, 시인은 흙을 털고 닦아 빛나는 보석을 찾아냈다. 이것이 문자 제의가 펼쳐내는 비경이 아닌가. 그 빛나는 보석으로 사람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별 것 아니다. 인간을 위해 있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데에 인간학이 있는 것이다.
멀리 떨어진 섬은 마냥 뭍을 그리워한다고 했으니 그 뭍은 더불어 살며, 더불어 사랑하는 그런 세상이 아닐까. 그러하지 못하니 섬은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인은 시로 촛불이라도 켜놓고 있지 않은가.
동참하고 싶어 시인 옆에 시인보다는 희미한 등잔불 하나 감히 걸었다. 저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오랫동안 탓으면 좋겠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유난히
파도가 많고
유난히
바람이 많은 섬
그래서
가슴에는 평생
등불이 걸려있다
- 필자의 「내 사랑은 47」
시인은 81년 『시조문학』에 시조「회소곡」,「도회의 밤」이, 88년에는 평론「시조, 그 전통의 계승과 시대정신」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했다. 「가을 거문고」,「달과 늪」,「낱말」등의 시조집이 있으며 영남일보 논설위원, 경일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어떤 면에서 필자와도 이력이 많이도 닮이 있다.
평자들은 실험․시대정신으로, 상상적인 기호와 낱말로 시를 읽기를 하기도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뭐니뭐니 해도 섬세한 서정에 있다.
시조는 짧은 형식에 시조만의 정서를 담는 데에 있다. 필자는 이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붓끝이 짧은 탓도 있겠지만 긴 말을 기억하기 싫어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이다. 그래서 짧은 시가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대숲도 잎을 비비며 먼 생각을 닦고 있다
- 「산사부근」
이제는 먼 눈빛으로/세상 살란 그 뜻이다
- 「돋보기」
자연은 원을 그렸고/인간은 선만 그었다
-「둥금의 변증법」
자연아/네게 나를 버려/나의 길을 잃고 싶다
- 「길을 잃고 싶다」
사는 일 막막한 길도/풀꽃이 알려 줍니다
-「고향에 가려거든」
하늘의 말씀을 당겨 이 땅에다 쏟는다
- 「풍경․A」
이러한 서정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시인의 말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좋다. 옛날 황진이 시조 같은 데서나 있을 법한 시조들이다. 자연스러우나 자연스럽지 않은 한참을 아파해야 깨닫는 경구나 잠언 같은 시조들이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시를 읽으면서 떠나지 않는 단어 하나가 있다. 휴머니스트, 그는 휴머니스트이다.
득보다 실이 많은 12월도 중순이다. 실눈만 남겨놓고 가로수들이 두꺼운 옷을 벗었다. 세상은 긴 동안거에 들어갔다. 겨울 하늘은 가을 하늘보다 멀리 있고 겨울산은 가을산보다 가까이에 있다. 그래서 겨울은 춥고 적막하다.
추워서 멀고 적막해서 가까운 그래서 겨울 하늘, 겨울산만한 것은 없고 필자가 겨울 하늘, 겨울 산을 사랑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서예 문인화,2017.1,40-43쪽.
[출처] 문무학 편 - 석야 신웅순|작성자 석야
첫댓글 시인의 마음을 엿보네요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변함없는 건필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