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89]논객 강준만과 ‘진보반동’의 시대
어제 오후 영풍문고에서 『강준만의 투쟁』(윤춘호 지음, 2024년 6월 개마고원 펴냄, 266쪽, 17000원)을 샀다. 닷새만에 우거寓居에 돌아와 밤 10시부터 3시간동안 내처 읽었다. 너무나 흥미로워,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지지 않고 읽은 책은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일 듯하다.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가 누구이던가. 쾌저 『김대중 죽이기』로 신선하게 등장한 1995년부터 지금껏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논객論客일 터. 누가 뭐래도, 그는 ‘성역과 금기에 도전한다’는 기치를 걸고 그가 창간한 저널룩 『인물과사상』을 통해 실명비판實名批判의 칼을 오랫동안 휘둘렀는가 하면, 안티조선일보운동의 선봉에 선 진보논객의 대부代父였다. 그런 그를 향해 언젠가부터 ‘변절자’ ‘배신자’라는 ‘썰’이 돌기 시작했다. 당장에 확인해본 장문의 글이 <강준만 교수의 흑역사>라는 제목의 1, 2편. 소감은 ‘흑역사黑歷史’가 확실했다. 하여, 갖고 있던 그의 저서와 잡지 등 100여권을 지난해 버렸다. 그에 대해 가진 무한한 애정을 미련없이 끊은 것이다. 이후 그와 관련된 책을 사고 통독한 것은 어제밤이 처음. 지난주 이 책의 존재를 나에게 귀띔해준 언론인친구가 고맙기까지 했다. 시골에 살다보니 꼭 알아야 하고 읽어야할 책들을 놓치기 십상이다.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 것은, 강교수가 변절자나 배신자가 아니라서가 아니고, 또 그에 대해 성급히 미련을 끊은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SBS기자 출신의 윤춘호 저자가 이 책을 쓴 첫 번째 목적처럼, 나로서도 새삼스레 ‘달라진 강준만’을 살펴봄으로써 ‘달라진 한국의 진보’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서이다. 저자가 강교수를 시시비비 양날의 칼이 아니고 총체적으로 접근한 것이 일단 마음에 들었다. 또한 저자가 진단한 ‘진보반동의 시대’라는 정치사적 시대정의에 동의하고 동감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지식인이 30년도 넘게 걸어온 글의 노정路程을 ‘전기前期의 강준만’과 ‘후기後期의 강준만’으로 나눴는데, 그 구별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전기와 후기의 강준만은 정말로 다른 인물일까? 내가 90년말 일부러 만나 3차까지 통음했던 그 강준만과는 이제 천양지차인 것일까.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결론은, 그가 현 정부 출범이후(아니 그 전에도) 대통령이나 여당을 좀처럼 씹거나 비난하지 않고, 민주당과 이재명 또는 진보진영을 (역시 前期의 그답게) 비평의 수준이 아닌 비난 일색의 칼럼을 쓰며 조근조근 씹어대는 것에 대해, 일정부분 우리(유권자, 국민, 대중)의 몫(책임)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한때 ‘지식인들의 지식인’으로 일컬어지던 강교수가 뼈속까지 변신하거나 배신자인지는 한두 마디로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도 일정부분 일관성을 가지고 있고, 초심初心을 잃거나 잊지는 않은 것같기 때문이다. 왜 그는 디지털시대에 억지로라도 ‘적응’하지 않고, 아날로그를 여전히 고집하는 걸까. 그래서 세상은 그의 말에 이제 관심을 갖지 않은 걸까. 글의 전개는 복잡하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저자의 취재방식도 독특해 그의 저작著作들(논문검색사이트에서 검색되는 강교수의 책은 277권이며 논문이 537편이라고 한다)을 구구절절 또는 통째로 저작咀嚼하고, 주변인물들(동료교수, 제자 등)에게 ‘강교수는 누구인가’를 일일이 물었다고 한다. 목차의 제목들도 강교수의 책 제목만큼이나 명료하고 의미심장하다<목차사진 참조>.
‘역사가 강준만’이라는 챕터의 ‘강준만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은 역사가’라는 제목을 보고, 문득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 17권을 모두 구입, 새롭게 읽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모두 버린 그의 책들이 아쉽기까지 했으니, 저자의 1차 목표는 나에게도 와닿은 것같다. 거대한 역사(그것이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의 흐름을 ‘한 꿰미’로 정리하고 일목요연하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전공학자들과 이어령, 김용옥 등 석학들의 고유 권한인 듯하다. 그게 왜곡되거나 적확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야 그들의 내공이 '깊고 엷음’에 달렸을 듯.
강준만, 그가 강준만을 밀어내는 역설逆說이 궁금하지 않으신가? 한때 ‘아삼육’이었던 김어준을 ‘정치무당’이라며 비난한 책을 펴내고, 동지로 만나 적으로 헤어진 논객 유시민과의 '같음과 다름'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 그는 왜 노무현 영전에서 통곡하지 않았을까? 진정 진보의 ‘화양연화’ 시절은 이렇게 지나갔고, 영원히 꿈에 그치고 말 것인가? 강교수의 책을 최소한 한두 권 읽었거나 그 이유가 알고 싶다면, 이 책 17000원은 조금도 아깝지 않을 것같다. 역시 재야엔 고수들이 많다. 나는 다시 한번 정색을 하고 꼼꼼이 읽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