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경희대 양자물리학 교수 ‘김상욱’의 에세이, 집이다. 김상욱의 양자역학 공부와 일본인 ‘마치오 카쿠’의 양자컴퓨터 혁명은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필자 김상욱을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은 전공과 다른 에세이였다. 무엇이 변하지 않을 것이냐는 분야마다 다를 것이다. 교육에 종사하는 필자로는 “우리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 10년쯤 뒤를 대비해서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요?”란 질문의 답은 누구도 명확한 미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을 것부터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선 역사다. 타임머신이 나오지 않는 한,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음은 철학이다. 호머 사이언스의 본성은 지난 수만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플라톤이나 공자를 읽는 것이다. 그 사람 다음은 예술이다. 직업적 예술은 모르겠고 10년 후에도 노래와 춤추고 그림 그리지 않을까? 그다음은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다. AI에 일을 시키려면 비슷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다음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은 10년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변화를 일으킬 새로운 과학기술은 모두 이들을 토대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이런 것을 배우면 되지! 않을까? 필자는 주장한다. 멀티코어 프로세서 아버지 ‘짐 켈리’가 한국 미디어와 인터뷰를 했다. “AI의 시대, 다음 세대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예술과 기초과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지금 고등학교에서는 프로그램을, 대학에서는 CAD를 가르치는데, 이건 미친 짓입니다. 읽기, 쓰기, 생각하기, 예술, 연극, 악기를 배우고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기본이 항상 최고입니다.”라 말했다.
우리는 왜 자꾸 남을 따라 할까? 과연 인간과 동물은 어디가 다른 걸까? 이 질문의 답은 여러 개지만, 최근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다. 인간의 연구는 자연선택과 성선택에 근거하여 인간의 행동, 나아가 특성을 설명했다. 동물을 연구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다루었다는 뜻이다. 반면 유전자-문화 공진론은 문화가 단지 인간이 가진 특별한 행동 양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문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인간의 농경 기간은 수렵채집 기간에 비해 상당히 짧다. 수렵채집 시기 형성된 인간 심리를 결정하는 유전자에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인간 심리를 결정하는 유전자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예로 현대인이 비만을 걱정하면서도 달콤한 디저트를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렵채집 시대 기아에 허덕이던 경험이 만든 심리 때문이란다.
어떤 신약을 상상해 보자. 기억력과 창의력을 높이고 암과 치매를 예방한다. 식탐을 줄이고 피부를 매끈하게, 몸매를 날씬하게 만든다. 심장마비와 당뇨병도 줄여준다. 거기에 스트레스를 줄이고 기분도 좋게 해준다. 이런 신약이 개발된다면 금방 품절되고 그 제약사의 주식을 사면 대박이 날 것이다. 사실 이 신약은 개발되어 있다. 바로 잠이다. 인간은 7~8시간을 자야 한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27분이다. 조사 대상국 57국 중의 54위로 적게 잠을 잤다. 많이 자는 나라 1위는 중국이다. 잠은 생화학적으로 멜라토닌과 아데노신이라는 두 가지 물질이 작용하여 만들어낸다. 멜라토닌 농도가 높아지면 몸에 잠자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농도는 밤에 높고 낮에는 낮다. 새벽에 빛이 눈에 닿으면 멜라토닌 분비가 차단된다. 아데노신은 깨어있는 동안 계속 증가한다. 밤새워 일을 하면 몸에 아데노신이 가득 차서 극도의 졸음이 몰려온다. 동물 중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영장류는 10~15시간 잠을 잔다. 조류의 잠은 특이하다. 새의 뇌는 절반만 잘 수도 있다.
이름 없는 이들의 사회.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집단을 이룬다. 가족, 나라, 지역에 속한다. 학창 시절 친구끼리 그룹을 만들고, 좋아하는 모임에 가입한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동물은 모이기만 하지 사회를 구성하지는 못한다. 인간사화의 특성은 익명 사회다. 서로 알지 못하는 구성원까지도 문제없이 살아가는 사회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따르면 인간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허구적 대상을 믿는 동물이다. 허구 대상이란 종교, 예술, 국가, 법률, 도덕같이 인간이 가진 모든 문화적 특징을 포함한다. 익명의 사회에 진입하자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않고도 구성원임을 알 수 있는 표지가 필요했다. 표지는 인간의 몸 자체였다. 동아시아는 중국은 변발을 일본은 촘마게를 조선은 상투로 머리 모양을 했다. 그러니 머리 모양으로 국적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걸 알면서도 비만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다이어트는 왜 성공하기 힘들까? 첫째 비만은 생존에 유리하다. 과거 인류의 조상은 동물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야생에서 퉁퉁해질 만큼 배불리 먹기 힘들었다. 모든 생물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먹으려면 다른 생물을 잡아먹어야 한다. 생물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동물이 소화하기 힘든 ‘리그닌’과 ‘셀룰로스’라는 물질로 몸을 두르고 각종 독을 장착한다. 배불리 먹기 힘이 든다면 몸에 많이 저장해도 몸이 모조리 사용한다. 몸에 영양분이 많이 저장된 상태가 비만이라 한다. 문제는 현대인은 언제나 배불리 먹는다는 데 있다. 탄수화물은 소장에서 포도당으로 분해 흡수된다. 간을 거쳐 심장으로 간 다음, 혈관을 타고 몸 전체로 전달된다. 지방은 세포에서 흡수된 후 물에 녹지 않아 ‘유피관’이라 불리는 경로를 통해 대정맥으로 이동한다. 심장으로 이동하여 몸 전체에 전달된다. 혈중 포도당 농도가 높아지면 췌장에서 ‘인술린’이 분비된다. 몸에서 포도당을 제거하여 농도를 낮춘다. 간에서도 포도당을 글리코겐의 형태로 저장한다. 몸에 지방이 많이 쌓이면 비만이 된다. 간에 콜리코겐 이 많이 쌓여 공간이 없어지면 지방간이라 부른다. 반대로 몸에 에너지가 필요한 경우, 혈중 포도당 농도를 높여야 할 경우 췌장에서 ‘글루카콘’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운동한다고 곧바로 뱃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이렇게 얻어진 포도당이나 지방은 각 세포로 이동하여 산화 반응을 통해 몸에 필요한 에너지로 바뀐다. 하지만 식사량을 줄여 살을 빼기도 쉽지 않다. 우리 몸이 지닌 항상성 때문이다. 항상성은 몸의 상태를 변함없이 유지하려는 속성이다. 음식을 줄이면 처음은 살이 빠지지만 곧 한계에 도달하는 데, 이는 몸이 기초대사량을 줄여 체중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기초대사량을 줄인다는 것은 심장 박동수를 줄이고 호흡을 늦추고 면역을 떨어트리고 체온은 낮춘다는 뜻이다.
‘로벤하이머’와 ‘심프슨’의 공저 <식욕의 비밀>은 포도당 단백질 지방은 필수 영양소인데 그중 단백질에는 포도당이나 지방에 없는 질소 원자가 들어있다. 그래서 몸은 탄수화물이나 지방보다 단백질을 우선하여 충족하려고 한다. 그래서 탄수화물이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 단백질 요구량을 채우기 위해 과식하게 된다. 반면 단백질이 더 많은 음식을 섭취하면 단백질 요구량이 금방 충족되어 과식을 피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만약 단백질은 전혀 없이 탄수화물이나 지방으로만 된 음식을 먹는다면 무한정 먹게 된다는 뜻이다. 초파리와 생쥐 시험에 따르면 단백질만 주면, 수명이 짧아지고 번식력도 떨어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회식은 지극히 사회적인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의 또 다른 적은 뇌다. ‘아힘 패터스’의 <이기적인 뇌>에 의하면 뇌는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몸이 망가지는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행동한다.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 환자는 장기 무게가 40% 줄어들어도 뇌의 무게는 조금만 줄어든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는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GLP-1호르몬’과 유사한 물질로서, 음식을 충분히 먹지 않았는데도 포만감을 느껴 소식을 하도록 유도한다. 매주 1회씩 맞는 위고비 투약을 멈추면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기에, 효과를 지속하려면 평생을 맞아야 한다. 한국 질병관리청 자료는 남성 47.7%, 여성 25.7%가 비만이다. 인간이 배불리 먹게 된 것은 잘해야 100여 년 전이다. 빈곤했던 시절 비만이 희소하여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풍요로운 지금은 날씬함도 단지 희소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렇다면 심각한 비만이 아니면 끊으면 말짱 도루묵인 비만 치료제를 투여할 것이 아니라 식사량을 조금 줄이고, 건강을 위해 적당히 운동하며 현재의 몸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 아닐는지. 그런데 필자도 몸무게를 딱 3킬로 그램만 뺏으면 좋겠단다.
수학으로 맺은 비밀 약속. 알파벳은 e가 사용 빈도의 12%이고, z는 1%도 안 된다. 치환 암호는 알파벳의 다음 순서로 문자를 치는 것인데 이는 e 자가 f로 치환되고 영어는 q는 다음은 언제나 u가 오니 금방 탄로가 난 것이다. 인터넷 뱅킹에서 내 로그인 비번이 나의 컴퓨터에서 은행의 컴퓨터로 이동한다. 이동할 때 그 정보를 가로채지 않는다고 어떻게 확신할 것인가? 카페에서 쓰는 무료 와이파이는 보안에 허술하다. 우리는 암호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 정보화 시대는 한마디로 암호의 시대다. 정보화는 디지털 시대이기도 하다. 그림은 작은 픽셀로 나눌 수 있다. 빛의 삼원색을 빨간색을 1, 녹색을 2, 파란색을 3으로 대응시키면 모든 그림은 1, 2, 3 가운데 한 수를 가지는 픽셀들의 모임으로 표현된다. 스마트폰 화면이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모든 수는 이진법, 즉 0과 1로 나타낼 수 있다. 따라서 소리나 이미지는 모두 이진법의 디지털로 표현된다. 사실 컴퓨터는 말 그대로 수를 계산하는 기계다. 정보화 시대는 수학의 시대다. 암호키의 전제는 기지국이 동일한 암호키를 미리 공유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방법을 ‘대칭키 암호’라 한다. 휴대전화는 유심 USIM이라는 물리적 장치에, 통신사는 서버에 데이터로 암호키를 저장한다. 상대방과 내가 공통의 암호키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경우를 ‘공개키 암호’ 방식이라고 한다. 문제는 상대가 열쇠가 없다는 것이다. 받은 사람이 자물쇠만 먼저 나에게 보내주는 것이다. 이 자물쇠는 채울 때는 열쇠가 없이도 잠기지만 열 때는 열쇠가 필요하다. 금고에 편지를 넣고 상대가 보내준 자물쇠를 금고에 채워서 금고째로 보내면 된다. 열쇠는 상대만 가지고 있기에 보안 문제가 해결된다. 인간 사회는 신뢰로 굴로 간다. 세금 고지서, 인터넷 상점, 이 메일, 은행 웹 사이트가 믿을 만한지 끊임없이 걱정해야 한다면 사회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현재 정보화 사회는 암호에 의존하고, 암호는 고도의 수학이다. 우리는 수학 없이 하루고 할 수 없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6.09.03.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간행
첫댓글 속고 사는 세상인데
그래도 마음을 넓게 먹고
오늘도 살아가야 하겠지요.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양자 물리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