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양자물리학자 김상욱의 이어지는 글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 없는 전쟁. 면역은 우리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생물학적 체계인데, 사람들은 의외로 면역에 대해 잘 모른다. 코로나 19시기에 ‘면역’은 지금의 인공지능만큼이나 언급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과학은 알아도 면역의 과학은 잘 모른다. 면역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공지능 없이는 살 수 있어도 면역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음식을 먹으면 입에서 항문으로 이동하는데, 소화관을 지나는 동안 음식은 항상 몸 바깥에 있다, 소화관을 파이프로 보면 우리 몸의 측면에서 보면 외부다. 음식을 삼켰다고 음식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소화관의 내부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다. 활성화된 면역세포는 적이 사라지면 스스로 사멸한다. 하지만 일부는 항원을 기억한 채로 장기간 생존하기도 한다. 예로 ‘기억 B세포’는 골수에 대기하다 항원에 나타나 결합하는 순간 증식하여 활동을 개시하는데 이를 ‘면역반응’이라 한다. 바이러스 세균 같은 병원균에 감염된 사람이 면역을 가지는 이유다. 이것이 백신이다. 면역계가 몸에 해롭지 않은 물질을 적으로 잘못 기억하기도 한다. 이런 면역계의 실수를 알레르기라 한다.
결혼과 사랑의 불안한 동행.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다. 가족은 결혼제도에 기반한다. 결혼제도는 왜 생긴 것인지, 근래 이 제도가 왜 자주 문제가 되는지 과학의 눈으로 보자. 번식은 최선 전략을 따라야 한다. 어떤 생물이 최선의 번식에 성공하고 죽음을 맞이하면, 적어도 이기적 유전자의 시각에서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유인원 가운데 고릴라는 일부다처제, 침팬지와 보노보는 난혼을 맺는다. 일부다처제의 수컷은 육체적으로 강해야 한다. 그래야 암컷을 거느리고 성관계를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롭게 성관계를 하는 난혼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암컷의 자궁에 들어간 수컷의 정자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즉 신체적인 힘보다 생식적인 힘이 더 강해야 한다. 침팬지의 몸무게는 고릴라의 4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음경은 2.5배 더 크고 고환은 4.5배 더 무겁다. 사정당 정액의 용량은 4배 가까이 고릴라보다 많다. 즉 생식 능력이 좋다. 해부학적으로 인간은 일부다처제의 고릴라보다 난혼의 침팬지에 훨씬 가깝다. 농업이 시작되자 결혼에 변화가 일어났다. 수렵채집 때보다 한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인구가 증가하여 잉여산물이 생기게 되었다. 일하지 않아도 될 계급이 생기고 무력을 가진 가부장적 사회가 자리를 잡았다. 재산을 자식에 넘기길 원하며 여성을 억압했다. 여성의 아이가 자기 자식인지 확신하기 힘들었다. 동아시아는 부부간의 사랑보다 부모와 자식, 혹은 형제자매 사이의 사랑을 중시했다. 이제 사랑을 기반으로 한 근대 결혼의 이상도 도전을 받는다. 이혼은 놀라운 일이 아니고,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비혼으로 살아간다. 결혼은 원래 사랑과 관련이 없는 제도였다. 그러다 결혼으로 로맨틱한 사람이 결합하여 결혼 혁명이 일어났다. 혁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준다는 것은. 2025년 오스트레일리아는 16세 미만의 SNS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초등학생에 스마트폰을 주어야 하는지는 고민했다. 물론 선택의 여지는 없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다른 아이와 소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10대의 경우 불안과 우울증 관련 질병이 갑자기 증가했다. 스마트폰의 영향이다. 인간의 성장 과정은 특이한 점이 있다. 동물은 처음에 빠르게 성장하다 이후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생후 2년간 빠르게 성장하고, 이후 7~8년 느리게 성장하며, 10대에는 다시 급격히 성장하다가 몇 년 뒤 성장이 멈춘다. 청소년기 성장은 생물학적이기보다는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데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적 용량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우거나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능력이다. 스마트폰은 놀라운 기계다. 이 기계는 인간의 능력을 몇 배를 증폭시켰다. 하지만 모든 기술에는 단점이 있다. 스마트폰의 단점은 중독이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작은 컴퓨터가 아니다, 침대에서 컴퓨터는 볼 수 없지만, 스마트폰은 침대나 화장실에서 볼 수 있으니 중독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현대인은 영양과잉인데도 계속 먹는다.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소유하고 싶어 하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할 줄 모른다. 왜 우리는 끊임없이 결핍을 느끼는가? 답은 간단하다. 결핍을 느끼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는 굶주림 속에 살았고, 결핍을 채우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하는 개체가 살아남았다. 그래서 우리 몸에는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과 관련된 화학물질이 있다. 쾌락의 호르몬이라는 ‘도파민’이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추구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기대될 때 도파민은 우리에게 위험을 무릅쓸 용기를 주거나 기운을 북돋아 포기하지 않고 그 일을 지속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우리가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히틀러는 음모론의 신봉자였다. 독일의 패망이 독일의 전력부족이 아니라, 유대인과 공산주의자들의 배신 때문이라는 음모론이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때 그 음모론은 독일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유대인이라는 질병 유전자를 제거하여 게르만족의 결핵균을 퇴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독일인은 히틀러를 따라 음모론을 믿었나? 음모론은 고통을 설명하기 위해 존재한다. 종교는 고통의 이유를 설명한다. 대개의 종교는 신이 존재함에도 악과 고통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이론이 神正論이다. 근대는 신의 죽음, 즉 교회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 교회의 몰락은 근대과학이 사람을 계몽시켰기 때문은 아니다. 신정론이 시대의 고통을 더 이상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낙선했을 때, 충격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 과열로 상대 후보를 악마화하는 지경이다. 과학 저술가 ‘마이클 셔머’는<음모론이란 무엇인가>에서 종종 더 큰 세계관의 일부라고 했다. 정부는 언제나 국민을 기만한다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9.11테러가 정부의 조작극이라거나 ‘아폴로’ 11호가 달에 가지 않았다는 음모론을 쉽게 받아들인다. 중요한 것은 음모론이 자신이 지지하는 세계관과 일치한다는 것뿐이다. 이 경우 음모론은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계가 있다. 인터넷이 등장하며 음모론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 음모론은 나름의 체계가 있어 공부해야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공부가 필요 없다. 요즘은 새로운 이론을 이해하려 할 때 생각하기보다 유튜브를 본다. 음모론에 구멍이 있어도 채울만한 정보를 금방 찾을 수 있다.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그러면 어째서 빈약한 음모론이 사람의 관심을 끄는가? 그것은 ‘반복’이다, SNS 시대에 중요한 것은 합리성이 아니라 ‘좋아요’나 ‘공유하기’의 횟수다.
최근에는 가짜 뉴스보다 ‘개소리 bullshit’가 더 큰 문제다. 미국 도덕철학자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에 의하면, 거짓말은 의도적으로 진실을 외면하지만, 개소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아예 관심이 없다. 따라서 개소리는 그냥 둘러대며 내뱉는 말이 아니라 틀리기조차 못한다. 따라서 개소리는 가짜 뉴스보다 대응하기 힘들고, 그에 대응하는 사람이 그것을 만들고 퍼뜨리는 사람보다 수십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뻔한 거짓말보다 어이없는 개소리에 사람들이 조금 더 관대하다는 것이 문제를 악화시킨다. 아직 우리는 개소리에 제대로 대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것이 때로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신뢰가 낮은 사회는 음모론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정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신뢰가 한 단계 낮아질 때마다 음모론의 토양은 한층 비옥해질 것이다. 음모론이 판칠수록 과학적 사고방식이 더욱 중요해진다. 과학적 사고가 필요한 시대다.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1914년 6월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인에 암살당한다. 이에 7월28일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세르비아 동맹국 독일은 8월1일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8월3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한다. 프랑스 동맹국 영국과 벨기에는 8월 4일 전쟁을 선포한다. 8월 6일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러시아에 선전포고한다. 8월 12일은 세르비아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응전의 선전포고를 한다. 한나라가 병력을 동원하는 순간, 군사조약으로 묶인 다른 나라들이 연쇄적으로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병력 동원을 위한 기차 시간표 때문이다. 그렇게 많이 동원된 1차대전의 병력은 기관총이라는 기계를 향해 돌격하다가 사라졌다. 지금은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이 위험을 느낀다. 1차대전 직전 사람들은 큰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지 못했다, 이전 100여 년 큰 전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각국이 보호무역주의에 빠지고 반세계화 흐름이 나타나자, 긴장이 고조되었다. 지금 우리는 미국을 선두로 보호무역을 넘어 무역 전쟁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지금 인류는 ‘인공지능’이라는 신기술의 등장에 환호하고 한편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크지만, 진짜 두려움은 무기에 사용될 가능성 때문이다. 원자폭탄이 인류에게 엄청난 위험이지만, 너무 강력한 무기라 사용할 수 없다는 아이러니가 큰 전쟁을 억제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원자폭탄과 다르다. 드론의 무인비행체의 역사는 짧지 않다. 2차대전의 독일의 V-1 로켓부터다. 크기 15 센 티 무게 40그램의 소형 무인기부터 살아있는 풍뎅이에 전자 칩을 심고 뇌에 전기신호를 보내 비행 중에 방향을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사이버 곤충이라 할 만하다. 이제 AI는 CCTV, 위성, 드론 정보나 휴대전화의 위치 추적 등을 활용하여 공격 대상의 위치를 파악하면 포격하거나 공습하도록 지시한다. 가자지구에서 수만 명의 민간인이 공습으로 사망했다. 라벤더 시스템에서 10%의 판단 오차가 생겼지만, 정쟁 초기 이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공격을 승인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그의 집에서 탄도 미사일로 살해했다. 이제 인공지능은 전쟁에서 정세를 분석하고 작전을 짜고 군대를 지휘한다. 머지않아 우리는 기차 시간표가 아니라 AI 때문에 참혹한 대규모 전쟁으로 끌려 들어가게 되지 않을까? 필자는 염려한다.
2026.09.08.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간행
첫댓글 감사합니다.
‘변화의 시대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를
살펴 읽고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물러갑니다.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글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