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비오는날공주왕자.
P.M. 5 : 30
조그만 회색건물 밖으로 나오면,
한방울 두방울씩 오던 빗방울이
걷잡을 수없이 커진다.
비가 온다.
"공주야!!!!"
오늘은 비가 온다.
고로 그 녀석이 온다.
그 녀석이 온다면, 난 우산 따위 필요 없어진다.
가방 안에 잠든 하트무늬가 셀 수 없이 많이 그려진
핑크색 삼단 우산을 떠올리다가 이내 지워버리면,
"공주야아!!!!!!!!!"
아니나 다를까.
이렇게 비가 내리면,
그 투명한 우산을 들고는 건물 앞의 횡단보도를 건너
날 찾는 녀석의 목소리.
역시 우산이 필요 없어졌다.
"오늘도 우산 없네?"
한 마디 말을 건네고는 베시시 웃어 보이더니
투명한 비닐우산을 불쑥 내 머리 위로 올리는 녀석.
그러고는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한달 전 내게 첫 우산을 건네던 모습 그대로
구겨진 종이모자를 꺼내서는
머리에 얹어 버린다.
"비 맞지마. 공주야-"
"어? 어..."
"난 이거 있으니까 괜찮아! 그럼 안녕. 비오는 날 올께!!"
하얗고 긴 손가락 끝으로 이제 비에 젖어 푹 꺼져버린 종이모자를
두어번 두드리며, 마지막 대사를 치더니
총총총 사라져 버린다.
이상한 녀석이다.
한 달전이나 지금이나
참 이상한 녀석이다.
올해 장마가 시작되고 부터 녀석은 줄기차게 나타나서
이로써 내 손에 들어 온 우산은
9개가 되었다.
중요한 건, 우산의 주인인 녀석은 나에게 단 한번도 우산을 돌려달라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새로운 우산을 쥐어주며
비를 맞지 말라고, 비오는 날에 또 보자고 사라진다는 점.
이 녀석은 단 한번도 내게 이름을 묻지도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 녀석이 나에게 '공주야-'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녀석의 멋대로 붙인
일종의 애칭이라고 봐두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아.
아직까지 내 소개는 전혀 하지 못했는데,
간단하게 말하겠다.
난 되게 작은 사무실에서
경리직을 보는 평범한 여사원이며,
이름이라면, 조금은 특별 난 '공주림'
'공'씨 성에 '주림'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나이는 먹을 만큼 먹은 스물 다섯이며,
그 녀석이 부르는 '애칭'에 대한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은
내가 나 스스로 날 '공주'라고 생각 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이름 때문에 들어오던 별명때문이 아닌가 싶다.
무튼, 한 달전
끈적하기만한 이 장마와 함께 찾아 온 녀석이
결코 싫지는 않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고
난 그 판단에 따라 그 녀석이 준 우산을 하나하나 고이 모셔두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산이 늘고, 시간이 갈 수록
이 장마가 끝나 갈수록
마음이 시려서 견딜 수가 없어진다.
그렇게 마음이 시려지는 것을 느낄 때면
어서 빨리 비가 오길 기다린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창문 밖은 구름이 잔뜩이다.
하지만 비는 오지 않는다.
마음이 시려진다.
비가 오길 기다린다.
나에게 9번째 우산이 들어온 후,
일주일간 영 비소식이 없다.
빌어먹을 일기예보도 비소식을 말하지 않는다.
"후덥지근 한 게, 한번에 퍼부으려나..."
쓸 데 없이 비걱정만하는 내 모습에 한 숨을 쉬고,
창문에 고정해 두었던 시선을 거두어 다시 책상으로 돌린다.
쏴아아-
"어머!! 뭐야? 나 오늘 우산 안가지고 왔는데!!!! 아우 진짜 못 살어!!!"
바로 옆 책상의 김양언니.
언니의 그 걱정어린 목소리에
입꼬리가 스윽 올라가서는
가방에 잠든 하트무늬가 셀 수 없이 많이 박힌
핑크색 우산을 떠올려 내서
"언니, 우산없어요?"
"응!!! 오늘 비 온다는 말도 없어서 그냥 나왔지!! 여름장마 믿을 게 못된다니까!!"
"내 꺼 줄까요?"
"어? 정말?!"
눈이 땡그래져서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듯 하던 김양언니는 금새
"우산 나한테 주면 넌 뭐쓰고 가려고~ 됐습니다-"
"아냐~ 나 우산 또 있어. 이거 언니 쓰고 가."
"어휴, 이 거 고마워서 어떻게 해? 담에 맛난 거 살께!"
"뭘 이런거 가지고, 난 우산 있다니까."
반가운 빗소리에 신이 나서
기분이 한참 좋아진 난
그 날의 잔업을 정말 날아가 듯 끝내고는 그 작은 회색건물에서
쏙 빠져나왔다.
쏴아아아-
P.M. 5 :13
비 참 많이도 온다.
이제 앞으로 17분 뒤에 있을 10번째 우산과의 만남에
뛰는 가슴을 주체 할 수 없어질 때,
내가 일찍 나올 것을 알았는지
이르게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
우산이 없어 먼저 건너가지는 못하고
항상 그랬듯, 횡단보도 건너의 그 모습을 보고만 있다.
"공주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으레 이 쪽으로 뛰어 와서는
우산을 내 위로 올려주겠지.
"나!!!!!!!! 이제 안녕해야 될 것 같다!!!!!!!!!!!!!!!!!"
당최 알아들을 수 없는 한마디를 하는 녀석.
당장이라도 저 건너편으로 가고 싶지만,
난 우산이 없는 걸.
"이제 우산 못 주겠다. 진짜로 미안해!!!!!"
왜 아깐 못 본 걸까.
저 건너편 빗물들 사이로 보이는 저 녀석의 푸른 병원복이
왜 아깐 못 본 걸까.
내가 빗 속으로 뛰어든 건 말입니다.
그렇게 싫어 하던 빗 속으로 뛴 건
그 푸른 병원복의 색깔이 맘에 들어서도 아닙니다.
그 10번째 비닐 우산이 탐이 나서도 아닙니다.
그저 신호등이 빨강에서 파랑이 되어서도
건너 편에서 미안하다면서 그냥 그렇게 서있는 녀석을 잡아보려고
빗 속을 뛰었는데,
돌아서서 숨어버린 그 녀석을 다시 찾을 수 없게 된 건 지금도
가슴이 시립니다.
장마가 끝난 지금도 집에는 그 녀석의 비닐우산 9개가 고이 모셔져 있다.
그 옆에는 김양언니에게 빌려준 핑크우산도 같이 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9개의 비닐우산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고,
핑크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이유를 설명하자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투명우산이 너무 밋밋해서이고,
또 하나는 다신 그 녀석을 닮은 투명우산이 차가운 빗방울들을
고스란히 막아내어 상처받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이다.
언젠가 다시 올
금테를 두른 왕관 대신 비에 젖은 종이모자를 쓴 왕자님에게-
■
비가 참 많이 오던 휴일들을 지나쳐
이제 한숨 돌리네요.
제가 사는 동네는 물난리 구경도 못했지만,
많은 분들이 참 힘드시리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 답답한 장마가 걷히고,
무더운 여름님이 오면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여러분들에게도
'어느비오는날'이 오길...
■

!요것도 '린하유'한테 받은 선물!
첫댓글 와 좋네요 ㅇ_ㅇ 새벽에 몰컴하다 보고갑니다-0-<-엄마한테 들키면 죽는데 ㅋㅋㅋ
■ 뭔가 분위기를 바꿔봤는데 괜찮으셨나요? 아아 많이 걱정했답니다ㅠ
재밋어여`~^^ 슬퍼요ㅠ 풉 좋은소설이예영
■ 슬프셨나요? 헤헤- 저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야!!!
파란형광등님 완전완전 기다렸어요오오오오옹~~~♡역시 기대를 져버리지않는 멋진 소설입니다> <♡♡번외번외 완전 부탁드립니다ㅜㅜㅜㅜ
■ 이렇게 매번 기대 하면서 봐주시니 저 정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증말로 감사야요!
진짜재미있게읽고갑니다.잘쓰세요~!
■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즈는 무진장 기뻐버리는 겁니다iVi
오오.. 멋져요. 상당히.. 뭐랄까.. 음.. 아련한 느낌이 물씬 나는 글이네요(웃음). 건필하세요!
■ 아련하다는 느낌!!! 우와 정말 좋습니다!!!! 뭔가 더 애절한 게 필요했는데, 하하<
재미있게봣어요.
■ 헤헤, 재미있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아하하 재밌게봤어요^^ 파란형광등님은매번소설을잘쓰셔서좋겟어요 T_T
■ 매번이라뇨ㅠㅜ 저도 썼다지웠다 얼마나 고민하고 머리를 쥐어뜯는지몰라요ㅠㅜ(웃음)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어머, 리향히메님!! 감사합니다ㅠㅜ 여운남는거 무지 좋죠ㅠㅜ 아아<응?
앗!!!!!!!! 언니!!ㅜㅜ 소설 쓰셨는거 이제 알았어요!!!ㅜㅜ..... 흐엉..ㅠㅠ 이제야 댓글 달아드리는거 넘흐 넘흐 죄송해용!!!!!!!!!!!!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으아~ㅠㅠ 제일 먼저 달아드려야 했던건데.....ㅠㅠ..... 흐엉엉.ㅠㅠㅠㅠㅠ 용서해주세용용!ㅠㅠㅠㅠㅠㅠㅠ.. 크헝.ㅠㅠ........ 진짜 너므너무 잘본거 아시죵?!!! 진짜 우리 형광등 언니보다 잘쓰는분 있음 나와보라그래~!! < 헤헤헤~ 막요래용~ 진짜 너무너무 잘본거 아시죵?!?! 꺅꺅! 저 손글씨 누가 해줬는지 이뿌네용-_-***ㅋㅋㅋ 헤헤헤~ 진짜 너무너무너무!!!!!!!!!!!!!!!!잘 봤어용~!!!!! 막막 여운이 넘흐 넘흐 남아버려요!!ㅠㅠ,, 남자 내스?인데...ㅠㅠ..<
■ 어므나ㅠㅜ 보고싶어써!!!ㅠㅜㅠㅜㅠㅜ이게얼마만이여!!!!!!! 으와아!!! 이번꺼는 막 너무 짧다 싶어서 번외막막해서 포기했잖아< 허허허허허 역시 이건 이 뭔가 흐물흐물한 엔딩이 나으려나 싶어. 그래서 다른 걸 쓰고 있..< 제목은, 비-밀♡<뭐래? 나중에 소설올려놓으면 확인하쇼!! 무튼!!!!!! 막 니 댓글기다렸어기다렸어!!!!!!! 히히 항상 이렇게 이쁘게 읽어줘서 고마워! 사랑해 린하유야!!! 린하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