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대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양자물리학자 김상욱의 이어지는 글이다. 필자의 프로필을 AI에 물어보니 1970년생 추정, 2026년 현재 56세로 40~50세대다. KAIST대, 학-석-박사로 부산대와 경희대 근무 중이고 고향과 출신고등학교는 온라인 정보에 따라 다르나, 금천구의 충일고등학교 (12회)라 정보가 있다며, 그는 50세대로 학교 교육과 성장 환경과 태생이 우리나라의 좌파 그늘 속에 있음이 그의 수필에 여러 곳에서 나온다. 그가 든 예는 삭제하고 간추려서 올린다.
초기 조건 혹은 경제 조건의 힘. 현대 사회는 서양이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동양인이지만, 서양식 의복을 입고, 서양식 헤어스타일을 하고, 서양식 주택에 살며, 서양식 의학과 과학기술을 사용하고, 서양인처럼 자유연애를 하고, 서양식 공교육을 받으며, 서양의 민주주의 공화정이라는 정치체계에서, 서양의 자본주의를 따른다. 최근 미-중의 갈등이 첨예해지고 있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여 결국 동양의 시대가 오는 걸까? 동서양의 갈등에서 우리는 동양 쪽, 서양 쪽일까? ‘이언 모리스’의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라는 책이 있다. 지금 서양이 지배하는 것은 지리적 이점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은 몇 차례 바뀌어 왔는데, 이때 지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국이 석탄 매장량이 풍부한 것이 고대에는 이점이 아니었지만, 산업혁명 시대에는 엄청난 이점이 되었다. 서양이 지배한 이유는 서유럽, 이집트, 튀르키예를 서양으로 보고, 중-일-한국의 동아시아를 동양으로 본다면, 평가는 에너지 운용, 도시성, 정보처리 능력, 전쟁 수행 능력 4가지 지표를 수치화하여 구한 ‘사회발전 지수’를 이용한다. 이를 쓰면 상대적 편견에서 벗어난다는 이점이 있다. 한때는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동-서양인 모두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으로 이 말은 틀렸다.
1700년대가 되자 서양은 근대과학, 자본주의, 계몽주의, 민주주의,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동양을 추월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질주한다. 서양이 성공한 원인은 산업혁명의 연료인 철과 석탄이 풍부했고, 아메리카 대륙이 가까이 있었다는 지리적 이점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문화적 요인도 있다. 서유럽 서양인의 사고방식은 다른 인간 집단과 특이하다. 교회는 여러 제도를 도입한다. 혈족 및 인척간 혼인 금지. 일부다처제 금지, 비기독교인과 결혼 금지, 신혼부부의 독립 장려, 재산 상속자 결정권 등이다. 재산 상속자를 결정하는 권리는 유산을 교회에 헌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덕분에 교회는 나날이 번창한다. 결국 오늘날 서양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유럽이 가진 지리적 이점과 서유럽인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지리적 이점은 우연의 산물이다. 이제 동양은 지리적으로 불리하지만은 않다. 중국은 희토류와 중요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인터넷과 수송 수단의 발전은 지리의 개념을 확장하고 변화시키고 있다. 서양이 앞설 수 있었던 조건이 더 이상 서양에 국한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국을 앞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제 동양은 미래에 자신이 세상을 지배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는 시대착오적인 논쟁일지 모른다. 동서양 구분 없이 하나의 인류가 번성하는 미래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필자는 주장한다.
좌절은 어떻게 국가를 무너뜨리는가. 청나라 말기 홍수전은 엘리트로 1차 과거시험은 통과하나, 다음 2차 단계에서 부패한 과거제로 세 번 낙방하고 신경쇠약으로 앓아눕는다. 이때 기독교와 관련한 종교적 환상을 보았다. 이에 깨달음을 얻은 홍수전은 자신이 교주가 되어 새 종교를 창시한다. 당시 희망 없던 과거에 매달리던 두 엘리트가 개종자가 되어 그를 따랐다. 그리하여 수천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중국 최대의 비극인 태평천국의 난이 시작된다. 중국은 200~300년 주기로 나라가 교체되었다. 한나라가 망하며 위진남북조 혼란기가 오고, 당나라가 망하며 오대십국의 혼란기가 오고, 몽골에 송나라가 망하고 원나라가 들어서고 명과 청이 흥하고 망하는 과정이다. 국가가 망하는 데는 전형적인 패턴이 있다. 대중의 궁핍화와 엘리트의 과잉생산이 주된 이유다. 엘리트는 권력에 편입되기를 바라지만, 경쟁이 치열하여 좌절한 엘리트들이 늘어나면 이들 중에 굶주림에 분노한 대중을 조직할 사람이 나타난다. 1853년의 홍수전의 태평천국의 난이다. 난징을 10년 점령했고 3,000만 명의 사람들을 지배했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의하기 쉽지 않다.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을 민주국가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에서 모든 구성원이 정치적으로 평등한 것이 민주주의의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했다. 영국의 ‘로버트 밀’은 “인간이 적어도 타인이 멋대로 행사하는 악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가는 합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국가의 권력 남용으로부터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러려면 모든 구성원이 국가의 행위를 결정하는 곳인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대중을 교육할, 계몽할 필요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를 만든 18세기 사상가들이 계몽주의 철학자인 것은 당연하다.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대표를 배출하는 정당을 만들었다. 대표는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보통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대표 후보는 정당이 결정한다. 선출된 대표가 약속을 어기거나 불법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기에, 구성원은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언론, 출판, 결사, 집회 같은 표현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이런 세부 규정은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으로서 헌법과 법률로 명문화된다.
‘스티븐 래비츠키’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두 가지 규범을 제시했다. 첫째, 정치적 반대파를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닌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할 것. 비민주적 독재자의 전형적인 수법이 정적을 헌정 파괴자, 범죄자로 몰아붙이며 사소한 법률 위반을 문제 삼아 몰락시키는 것이다. 둘째, 반대파를 괴롭히기 위해 법률적 특권을 휘두르지 말 것, 법을 어기지 않더라도, 상식이나 통념에 비추어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결국 상식과 통념은 텍스트만큼이나 중요하다. 합법적이라 해도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자주 하는 정치인은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분산되어 서로를 감시한다. 삼권 분립은 독재를 막을 신의 한 수다. 나이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정보를 공개하며, 사법부는 법의 해석으로 권력을 견제한다. 견제하고 자정하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할 때 민주주의는 유지된다. 따라서 독재자가 민주주의를 망가뜨리기 위해 사용하는 흔한 방법이 견제하고 자정하는 장치를 공격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여러 차례 민주주의 위기를 겪었다. 우리가 지키고 복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니까. 라고 필자는 주장한다.
텍스트가 만든 세상. 글쓰기는 노력을 통해 습득되는 기술이다. 문자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필수적인 도구였다. 통치자들은 문자의 힘을 깨달았다. 말은 사라지고 잊지만, 문자로 기록되면 영원히 보존된다. 보존되어 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유대교의 신은 자기 생각을 문자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전한다. 모세의 십계명은 신의 말씀이지만, 신이 직접 석판에 문자로 써서 준 것이다. 이 문자는 신만큼 중요한 것이 되었다. 문자를 쓰고 읽는 서기가 지배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문자 없이는 국가도 없다. 결국 텍스트를 사용하는 문명이 그렇지 못한 문명을 압도했다. 텍스트는 힘이다.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성경의 텍스트에 집착하게 된다. 사실 역사시대란 책의 지배를 받는 시대라 할 수 있다. 함무라비 법전에서 시작하여 성경, 불경, 사서오경, 코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 로마법전 등이 텍스트가 인간 사회를 지배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책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이기도 하다. 텔레비전과 같은 미디어는 책 문화가 만드는 합리적 담론을 파괴한다. 텔레비전 토론에서 관건은 합리적 논증이 아니라 재미다. 재미있는 것이, 옳은 것이다. 정치는 쇼가 되고, 민주주의는 예능이 된다, 이는 ‘데모크라시’가 아니라 ‘미디어크라시’라 할 만하다. 이제 우리는 미디어크라시에서 ‘인포크라시’로 이동 중이다. 사람들이 텔레비전 대신 스마트폰을 본다는 뜻이다. 정보가 넘쳐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른바 소통 흥분이다. 따라서 가짜 뉴스 아니 틀릴 수도 있는 개소리가 더 많이 주목받는다.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가세하여 그럴듯한 가짜 뉴스를 실시간으로 대량 생산한다. 이렇게 민주주의는 안에서부터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 기간 책은 권력이었다. 인쇄술은 책의 민주화를 이루었고, 대량으로 인쇄된 책은 시민혁명과 민주주의를 이끌었다. 민주주의는 텍스트를 읽고 생각하는 계몽된 개인을 요구한다. 정보와 사회가 문자를 멀리하고 책을 읽지 않는 사회라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2026.09.11.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간행
첫댓글 ‘변화의 시대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갑니다.
추석 명절은 잘 보내셨겠지요.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주 건강하게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국가는 합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여기에서 가슴이 먹먹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