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가 피어나는 비양도
필자 ‘고광자’는 제주시 애월읍 출생으로 시인, 아동문학가, 수필가, 시조창 명인이다. 여러 분야에 재주가 있어 절반만 소개했다. 앞에 쓴 ‘김상욱’의 수필을 보면 작가의 생각이 보인다. 고광자의 수필을 읽으면 작가의 삶이 보인다. 한 사람은 자신을 감춘 채 독자에게 다음 생각을 궁금하게 하고, 한 사람은 자신을 펼쳐 보인다. 고향과 보모와 선대, 4.3의 가족사와 서울의 초-중-고등학교 생활 모습, 직장생활에 백록담 등산 이야기, 만학도로 방통대 초등교육학과, 가정학과를 수학, 대학원 석사 과정 남편의 서각과 서예 부모님의 이야기 딸 ‘진아’의 어린 시절과 외손주 ‘하연’이의 얘기까지 이 한 권의 수필로 고광자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필자와는 올여름 광진문화원에서 광진구 전국시조창경연대회에서 심사위원으로 옆자리에서 뵈였고, 그분의 저서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언뜻 보니 수채화라 그림을 그린 카탈로그로 알았으나 수필집이었다. 읽을 책이 많아서 책상에 대기 상태였다. 요즘 틈이 나서 한 번에 간파한 가벼운 책이다. 필자는 마포구 마포 종점 근처 ‘가든’ 호텔 옆 부지에 철 공업 공장을 차린 ‘제일공업사’의 딸로 1955년에 아버지가 서울 기반을 잡자, 제주도 애월읍에서 어머니와 이사하여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다. 그 후 89세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를 뫼시고, 애월읍 고향에서 8년을 봉양하면서 98세에 돌아가신다. 마포에서 중앙여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에게 취직하여, 남편을 맞이한다. 교직의 이철중 씨다.
육이오 참전용사이던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따라 일본에서 철공소에서 14살부터 4년을 배우고 모친의 병환으로 귀국한다. 그 후 해방과 4.3사건, 육이오 전쟁에 참전한 뒤 38살에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다. 허드렛일로 시작하여 일본서 배운 기술로 가업을 키워 아현동 길가에 200평 공장용지를 마련한다. 기숙사도 세우고 전국의 가난한 청소년을 키워서 공장은 발전한다. 직공들은 훗날 경찰서장. 교수. 철공장 사장 등이 많이 배출되었다. 어머니는 200명의 식구을 먹일 메주를 몇 가마니 띄우고 17개 된장 항아리에 담았고, 겨울은 배추김치를 2,000포기 담갔다. 이런 고생에 손이 짝짝 붙은 겨울에 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제주 ‘국립호국원’에 묻히고 어머니도 이장해 합장한다. 만학의 꿈은 방송통신대학이다. 초등교육과를 이수하고 가정학과도 졸업했다. 신촌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정대구 교수의 시 강의를 받고 사제 관계를 맺는다. 정대구 선생, 미수연에서 후학들이 송산도서관 강당에서 미수연을 차려주고 이곳에서 필자는 시조창으로 축하 노래를 했다, 중허리시조 <임 그린>을 불렸단다. 다음 해 정 교수는 89세로 귀천했다.
필자는 마포구 신수동 2층 붉은 벽돌집에 산다. 아래층은 딸네가 위층은 필자가 산다. (늙으면 무릎 때문에 노인이 아래층이 좋은 데) 5살 외손녀 하연이를 발레 학원에 데리고 갔다. 서강대학교 근처 노고산에 등산한, 추억은 그녀의 처녀 시절의 말표 등산화의 추억으로 이어지고 한라산 백록담 등산 7번의 추억을 얘기한다. 그런데 돌배기 손녀가 이 층 계단을 한 발 한 발 기어서 2층 할머니 문 앞까지 올라왔다. 산 정상에 오른 첫 발자국이라 안아주었단다. 필자는 일찍 1986년 노트북을 장만하고 독수리 타법이지만 워드를 친 모양이다. 노트북으로 십수 권의 작품집을 냈고, 수필집과 평론집을 향하여 노트의 메모 글들이 차근차근 쌓여 기다리고 있단다. 남편 이철중의 호는 남파인데 서각과 서예를 한다. 그의 작품 호랑이와 아기천사가 제주 필자의 벽에 있다. (고광자의 글에는 사변보다 기억이 많고, 관념보다 사람이 많다. 부모와 남편, 딸과 손녀가 차례로 등장하면서 한 여성 문인의 생애가 가족사진첩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그의 수필은 깊은 사유의 우물을 파기보다는 살아온 길을 독자와 함께 되짚어가는 글에 가깝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신 얼굴이라 사연을 물으니, “애야, 구엄리 밭에 지성 드려, 침 떡을 성대히 해 놓고 절을 드려야 하겠다. 왜냐하면 네 엄마가 꽃마차를 타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와서 구엄 밭에 다녀갔단다.” 하신다. 아버지의 꿈속 세계는 이미 현실과 맞닿아 있다, 그 안에 늘 어머니가 계셨다. 집을 들여다보고 다시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것이다. “우리 집에 호랑이가 있어서인지 모든 것을 물리칠 힘의 원천이 생긴다.” 하시며 호랑이 서각을 가리키신다. 오늘 아침은 식사로 돼지고기 반찬에 하얀 쌀밥을 지어드렸다. 제주 방언으로 ‘곤밥애 돛고기’다. 세월은 아버지를 조금씩 데려가고 있었지만, 나는 오늘의 순간들을 최대한 오래 붙들고 싶다.
소녀 시절 마포에 혼자 쓰는 공부방이 생겼다. 딸의 방을 연탄아궁이를 넣어 만들어 주셨다. 갓 중학교 1학년 동아리 문학반 소녀였다. 교지에 ‘복슬강아지’ 수필이 처음 실리면서 창작활동을 열심히 하게 될 때다. 찬 바람이 불던 어느 날, 새로 만든 방에 잠을 잤는데 점점 의식을 잃어 가고 있었다. 몸은 축 늘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귀속에 어렴풋이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김칫국을 먹여요. 시원한 공기를 쐐야 해요. 빨리 마당에 눕혀야 해요.” 어른들의 순간적인 판단과 사랑의 손길에 그날 필자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마포문인협회 회장직을 마치고 2013년 4월 신촌 연세병원에 입원했다. 전신 마취를 하는 수술이다. 싱크대 위 수납장 입구에 수저통을 올려놓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사고의 70%가 가정에서 일어난다. 떨어질 물건은 위에 놓지, 말아야 한다. 노래를 부르며 설거지하다, 수저 하나가 떨어지면 엄지손가락을 친 것이 원인인데 뼈에 맞고 신경도 손상이 된 큰 일을 당한 것이다. (그래서 2층에서, 딸이 사는 아래층으로 위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다) 애월읍 곽지리 과물해수욕장 근처 필자의 제주 집이 있다. 필자는 1996년 두 아이를 키우면서 주경야독하여 등단 된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고, 시부모님도 계셨고, 남편과 두 아이가 든든하게 후원 해 주니, 더 바랄 것이 무엇 있을까? 그때부터 온 자연이 내 것이 되었다.
해마다 입춘이 되면 대문에 입춘방을 붙인다. 입춘대길은 단지 복을 비는 글귀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정직하게 살겠다는 약속이며, 서로를 귀히 여기겠다는 다짐이다, 예술 또한 마찬가지다. 화려함보다 진정성이 먼저이고, 성취보다 과정이 귀한 행로이다. 입춘의 바람이 마당을 스치고 지나간다. 나무들도 새 계절을 준비하듯 조용히 몸을 푼다. 나는 다시 대문 앞에 서서 작은 소망을 마음에 새긴다. 건강하기를, 서로 사랑하기를, 그리고 예술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그렇게 또 한 해가 시작된다. 입춘방을 붙이며 필자가 시인의 마음으로 다짐한 글귀다. 한림읍 비양도가 있다. 자연 그대로의 풍광으로 육지 사람이 많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 예술인 부부가 들어온 지 한참 되었다. 비양도에 비양도 오름이 있고, 사면으로 바다가 둘러싸인 쾌적한 동화의 섬이다. 필자는 이곳에 산다.
2017년 필자는 순창에서 국창부의 장원을 하고, 올해 안에 대상 부도 반드시 따고야 말겠다는 야심을 갖는다. 예선 탈락을 두어 번 겪고 나서야, 그믈어가는 겨울밤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년이면 어떻고 후년이면 어떻냐? 필자의 숙부님은 제주에 살며 시초 명창이다. 2010년 을부를 시작으로 2018년 대상부를 순창에서 졸업한다. 51세에 공무원을 명예퇴직하고 고향과 서울 생활을 했다. 제주 비양도에 도착해 일상의 마당을 쓸고 화분에 물을 주는데 바닷가가 소란스럽다. 비양리 주민의 현수막이 붙었다. -제4회 전국 정가 시조창 명인 대상부 경창 대회 고광자 님의 장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18년 7월 1일 비양리 주민 일동-
아연동 언덕배기의 추억으로 딸 ‘진아’가 초등학생 때 드나들던 김포 문방구와 신수동으로 이사 오기 전의 사연이다. 이곳에서 살다 도둑이 들어, 아이가 하교해 보니 집안의 물건이 도둑을 맞았다고 울면서 전화했다. 아이의 애지중지 모은 상자째 학용품이 사라졌다. 그 후 신수동으로 이사를 한 모양이다. 필자의 동시 부문 <연꽃으로 받든 섬나라>로 한국 아동문학회에서 2023년 2월 11일 “제45회 한국 아동문학 작가상”을 수상한다. 동시 부문은 한국불교 아동문학회에서 “제40회 한국불교아동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75세라고 2023년에 썼으니 현재 우리 나이 79세인 모양이다. 필자는 8번의 회장직을 맡았단다. 솔잎시동인회장, 한국공무원문인협회장, 마포문인협회장, 제주한림문학회장, 한국불교아동문학회장, 한국아동문학회부이사장, 대한시조협회송파지회장, 한맥문학가협회장 등이다. 필자는 아직 위를 올려다보며, 나 잘났다고 해 본 적이 없이 여린 마음으로 살았다. 그저 고개 숙어야 하는 벼 이삭이 되길 원했다. 남겨진 하나의 숙제는 그림이란다. 다음 그의 평론, 몇 귀를 적으며 끝낸다. 눌변인 듯 서 있어도 너의 죄를 내 다 안다. 작심삼일 게으른 죄 마음으로 다툰 죄, 인간사 허점투성이, 허한 곳도 내 막으마. 침묵으로 다문 입은. 영원으로 가는 이정표. 두 손으로 배를 감싸 섬을 안고 우주를 감은 달관, 그 기억의 돌이 인터넷 말문을 연다.
(책을 덮으니, 고광자라는 사람이 훤히 보인다. 제주 애월의 소녀에서 서울의 직장인으로, 아내와 어머니로, 다시 부모를 봉양하는 딸로, 시인과 수필가와 시조창 명인으로 살아온 팔십 년 가까운 세월이다. 그의 수필은 생각을 감추고, 독자를 사유의 세계로 끌고 가는 김상욱의 글과는 사뭇 다르다. 김상욱의 책을 덮으면 다음에는 무슨 생각을 들려줄까 궁금하지만, 고광자의 책을 덮으면 오래 알고 지낸 한 사람과 헤어지는 느낌이 든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수필이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은 생각을 남기고, 한 사람은 삶을 남긴다. 『수채화가 피어나는 제주도』에는 고광자가 살아온 삶의 수채화가 여러 겹으로 번져 있었다.)
2026.09.12.
수채화가 피어나는 제주도
고광자 수필집
바다 문학 간행
첫댓글 ‘수채화가 피어나는 제주도’를
공부도 하고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10월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감상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