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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의 밥상 / 최 석
물에 만 밥 맛은 우리가 아니면 귀신도 몰라요 좋은 흘레브 먹을 때도 나는 가만 그 맛이 생각나 밥 잘 짓던 어머니 생각을 해요
고려인 강태수 시인이 쓴 「잊지 못할 맛이랑」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한국인의 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단서이다. 카자흐에 와서 15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도 한국식의 식단을 유지하고 김치와 된장 등의 장류, 젓갈류, 짜고 매운 밑반찬을 선호한다. 아무리 맛있는 현지의 음식일지라도 그것은 특별식이나 간식일 뿐이다.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 최고의 맛이고 최상의 메뉴이다. 오래전 이야기다. 우리 애가 막 밥을 먹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는 아이의 입에 젓갈의 국물을 떠먹이고, 된장국이며, 시래기국, 김치국물 같은 것을 자꾸 먹였다. 나는 어이가 없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여 “왜 아직 어린애에게 짜고 매운 것들을 자꾸 먹이는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릴 적 먹은 음식의 맛은 평생 잊지 않는 법이라”며 그 후에도 그렇게 밥을 먹여 주었다. 찬물에 밥을 말아 장아찌도 얹어 주고, 찌디 짠 황새기 젓을 손을 찢어서 살만 먹이곤 하셨다. 나도 어릴적 할머니가 밥 숟가락 위에 얻어주던 간고등어나 동태살을 생각하며 그냥 나두었다. 우리 애는 아직도 할머니가 먹여주던 그 밥맛과 젓갈의 맛을 기억한다. 아마 평생 최고의 맛으로 가지고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방송에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를 보았다. 그것도 우즈벡키스탄의 고려인을 찾아서 그들의 밥상을 소개하는 방송이었다. 이제 상노인 되어버린 최불암씨가 리포터겸 나레이터로 나와 구수하고 친근하게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날의 방송은 단순히 해외의 한국인 밥상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고려인들의 역사를 식문화와 결부시켜 보는 이의 마음이 더욱 아프게 했다. 더구나 요즘 나는 문화지<고려문화>를 만들며 고려인의 이주사와 문화사의 자료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때여서 우즈벡 고려인들의 말과 음식 하나 하나마다 결부되어 있는 역사성으로 인해 더 짠하게 다가왔다. 자이, 고추자이, 시락장물, 국시, 혜, ….. 처음 쌀농사를 지어 그 수확으로 밥을 지었을 때 그 선조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나 그들이나 그 감동을 알 수는 없을 것이다. 방송에 등장하는 <쁘리옷쩰>, <극성> 꼴호즈는 당대에 최고 최대의 협업농장이었다. 그때 주역이었던 김병화, 그 손자가 나와 매우 서툰 고려말로 조상들을 회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비감한 심정을 느꼈다. 김병화는 팔뚝보다 굵은 새(갈대)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벼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첫 수확한 벼로 조상들에게 눈물섞인 밥상을 차려 올렸을 것이다. 그렇게 고려인들의 식문화는 시작했을 터이고 없는 재료로 나마 한국식 식단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고려인들의 식단과 음식들은 변형되었고 현실이 반영된 새로운 고려인 음식문화가 생겨났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반성과 사죄의 마음이 들고 있다. 친했던 고려인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갔는데 그 때 별로 먹지 못했다. 까칠한 입맛과 괜한 선입관으로 통 먹을 수가 없었다. 무맛인 증편만 몇 개 먹었을 뿐이었다. “먹기요. 맛있소.”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게 최고의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러나 시락장물도 돼지고기 냄새 때문에 입에 맞지 않았고 자이(된장)도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어디 그뿐이랴 혜, 혜는 한국식으로 부르면 회인데 시건방진 위생관념 때문에 결국 먹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혜는 잉어살을 네모나게 잘라서 무와 갖은 양념을 섞어 버무린 뒤 숙성을 한 것이다. 이 음식은 한국에서도 강릉 어딘가에 모여 사는 함경도 출신 실향민들이 즐겨 만드는 가자미식혜와 비슷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원동의 고려인들의 출신 성분 중 함경도 사람이 압도적이었던 만큼 고향의 가자미 식혜를 그리며 만든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에게는 찾아온 손에게 올리는 최상의 상차림이었는데…… 지금도 그 고려인을 만나고 있지만 아직 그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이주 초기 중앙아시아의 사람들은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물고기는 물론 나물이나 국시(국수) 등도 몰랐다. 고려인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음식문화를 전파했다. 바자르(재래식시장)에 가면 김치는 물론 된장 고추장 두부 콩나물 숙주나물 한국식배추, 당근채무침, 등을 파는 것은 찬가게의 기본이다. 구매자가 고려인만이 아니라 현지 토착민들과 러시아인들도 주요 고객이다. 이미 한국의 식문화가 중앙아 전체에 뿌리내려졌다. 앞에 시를 인용한 강태수시인은 이주초기 1938년도에 시 한편을 잘못 써서 21년간 북극의 아르무르트 수용소에서 격리된 생활을 했다. 1959년도에 비로소 고려인들이 사는 크즐오르다에 돌아오게 된다. 그가 수용소에서 어떤 음식을 먹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 속에서도 고향의 밥맛을 잃어버리지 못했다. 밥 잘 짓는 어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했다. 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모국어를 잊어 버리는 고려인들의 현재를 목격하면서 아직도 자이와 시락장물과 국시의 맛을 잊지 못하는 그들……. 음식문화의 질긴 뿌리, 식문화가 같으면 같은 민족이 되는 것일까? 말을 잊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한국인의 밥상”을 보고 난 뒤 영 밥맛이 나질 않는다. 카자흐 뉴스에서 퍼온 글 입니다.ㅣ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