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축도 사용에 대한 문제 제기
개신교 예배순서의 끝 부분에는 목사가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복내려 주심을 선언하는 강복선언(降福宣言-축도)이라는 순서가 있다. 이 축도 행위에 대하여 대한 예수교 장로회(통합)의 일부에서 축도가 목사만의 고유한 사역인지, 현재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축원하옵나이다"라는용어가 성경의 내용과 비교하여 올바른 사용인지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에 총회는 축도 연구위원회를 임명하고 이 문제에 대하여 연구보고토록 한바 있다. 이 위원회는 1년여의 연구 끝에 그 보고서를 제출하였다. 여기서 축도는 목사의 고유한 사역으로 인정하며, 목사에 한하여 하도록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축도 용어에 대해서는 의견이 대립하여 일치를 이루지 못하였다.
2) 축도 용어에 대한 논의
A. "축원하옵나이다"혹은 "빕니다"의 견해
축도의 끝 부분이 "축원하옵나이다" 혹은 "빕니다"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가. 성경적 측면에서
1) 현재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축도는 고후 13:13의 말씀을 근거로 하였다고는 하나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후속사이며 문안의 말씀이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은 바울 사도가 보낸 서신마다 기록되었으며, 다른 사도들의 편지에서도 볼 수 있는 내용이다.
2) "있을지어다"라는 말은 오직 예수님 자신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된 목사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실수이므로 수정되어야 한다.
3) 축도는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하던 기도와 축복이 아니며 천주교의 신부나 교황이 비는 강복선언과도 다르다. 축도란 주님의 양을 치는 주님의 종된 목사가 주님의 양을 위하여 드리는 기도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주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로 수정되어야 한다.
나. 국문학적 측면에서
1) 축도란 어휘는 축복기도를 줄인 단어이며, 축복기도의 의미는 기독교적으로 예배가 끝날 무렵 목사가 성부, 성자, 성령에게 모든 신자의 복을 구하여 비는 기도이다.
2) "지어다"가 성서적이라고 하나 "지어다"라는 말은 우리말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다. 새번역이나 공동번역에서는 "빕니다"로 번역되어 있다.
3) "함께 있을지어다"의 끝말이 국문학적으로 타당하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옛날 왕이 신하와 백성에게 조서를 내릴 때 사용하는 계층적 어용어이기에 위화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 "지어다"의 뜻이 무엇이 되기를 바란다와 축원의 뜻이 비슷하고 현대인들의 문헌과 대화속에서 고문화되어져 가는 것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표현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다. 현실적 측면에서
현재의 "있을지어다"로 축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근대적이요, 내면에서는 권위의식이 가득찬 발상이다. 현 사회에서는 대통령에게도 "각하"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계층간의 간격을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 교회가 이 간격을 더 조성하여 목사와 신도들간의 위화감을 조장하는 발상을 하는 것은 신도들에게 "지어다"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할뿐이다.
1) 고후13:13본문대로만 목사가 주문 외우듯 한다면 축복기도의 참 의미가 없어진다. 여기서 분별하여야 할 것은 고후 13:13은 어디까지나 축복문이다. 그리고 이 축도문을 목사만 전용한다면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 같이 본문도 목사 축도 전용어인 까닭에 신도들은 성경에서 빼놓고 읽어야 한다는 이론이나 또는 본문을 이용하여 신도 누구나 축복기도를 하여야 한다는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
2) 현실적으로 제일 심각한 것은 일부 목사(특히 젊은층)의 권위의식의 문제이다. 목사의 권위는 제도적인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진정 하나님의 소명을 가진 자로서 진정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희생과 봉사가운데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권위를 소유할 때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된다. 축도를 "축원하옵나이다" 또는 "빕니다"로 한다고 해서 목사의 권위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100년의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에 이미 토착된 목사의 축도의 말미어는 국문학적으로 손색이 없고 이미 공동번역이나 새 번역에도 사용된 "빕니다"로 하여야 한다. "빕니다"는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뜻이라고 국문학적으로 해석된 단어이다. 또한 청소년 그리고 앞으로의 세대를 위해서 "빕니다"로 함이 가하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근거 위에 축도용어의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서는 공동번역대로 "빕니다." 또는 현재 많이 사용하고 있는 "축원하옵나이다"로 축도의 끝말을 개정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B. 우리의 언어구조를 지지하는 견해
이에 대하여 다른 입장은 한국교회 축도의 어미가 가지고있는 문제점에 대하여는 공감을 표하면서도 그 개정은 성경에서 행하여진 대로하되 그 표현은 우리의 언어구조를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이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가. 성경적 측면에서
1)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예전에 대한 제반 법규를 준 후에 축도의 사역은 제사장 아론과 그 계열에게만 주었으며, 그 내용은 민수기 6:22에 규정되어 있다. 이 축도는 루터나 칼빈과 같은 개혁가들이 가장 활발이 사용하였으며 , 지금도 화란의 개혁교회를 비롯하여 많은 유럽의 교회들이 사용하고 있다.
2) 신약에서는 어원적으로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를 가진 어휘를 사용하면서 단순한 개인의 바램이나 기도가 아닌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는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다. 그 실례로 어린이에게 손을 올려 복을 주신 일(막10:16)과 승천하시기전에 손을 들어 제자들에게 축복을 하셨던 일(눅24:50)을 들 수 있다.
3) 사도들에게 이르러서는 축도의 내용을 일반기도와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구체화하여 사용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은 고후 13:14, 롬15:5-6, 엡6:23-24, 살전5:23, 살후3:16,18, 히13:20-21 등이다.
4) 성서적으로 축도는 기도와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축도는 자신이 원하는 사연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었고,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역사하심이" 있어질 것을 알리는 의미로 사도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나. 역사적 측면에서
1) 교회의 역사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본 축도는 사도적 전승을 받은 교회의 감독과 교부들이 사용하였으며, 이는 사도적 전통으로 예배의 결론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2) 363년의 라오디게아 회의에서는 이단들의 축도행위를 엄격히 규제하면서 예배순서로서의 축도를 존엄한 사건으로 규정하였으며, 후기의 신학자들은 축도를 하나님이 주시는 소중한 은사로 이해하였다.
3) 축도의 자세는 역사적으로 두 형태를 들 수 있는데 하나는 두 손을 드는 것과 다른 하나는 십자가를 긋는 것이었다.
4) 중세의 교회를 비롯하여 현재의 구교에서는 축도를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사제의 고유한 사역으로 이해하고 강복선언이라 칭하면서 예배에서 실천하고 있다.
5) 종교개혁자들은 예전의 상징적인 행위보다 말씀중심의 교회를 강조하였기에 축도는 더욱 소중한 부분으로 간주되었고, 그 정신은 현대의 세계 개혁교회에서 계승되어 목사의 고유한 사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 세계 교회의 실태
세계 개혁교회연맹에 가입되어 있는 교회가운데 12개국 16개 교단에 공한을 보내어 그들의 교회가 사용하는 축도의 형태를 질의한 결과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예배의 마지막 순서로 사용하는 축도는 어느 특정한 나라의 고유한 언어나 문화적인 성격에 의하여 그 내용을 개정함이 없이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2) 유럽지역의 교회에서는 아론의 축도(민6:22)를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의 개혁교회들은 바울의 축도(고후13:13)를 대체적으로 사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성경에 나타난 축도의 여러 형태를 사용하고 있다.
3) 회신을 보내온 교회들은 축도(Benediction 혹은 Blessing)를 일반기도(Prayer)와 분류하여 사용하고 있다.
4) 축도는 예배 집례자인 목사에 의하여 끝 부분에서 사용되어지고 있으며, 평신도가 예배를 인도하고 축도의 순서에 임하는 특수한 경우는 끝맺음을 "우리와 함께 있어지이다"(be with us) 로 사용하는 사례가 있다.
라. 국문학적 측면에서
1) 제 64회 총회에서 결의한 성경 번역대로의 "있을지어다"의 표현은 현대어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의미에 있어서도 높은 자가 낮은 자에게 내려 주는 어감 때문에 축도를 받는 현대의 회중들로부터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2) 그러나 일부에서 주장하여 사용하는 "축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등은 완전한 기도의 형태로서 축도의 내용과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3) 문법적으로 완전한 문장은 언제나 주어를 수반해야만 한다. 축도의 주어는 성경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하심"이다. 이 주격의 행위를 전할 수 있는 술어는 "함께 하여지이다", "함께 있을 지어다" 등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주장이다. 어떤 경우도 축도를 하는 사람이 주격으로 등장되어서는 안 된다. 만일 축도를 행하는 사람이 주어가 되는 경우에는 그것은 단순한 기도가 되어 비성서적이게 되며 이는 세계교회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가 될 것이다.
3) 제언
위의 두 입장을 고찰해 볼 때 필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제안하고자 한다.
1) 축도는 성서적으로 일반기도와는 완전히 성격을 달리하는 예전행위이기 때문에 먼저 축도를 기도의 개념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2) 축도는 예배를 집례하는 목사의 고유한 사역으로서, 목사의 권위를 위한 도구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예전적인 순서로서 가급적 성경에 나타난 대로해야 하며 수식어를 첨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 축도의 주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어야 하기 때문에 축도하는 사람을 주어로 하는 "축원하옵나이다" 또는 "빕니다"의 종결어는 타당하지 아니하다.
4) 축도의 내용 중 "너희 무리들에게"는 현대어로서는 적절치 않으므로 "모든 성도들에게" 또는 "00 교회 성도들에게"라고 함이 타당할 것이다.
5) 축도의 끝말은 현재의 "있을지어다"가 거부감을 준다는 반응을 고려하여 "함께 하여지이다" 또는 "함께 있어지이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6) 한글 사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사전을 찾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지어다를 찾을 겨우는 "--ㄹ 지어다' 로 찾으면 그 뜻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었다.
'마땅히 하여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맺음 끝. 예스런 정중한 표현에 쓰인다고 설명하고 있다
첫댓글 귀한 자료 스크랩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