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입니다
태생이 꼴짝 시골 출신 무지랭이 촌뜨 기랍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요
우선 눈을 비벼가며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어제 저녁에 미리 썰어 놓은
짚을 소쿠리에 퍼 담고 서는
가마솥에다가 와락 쏟아 붓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몇 가지로 양념치고 물을 잔뜩 붓습니다
솥 투껑을 닫습니다
아궁이 안에 불을 쑤셔 넣습 니다
무슨 소리냐구요
말 그대로 입니다
쇠죽을 끓여서 소(우님)에게 드십시요 하고 갖다 바쳐야 합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쇠죽부터
끓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세수하고 밥을 먹어야죠
그리고 나서야 머나먼 곳 학교로 등교 길에 오릅니다
먼지가 폴폴나는
비포장도로 오리 길을
가고 와야합니다
학교 생활은 죄다 잘 아실테니 생략하옵고 집에 오면 얼릉 또 다시 저는 바빠집니다
공부요 누가 공부를 해요
🎒 휘익 던집니다
지금부터는 소꼴을 베러 가야 합니다
상전이 소랍니다
우님이시죠
그러니까 우님이시니까
우님께서 굶으시면 큰 일 납니다
들판으로 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리어카에 풀을 벤다음 실어서 집에 오면요
우님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말에는 산으로 우님을 뫼시고
나들이를 가야 합니다
나들이
우님 바람을
쐬러 갑니다
당연지사 모시고 같이 가 드려 얍죠
그때 그시절에는 공부는 뒷전이었어요
상전 소님 우님 우리님의 뒷바라지로
아까운 청춘을 깡그리 바쳐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초,중,고까지
세월은 지나갔습니다
저는요 농부의 아들이요 시골촌놈이었더랬습니다
상전으로 떠 받들던 여러 우님들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가셨습니다
하인만 덩그러니 오늘까지 이렇게 세상에 살아 남아서
글을 써 봅니다
게다가 과수원(사과밭)
일이 많았어요 아주아주 많았어요
순수농업이었지요 손을 써야지 제대로 일이 되었더랬습니다
그때는 그랬더랍니다
지금은 기계화 대형화로
농사를 짖지만요
그시절은 주로 손에서 시작해서
손에서 끝이 났습니다
몸으로 떼워야 했던 만큼
공부는 뒷전이었지요
농삿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청춘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아무것도 남은 것은 없었더랬습니다
지금이야 누가요! 누가! 우님!을
상전으로 떠 받드시나요
책과 씨름하기도 바쁘실 귀하디 고귀하신 청춘님들께옵소서
우님을 아시기나 할까요
오늘날에는 아시는지 모르시는지요
우님은 어드메로 가시옵고는 잔뜩 살만 찌워 놓고 살쾌기로 팔아야하는 축산농가만 머리를 싸매고 계실 뿐이지요
어디 농삿 일을 우님이 대신 하신답디까?
들로 산으로
누가 그런 일 하신답디까?
학교를 가셔야 하옵고요 학원에도 가셔야 하시오니 하루가 바쁘시겠사와요
우리는 그때 그시절 유치원부터 면제 특혜를 받았읍죠
군 입대 전 도시로 도망을 갔어요
일에 파묻혀서 피곤하고 지치고 힘에 부처서 아버지 몰래 도시로 달아났어요
회사에서는 소처럼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그 시간만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직책은 자재관리부 현장자재관리였으며
사무실 책상위에서 이만하고도 오천여 가지의 품목들이 로트 별로 구분이 된 체
그날 그날의 품목들은 일일이 제 기억속에서부터 낱낱이 풀어 헤처 놓아야만 했습니다
죽을 판 살 판으로 죽자 살자 외우고 또 외웠지요
그때의 저의 기억력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어떻게하여서라도 드높은 사회의 장벽과 맨몸으로 마주서야 했으니까요
비록 만드는 완성품은 모두 달랐지만
제가 하는 일은 거기서 거기 였습니다
전역을 하고 나서부터는
제가 다녔던 곳은 대기업이었죠
거대한 배를 만들던 그곳 조선소
이름하야 현대 중공업
신혼 시절은 수년 동안 그렇게나 바쁘게 보냈어요
직장 상사의 불미스런일에 흽싸이고 최 말단인 저까지 그당시에 여차 저차 저차 여차해서 집단퇴사를 했습니다
당시 그런 저런 불미스런일에 휩싸여있었더랍니다
그렇고 그런 저렇고 저런
구구가 절절하기만 한 사연이 울산을 떠니게 된 동기였어요
직장상사의 욕심, 사리사욕은
일파 만파로 퍼졌고 *말단이라서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소장님께서 극구 퇴사를 만류하셨는데
젊은 혈기, 바보같은 기백, 철없는 양심,
스스로 그날부로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아깝지만 지금 생각을 해도 어리석었습니다
막상 대구에 올라오고보니 우선당장이 문제였습니다
마땅한 일자리는 없었습니다
이 공장 저 공장을 두루두루 섭렵하고 하다 못해 장사까지도 해봤어요
버스 택시 기사도 오랫 동안 했어요
개인택시를 목전에 두고
운전대는 졸업을 했습니다
지금은 흐야무야 삶의 흔적이 기억에는 남은 것이 딱히 별다른 게 없어 보입니다
인생 전공은 바뀠습니다
지금은 글을 쓰고 있어요
뇌는 괴물 청소기 진공 청소기입니다
인생 먼지를 훌훌 빨아들이고 있지요
요즘 들어서는 고독한 지야그를
굴비처럼 줄 줄 엮어봅니다
삶의 흔적은 넋두리 죄판을 깔았더랬습니다
고독 하냐구요
아뇨 아뇨 절대 아니고요
육신은 아주 그냥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어느새 백수가 되었 답니다
매일 매일이 휴일이라서 딱히 쉬는 날은 따로 없습니다
다만 씨린 옆구리라서 바람이 빠져 허전합니다
배만 뽈록하고 톡 튀어나왔습니다
꾸역꾸역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 신통방통합니다
그럭저럭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흙 돌담도 아니고 그벽이 드높아서 넘어 가지는 못하겠고요
쳐다만 보는 능구렁이입죠
세월은 가만히 숨죽이고 있어도
훌쩍하고 번개처럼 지나버려서 어느 듯 칠순에게 초대장을 쓰고 있고요
언젠까지나 기억이 저를 잡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가물가물 합니다
스스로 집을 잃고 헤메지 않으면 다행인 그날까지는 어떻게 하고서라도 살아봐야겠죠
이왕지사 한번 왔으니 알차게 즐기면서 보내야겠는데
우선은 쉬엄쉬엄 쉬면서
앞날을 내다보는 그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네요
끝까지 읽어 주셨으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송장경식 기억을 꼭 해주세요
첫댓글 글을쓰는 사람이 소싯적 야그를 한번 써봤습니다 부끄럽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