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비
“이번 아파트 공용 전기설비 점검비용은 42만원을 전기안전공사에 지불하였습니다” 전기과장은 늘 해오던 대로 판에 박힌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다. “왜 전기안전공사에 돈을 주는 겁니까? 그게 사실이라면 영수증은 받았겠네요?” 그러자 갑자기 관리소장과 주변의 서넛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허위로 지출한 금액이야 크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그냥 말없이 넘어갔던 일이 정곡을 찔린 터라 그들은 허둥대고 있었던 것이다. 자기들끼리 투덜대며 나누는 말이 나에게까지 들려오기도 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야?’
회의실은 아파트단지의 한복판에 자리한 노인정 1층이었다. 20여 명의 입주자대표들이 널찍하게 둘러앉고 관리사무소 관계자들 서너 명은 차트와 칠판 쪽에 붙어서 있었다. 88서울올림픽 당시인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아파트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탓인지 입주자들은 동 대표로 나서기를 꺼려하고 있었다. 그래서 동마다 순번을 정하여 1년씩 입주자회의에 참석토록 하면서 불참할 경우엔 벌금까지 물린다고 했다. 마흔 중반이던 나는 당시 직장의 업무 외에도 시에서 위촉한 민방위강사와 공무원교육원의 통합공과금 담당자 교육까지 맡아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깟 벌금이야 몇 푼 되지 않지만 거주하는 지역공동체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원성을 듣지 않기 위해 회의에 참석했던 첫날에 벌어진 일이다. 그 사건으로 난 그날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의 ‘이사’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전기담당 이사였다. 아파트는 수전용 변압기를 설치한 ‘자가용수용가’였다. 말대로 전력회사의 변압기에서 공급받는 ‘일반용수용가’와는 구분된다. 그래서 전기설비를 관리하는 모든 업무를 아파트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 전기안전공사와는 전혀 무관한 독립된 수용가이다. 여기서 당시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김창식 소장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소장은 월남전에 참전했던 육군대령 출신이란 소문이 있지만 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전기담당 이사를 맡아 자주 회의에 참석하면서 김 소장의 백 그라운드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노인정을 대표하기도 하는 오륙 명의 전직 교장들은 그를 보호하는 일에는 기를 쓰고 나섰다. 회의 때 잘못된 업무를 들추어 지적이라도 할라치면 그들이 나서서 가로막는다. “야! 이 사람들아, 좀 조용히 해라.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알고 보니 노인정 아래층이 바로 관리사무소라 그들은 매일 관리실 한쪽 구석에 와서 짜장면 한 그릇씩을 그에게서 대접받는 은혜를 이렇게 갚고 있었던 것이다.
꼬리가 길어야 밟힌다는데 김 소장은 그가 스스로 무덤을 판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길게 갈 것도 없었다. 그 백 그라운드가 영원할 거라고 믿고 판을 키운 것 같았다. 그의 탐욕은 아파트 입주 후부터 지금까지 모아온 수선충당금을 몽땅 털어 착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몇 년 지나지 않은 멀쩡한 세대 배관을 전부 바꾸게 된다. 여기엔 아마도 설비담당 이사의 묵인도 없지 않았을 터이다. 중간 중간 삼사억씩 돈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는 시공업체 종업원들에게 상여금을 지불해야 한다면서 김 소장이 느닷없이 아파트 앞에 위치한 농협의 지점장을 달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알고 보니 지점장은 의령이 고향인 김 소장의 고향 후배였고 수선충당금을 딸딸 긁어서 쓴 때문에 당장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30년 전의 15억이란 돈은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가치를 지녔었다. 그의 음흉한 전략은 8부 능선을 무사히 넘는 듯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추석 무렵이면 여름도 지났는데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는지 몇 날을 밤낮으로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배관공사를 하기 위해 쌓아둔 자재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건설한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철거한 파이프는 비를 맞아도 새것처럼 멀쩡한데 새로 들여온 신품자재는 고철처럼 심하게 부식되면서 녹이 슬었다.
결국 바꾸지 않아도 될 배관을 뜯어낸 자리에 불량품을 설치한 걸 하늘은 비를 쏟아 부어 주민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눈앞에 펼쳐진 놀라운 광경을 접한 1536세대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사건은 이렇게 터졌고 낌새를 미리 알고 줄행랑을 친 김 소장은 어느새 남천동의 대단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옮겨가 있었다. 우린 이처럼 민첩한 그의 행동에 혀를 내두르며 한편으론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가 교도소로 옮긴 소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이 알려주었다. 남천동에서도 거액의 횡령죄에다 우리 아파트 취업 때처럼 공문서 위조죄가 추가되었던 것이다.
1930년생이 끝 글자에다 꼬리를 만들어 붙여 1936년으로 변조한 것이었다. 고아원에서만 자랐다는 제주 출신 전기과장은 당시 결재서류를 들고 나의 직장까지 찾아오곤 했었다. 초중고를 검정으로 끝냈다는 그를 아파트 관리실이 공중분해 되었을 때 산업체로 연결해준 일이 떠오른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아파트는 입주 8년을 막 넘기고 있다. 엉터리 짓거리하는 걸 못 보아내면서 꼬장꼬장한 성질이 밖으로 드러난 때문인지 주민들은 날 아파트 입주자 대표로 추천했고 결국 대표자회의의 감사를 맡게 되었다. 회의체의 멤버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나이 든 내가 마뜩치 않았을 터이다.
아파트 상가건물 내에 마련된 어린이집 운영자를 입찰에 붙였을 때였다. 6개 어린이집에서 참가했고 응찰 서류를 놓고 입찰 참가자들의 경력과 사업구상을 들은 후 우린 점수를 매겼다. 그래서 정해진 일등을 낙찰자로 정하면 되는 일을 회장은 무슨 꿍꿍이수작인지 순위만 정하고 최종 낙찰은 서면으로 통보한다면서 끝냈다. 당장 무슨 일을 이렇게 처리하느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말하자 싶어 참았다. 결국 회장의 선배로 그와 호형호제하는 8동 대표의 아내가 낙찰자로 선정되었다. 1차 심사성적은 꼴찌였고 어린이집을 운영한 경험이 전혀 없는 평범한 50대 초반의 주부였다.
염려한 대로 어린이집은 3개월을 못 버티고 문을 닫았다. 어린이집을 체험한 경력이 없다보니 제대로 운영을 할 줄 몰라 돈을 쏟아 붓고만 있었던 것이다. 전세와 월세를 절반으로 깎아달라는 말을 그의 남편인 동 대표가 회의에서 꺼냈다가 나에게 호된 질책을 받았다. 난 ‘계약은 폼으로 했느냐? 계약기간 안에는 계약대로 하면 된다’면서 그의 말을 일축했고 그는 결국 큰 손해를 보고나서 아파트를 떠나야 했다. 물은 고이면 썩게 마련이다. 특히 아파트의 수선충당금이 많이 쌓이면 물보다 더 위험하다는 걸 난 경험으로 알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도려내야 할 환부는 비단 아파트 관리비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신문이 아파트 관리비 비리를 시리즈로 쏟아내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심각성은 충분히 알 수가 있다. 어느 한 직장인 젊은이는 이러한 아파트 관리비 비리를 조목조목 파헤쳐 책을 찍어 서점 진열대에 올리기도 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을 손가락질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우리와 같이 이렇게 도덕적으로 썩진 않았다. 도덕이 무너진 나라 대한민국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엄격한 도덕률을 가르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축아파트에 꿀이라도 발렸는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만 찾아다니면서 입주자 대표 자리를 노리는 자들도 있다. 언제 우리는 선진화된 법질서 속에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까.
첫댓글 읽고보니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됐네요~우리는 아파트 관리비에는 관심도없이 부과되는대로 냈는데~~
앞으로는 관심을 갖고 봐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