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장 숨은 '이바구'… 新전설의 고향] 김해 무척산 천지
부산일보 기사 입력일 : 2014-05-19
정태백 기자
수로왕 영험 산 정상 호수 관광자원으로
"199년 어느날, 하늘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고 사방이 깜깜한 어둠을 띠었다. 그리고 뒤이어 천지를 뒤덮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락국 시조 수로왕이 158수(壽) 끝에 세상을 떠난 날이다. 국사가 천제를 올리고 열흘 만에 묏자리를 찾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수많은 군사들이 모여 묏자리를 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은 왕의 무덤에서 큰 물길이 솟구쳤다. 물길을 잡기 위한 별별 수단도 모두 다 허사였다.
수로왕 묘지에 물 없애려 파
거짓말처럼 묏자리 물길 끊겨
주변 통천사·모은암·연리지
스토리텔링화 움직임
이때 허 황후와 함께 아유타국에서 사신으로 온 신보(申輔)가 '고을 가운데 가장 높은 산에 못을 파면 묏자리에 물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고 말하니, 군사들이 무척산 꼭대기에서 못을 팠다.
거짓말처럼 그의 말대로 물길이 끊기고 장례는 무사히 치러졌다. 대신 묏자리에 나오던 그 물줄기는 무척산 정상에 파 놓은 못에 가득했다."
-김해지리지 중
경남 김해시 생림면과 상동면의 경계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무척산이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낙동강, 남쪽은 김해시를 향해 길게 뻗었지만 주변의 산들과 이어지지 않고 독립돼 있다. 해발 703m의 이 무척산(無隻山)은 '한 쌍이 될 짝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른 산과의 비교를 허락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밥상을 차려놓은 듯하다' 하여 '식산(食山)' 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 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표현이기도하다.
이 산 꼭대기에 이르면 둘레가 대략 300여m에 이르는 꽤 널찍한 호수가 있다. 이름하여 무척산 천지다. 백두산 천지나 백록담처럼 분화구 호수를 제외하고는 산 정상부에 있는 국내 유일의 호수다. 수로왕의 영험이 담겨진 호수, 그러기에 당시에는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수로왕 사후 천지에 얽힌 설화가 무척산 곳곳에 배어있다. 천지 물에 몸을 담그면 병이 낫는다거나 아예 목숨을 잃는다는 속세의 얘기가 끊이지 않는다. 천지를 지키면서 수로왕의 넋을 기리고 하늘로 넘나드는 길목 역할을 한다는 차원에서 통천사라는 사찰도 세워졌다.
천지에 향하는 무척산 입구에는 가락국 2대 거등왕이 어머니인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을 그리워하며 그 은혜를 기리기 위해 창건된 모은암이 자리한다. 거등왕의 정성이 얼마나 갸륵했는지 암자 주변 바위들이 감복해 높이 치솟아 병풍처럼 모은암을 감싼채 2천 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모은암과 천지의 중간지점에는 뿌리가 다른 두 소나무의 줄기가 붙은 '연리지'라는 부부 소나무가 자리한다. 천지못을 만들 때 참여한 금슬 좋은 부부가 사고로 숨진 뒤 그 넋이 소나무에 깃들었다는 전설이다. 나무를 잡고 기도를 하면 부부나 연인간에 금슬이 더욱 좋아진다고 전해지지만 "혹여나 좋지 않은 금슬이 들킬까 봐" 상당수 부부들은 이 소나무 곁을 피하기도 한단다.
천지와 모은암 외에 무척산에 얽힌 수많은 설화들이 오랜세월 마냥 묻혀 있는 부분은 아쉽다. 다행인 것은 최근들어 일부 향토사학자들이 천지와 무척산에 얽힌 이야기를 스토리텔링화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김해시문화원 관계자는 "천지와 관련한 설화가 곳곳에 스며있는 무척산은 영산"이라며 "가락국과 관련한 대형 사업을 많이 벌일 뿐, 이런 자료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등 다양한 관광 자원화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정태백 기자 jeong12@
무척산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