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충만을 어떻게 받을까
사도행전 4: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찬송가 183장(빈 들에 마른 풀같이)
오늘 아침에는 성령 충만을 어떻게 받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4장 31절을 보면, 기도할 때 성령이 충만히 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성령님은 기도할 때 특별히 성도들이 함께 기도할 때에 그 자리에 회중 전체에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07년에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사경회로 모여 평양과 평안도 지역의 성도들이 며칠을 모여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임하여 그 모인 회중 전체에 강력하게 임하여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령 충만을 받기를 간절히 바라고 함께 모여 기도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말씀을 듣고 묵상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이들 중에 엠마오에 살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글로바라고 누가복음 24장 1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로바 외에 다른 사람은 아마도 그의 아내가 아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요한복음 19:25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에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곁을 지키고 장례를 치른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가 나옵니다. 그래서 글로바와 그의 아내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것을 보고 삼일 장례를 치르고 낙심하여 돌아가는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면서 구약 성경 곧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씀을 풀어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부활하여 영광 중에 들어갈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말씀을 풀어 가르칠 때에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되었노라고 그 두 사람이 서로 말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은 성경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뜨거워지는 실례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일러주신 분이시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친히 일러주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할 때에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묵상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요나단 에드워드는 18세기 미국에서 부흥을 이끌었던 유명한 분이시며 심오한 신앙 서적을 저술한 학자이며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종종 숲속을 거닐면서 하나님을 묵상하곤 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영광에 대하여 사색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 종종 우리 구주 예수님의 탁월한 영광이 그에게 드러나곤 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 온유하심과 영광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되신 예수님의 충만하고 순수한 사랑과 겸손하심을 깊이 자각하였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영광의 임재를 경험할 때 그는 눈물을 홍수처럼 쏟으면서 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그는 땅 바닥에 엎드려서 거룩하고 순수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만을 사랑하고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살며 그리스도를 섬기며 따르고 싶어지는 감정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성령의 성결케 하심을 느끼며 자기의 영혼을 성령께서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우는 것을 경험하곤 했습니다. 동시에 자기 안에 있는 죄악성을 깊이 알게 되고 자신이야말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악한 자요 지옥에서도 가장 낮은 밑바닥에 떨어져야 할 것을 느끼곤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죄들은 아주 작은 것이고 자기야말로 무한히 무한히 죄가 많이 쌓여 있어서 지옥의 무저갱보다 더 깊고 깊은 것으로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없이 겸손해지고 겸손해져서 자기는 티끌 속에 들어가 앉아야 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갈망하고 철저히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만 의존하게 되곤 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요나단 에드워드의 자기 고백은 성령의 충만함의 증거입니다. 그가 종종 이렇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성령께서 그에게 자신을 깊이 계시하심으로써 나타나는 지극히 큰 영혼의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지내는데, 우리의 마음의 방향을 돌려 영원하신 하나님, 완전한 빛이신 하나님, 지극히 광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 만물의 주권자 되신 하나님, 그의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사 대속의 피를 흘리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자기 백성들에게 거룩한 성령을 보내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도와주시는 성령 하나님을 깊이 깊이 사색하기를 힘씁시다. 그리할 때에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해져서 요나단 에드워드가 경험하였던 그 지극히 복스러운 심령의 은혜를 조금씩 조금씩 더 깊이 충만히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함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성령 충만함을 받습니다. 구약 시대에 베냐민 지파 기스의 아들 사울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가 기름부음을 받고 가다가 선지자 무리를 만났을 때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또한 사울을 이어 이스라엘의 목자로 세워지도록 부름받은 유다 지파 이새의 막내 아들 다윗에게 선지자 사무엘이 기름병을 취하여 기름을 부었을 때에 다윗이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 가운데 부르심을 받아 구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주권적으로 그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영광과 나라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의 영광과 그의 일을 위하여 성령이 충만하여집니다. 구약 시대 성막을 짓기 위하여 성령께서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같은 사람에게 임하여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재능을 주시어 그와 같은 기물을 만드는 일을 능하게 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사울이나 다윗이나 오홀리압과 브살렐과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섬기는 적절한 봉사를 위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의 은혜를 주시곤 합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일을 위하여 택한 자들을 주권적으로 부르사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심받은 직무에서 최선을 다하여 봉사의 일을 합시다. 그리할 때에 그 일에 합당한 성령의 충만함과 각종 은사의 기름부음을 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안수할 때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빌립 집사가 세운 사마리아 교회 공동체에 방문했을 때에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진실한 신앙 생활을 하지만 그들 중에 성령을 받은 일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에 사도들이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안수하매 그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었고 성령께서도 그들 안에 내주하시지만 성령이 충만함을 받아서 예언하거나 방언하거나 능력 받은 일이 없었다가 사도의 안수를 통하여 은사의 나타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미 회개한 상태였지만 다메섹 성의 경건한 성도 아나니아가 그를 찾아와서 안수할 때에 그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도시에 가서 성도들을 만나 가르칠 때에 그들이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함을 확인하자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 세례를 준 후에 안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도행전 19:6 말씀에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쓴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 1: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 일 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의 안수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성령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므로 하나님께 정욕으로 혹은 자기 과시용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간구하는 것이라면 믿음으로 구한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그대로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 충만의 은혜는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회개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도 성령을 받았으나 밧세바 일로 범죄하였을 때 성령께서 그 속에서 근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과의 친밀한 교제는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다윗이 자기 죄를 깊이 자각한 후에 뜨겁게 회개한 후에 구하기를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편 51:11)
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하며 간절히 성령의 긍휼을 구함으로써 다시금 성령 충만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처럼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의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나라 1905년의 원산부흥회도 의료선교사로 오시 로버트 하디 선교사님의 죄의 고백로 촉발되었으며, 1907년 장대현교회의 부흥도 길선주 장로님의 회개를 시발로 온 성도들의 통회 자복으로 인하여 임한 성령의 충만함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회개는 이처럼 성령 충만의 길입니다.
에베소서 5:18 말씀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보다 더 복된 축복은 없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는 방법을 오늘 아침에 상고했으니, 이 거룩한 방도를 즐거이 사용합시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는 기도를 많이 드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즐거이 읽고 암송하며 묵상합시다. 모여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힘씁시다. 또한 성 삼위 일체 하나님의 영광과 그 아름다움과 그의 복스러운 성품과 그의 일하심에 대하여 자주 깊이 묵상합시다.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일에 헌신합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뜻하실 때에 주의 종의 안수를 통해서도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은혜가 임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성령 충만이 임하며 자기의 죄를 깊이 회개할 때 성령의 충만함이 임합니다. 이와 같은 성령 충만을 그 무엇보다 고귀하고 복된 축복으로 알고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추구합시다. 세상에 사는 앞으로의 모든 나날에 우리 모두 성령으로 더욱더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귀한 뜻과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서서 칭찬과 상을 받는 복된 성도님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