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모리 2 - 아오모리에서 "네부타의 집" 을 구경하고는 핫코다마루 배에 오르다!
일본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 靑森(청삼) 에서 로컬선 아오모리 철도 열차를
타고 시내 동쪽에 위치한 아사무시 온천 淺虫溫泉 에 다녀옵니다.
그러고는 아오모리역 앞에 붉은색 판넬이 입구를 내느라 뒤틀린.....
네부타 축제와 관련된 건물 인 “네부타의 집” 으로 들어 갑니다.
여긴 8웣 초순에 동북 일본 최대의 축제라는 네부타 마쓰리 에 쓰이는
대형 인형 등롱이 여러점 전시되어 있어 구경할만 합니다.
그런데 일본 노인들 단체가 한꺼번에 밀어닥쳐 복잡한데 보아하니 8월 1일 전야제,
2일부터 6일간 열린다는 네부타 축제 행열 을 내부에서 미리 관람하는 것일까요?
네부타 축제는 일본을 대표하는 3대 불축제로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여대의
"네부타" 로 불리우는 대형 인형 등롱이 시내 운행코스를 행렬을 이루어 돕니다.
네부타의 "하네토" 가 고유리듬을 연주하는 "오하야시" 의 "네부타 바야시" 에 맞춰
열정적인 "춤" 을 추며 한여름 밤의 열기를 북돋는데 무려 350만명이 방문한답니다!
들어 올려지는 등롱 네부타와 "랏세라" 라고 외치는 함성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네부타는 액땜행사인 "칠석" 의 등롱 흘려보내기가 변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무로마치 시대에 교토에서 츠가루타메노부가 우라봉카이 축제기간에 굉장히 큰 등롱 을
제작하여 도시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이것이 점차 네부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오모리 네부타는 시대가 변하면서 조명이 양초에서 전기로, 뼈대가 대나무에서 철사로
변해 왔으며...... 헤이세이13년 (2001년) 에는 런던 대영박물관 에 전시되었습니다.
"오쿠리에" 는 네부타의 뒤쪽 그림을 말하는데 어두운 밤, 희미하게
사라지는 모습은 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는 애수를 느끼게 합니다.
금붕어 네부타 는 조화점(造花店) 에서 부업으로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둥그스름하며 비늘이 투박하고 눈의 간격이 넓어서 익살스러운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네부타 는 40여군데 마을의 모임, 어린이회, 학교등에서 제작한 소형 네부타
로..... 기업 등 단체로 운행하는 대형 네부타에 선행하여 운행된다고 합니다.
테부리가네는 손 징으로 "쟈가라기" 라고 하는데 리듬에 맞춰 "챵챵" 하는
예쁜 소리를 내는데 그 흔드는 모습과 같이 축제의 재미를 느끼게 합니다.
네부타사는 제작자를 말하며 네부타바야시 는 음악 리듬을 담당하는 북에다가
멜로디를 연주하는 피리, 악센트가 되는 손 징을 다루는 사람을 말합니다.
랏세라, 랏세라, 랏세, 랏세, 랏세라 외침에 맞추어 유카타에 꽃모자와 타스키 끈을
조여멘 하네토 들은 열정적인 춤을 추며 네부타를 실은 수레인 산차를....
대형 등롱을 움직이는 히키테 는 선도자의 지휘에 의해 오른쪽, 왼쪽으로 마치 살아 있는 것
처럼 움직이게 하며 둘째날에는 어린이 네부타 와 대형네부타 등 약 30여대가 운행합니다.
네부타관을 나와 바닷가로 통하는 도로를 따라 걸으니 거기 바다를 가로질러 도개교
같은게 놓여있는데 건너편 부두에 엄청 큰 배가 정박해 있으니 예전에
여기 아오모리 와 홋카이도섬 하코다테 를 연결하던 연락선 "핫코다마루" 입니다.
지금은 이 핫코다마루 八甲田丸(팔갑전환) 배를 박물관 으로 만들었으니 그 오랜 옛날
"혼슈와 홋카이도 섬" 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을 기념하는 것이라....
500엔을 내고 배 안으로 들어가니 폐장 30분전인데 배 안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해방전후의 사람" 들의 모습을 인형으로 만들어 두었네요?
짐수레며 화물과 사과 등속의 과일들이 실물처럼 잘 만들어져 있고 전체 모형과 항로며
항해역사와 선객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항해도구등이 참으로 잘 전시되어 있습니다.
전시실을 둘러보는데 전망대에서는 360도 전망을 즐길수 있으며..... 바다속 풍경을 보여주는
3D 입체영상관 도 있다고 들었지만 시간이 늦은탓인지 사람이 없어 물어볼수가 없네?
조타실에서 키며 나침반 등을 구경하다가 아래쪽으로 내려가니 기관실 로 엄청 큰 엔진을 봅니다.
어두운 기관실을 돌아다니다가 덜컥 겁이나는게...... 이제 문을 닫을 시간이 되었는지라 관람객은
보이지 않고 마눌과 둘 뿐이니 저 사람들이 문을 닫고 하선 하면 어쩐다?
꼼짝없이 어두운 배 기관실에 갇혀 내일 아침까지 갇혀지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합니다.
통로가 보이지 않으니 예전에 홍도에서 수영 을 하다가 바다 멀리 나갔는데 파도에 힘이 빠져
돌아가지 못할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서웠던 일과 혼자 지리산 겨울산행 에 나섰다가
눈보라 때문에 앞서간 사람들을 놓쳤을때의 절망감이 되살아난다. 위기전화는 일본도 119 라?
해서 "자기 부고" 를 미리 쓰는게 유행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는 것이니 1974년 2월 8일자
동아일보에 언론인 진학문 씨가 사전에 자기자신이 쓴 부고 가 실렸으니......
“ 그동안 많은 총애를 받았사옵고 폐를 끼쳤습니다. 나는 오늘 먼저 가니 부디 안녕히 계십시오”
또 2007년 1월 18일자 뉴욕타임스에는 전날 죽은 칼럼니스트 가 스스로 제작한 육성 동영상
부고 가 올라 왔으니..... “안녕하세요? 아트 부크월드입니다, 제가 조금전에 사망했습니다”
이 나라 일본에서는 2011년 동북대지진 이후 자신의 부고나 유언을 미리 써 놓는 사람
이 대폭 늘었다는데..... 몇년 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엔딩 노트” 는 딸이
위암 선고를 받고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모습을 카메라로 기록한 다큐멘터리 입니다.
정년 퇴직한 스나다 도모아키는 건강검진을 통해 말기암 판정 을 받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죽음 앞에서도 다른 사람들 처럼 망연자실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성실하고 꼼꼼하게 자신만의 “엔딩노트” 를 준비합니다.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믿어보기”, “한번도 찍어보지 않았던 야당에 표 한번 주기”
그리고 “일만 하느라 소홀했던 가족들과 여행가기” 등 위트 있고
솔직한 마음을 담은 리스트를 작성하며.... 아빠는 가족들과 소중한 추억을 쌓습니다.
그렇게 “엔딩 노트”가 채워질수록 가족들과의 긴 이별의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이 과정을 지켜보는 딸이자 감독인 마미 스나다 의 시선........ "웰빙”
을 넘어 “웰다잉” 의 시대일런가? 죽는 것도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큰 프로젝트 일진대!
그리고 또 몇년 전에는 미국 시애틀타임스에 여성작가 제인 로터가 자신의 부고를 올렸으니,
“나 자신의 부고 를 쓸수 있는 시간 을 가질수 있는 것이 암투병의 장점” 이라 했으니!!!
교통사고나 다른 급사에 비해 암은 죽을 날을 어느 정도는 미리 예견 할수 있다는 것일러나?
그녀는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고 이제는 선물을 돌려주고자 한다고 말하네요?
또 계로록의 저자 소노 아야코 는 “재미있게 살았으니 어느 때
이승을 떠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생의 심리적 결재” 라고 말합니다.
한 60대 남자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조문객들이 서둘러 화장장으로
가는 버스 에 오르고 슬픔에 잠긴 사람들은 이내 고인을 추억 하는 상념에 빠져들었습니다.
별안간 경쾌한 음악이 나오더니, 버스 모니터에 고인의 환한 생전 모습 이 비춰지면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궂은 날씨에 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비록 먼저 다른 곳으로 가지만 사는 내내 "아름다운 동행" 이었습니다.
바로 유일한씨를 존경한다며 1억 기부자 명단에 올랐으며 자신의 재산을 우리사주
조합등 사회에 환원한 KSS 해운의 창업자 박종규 회장인데 유언장 도 남겼으니,
"나는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 고 생각하니.... 이만하면 수지맞는 인생을 산 셈이다."
"또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 탓이니 나의 장기는 모두 대학병원에
기부해라. 남은 시신은 화장하여 무덤을 만들지 말고 내가 한 평생을
함께 해 온 바다에 뿌릴 것 이며.... 며느리 고생시키는 제사는 지내지 마라."
"아침에는 모이지 말고 집에서 꽃 한송이 꽂아놓고 묵념 추도 로 대신할 것이며 저녁에 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함께하며 형제들끼리 우애 를 나누어라. 그리고 이런 추도도 너희 대 까지만
하고 손자 대 까지는 물려주지 않도록 해라, 그동안 너희와 함께한 세월이 참으로 "행복" 했단다!"
우리 선인들도 스스로 죽은 후에 사용할 묘비명 을 스스로 미리 쓰는 自銘(자명) 을 통해 삶의
의미를 구했다고 하지 않는가? 미국의 부호가 죽었다는 신문 기사가 오보 로 났는데
사람들이 돈에 집착한 수전노 라고 평을 한 기사를 읽고는 깨달아서 자선재단 을 만들었다던가요?
1888년에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알프레드 노벨의 형이 사망하자 프랑스 신문이 보도하기를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 된 인물”
이라고 평하자 크게 놀란 노벨이 자신의 전재산을 기증해서 만든게 바로 “노벨상” 이라.....
어찌어찌해서 배위로 올라왔는데 나가는 통로 를 찾기가 쉽지않아 헤메다가 간신히
입구에 도착하니 퇴근 준비를 하던 직원이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게 통로
를 찾느라 헤메고 다니느라 땀에 젖은 몰골이 너무나 "생경" 스러웠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