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내리 석불입상
순흥면 사무소내 보호수
순흥 척화비
순흥 척화비
문화재자료 제242호
척화비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사람들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의 중요 도로변에 세우도록 한 비로, 이 비도 그 중의 하나이다.
비는 널찍한 사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모습으로, 원래는 순흥 초등학교 내에 있었으나, 1990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동시에 세워진 비로,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되고 세계 각국들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대부분의 척화비는 철거되었으나, 이처럼 몇 기의 비들이 곳곳에 남아 옛 우리민족의 자주의식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보호수
순흥면사무소내 각종비
읍내리 석불입상
시도유형문화재 제125호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 있는 불상으로, 머리가 없어지고 손은 손상을 입은 상태이다.
넓은 어깨와 양감있는 신체에서는 강건함과 탄력성이 느껴진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게 하고 왼손은 팔이 잘려나갔다. 양 어깨를 가리며 입은 옷은 배까지 U자형의 주름을 만들며 흐르다가 양 다리에서는 2개의 동심타원형으로 이어진다. 이런 표현은 영주석교리석불입상 등 통일신라시대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왼팔을 돌아 내려간 옷자락은 입체감과 유연함이 있어 훌륭한 조각솜씨를 나타내고 있다.
이 불상은 광배< 光背 >와 대좌< 臺座 >를 잃었을 뿐 아니라 머리도 결실되었고, 두 손에 손상까지 입고 있는 파불< 破佛 >이다. 그러나 파불이긴 하지만 넓은 어깨와 양감 있는 신체에서는 강건함과 탄력성이 느껴진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여원인< 與願印 >을 짓고 있으며 왼손은 팔이 잘렸지만 앞으로 들어 시무외인< 施無畏印 >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목에는 뚜렷한 삼도< 三道 >의 표시가 남아 있고 통견의 불의는 배까지 U형의 주름을 형성하며 흐르다가 두 다리에서는 두 개의 동심타원형< 同心楕圓形 >으로 이어지는 모습인데 이러한 옷주름의 표현은 이웃한 석교리석불상< 石橋里石佛像 > 등 통일신라시대< 統一新羅時代 > 불상< 佛像 >에서 흔히 보이는 특징이다. 왼팔을 돌아내려간 옷자락은 특히 입체감이 있고 유연하게 묘사되어 훌륭한 조각솜씨를 나타내고 있다.
석불입상내 주변 경관
읍내리 석불입상 찾아가는 길
순흥 면사무소 내에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