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90]마이산 탑사의 돌탑을 보셨지요?
일일일선一日一善, 오늘 오전 착한 일을 하나 했다. 한동네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와 평생(70여년) 친구였던 선배의 어머니를 모시고, 마이산 탑사의 ‘천지기도 산신제’를 다녀온 것이 그것.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이모를 찾는다하지만, 나는 한동네 어머니 친구였던 어머니를 찾아 옛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쩔 땐 “왜 꿈에도 안보인다”며 손을 붙잡고 울기도 했다. 선배의 차는 트럭이어서 보행조차 불편한 93세 어머니를 모시고 가기는 상당히 거시기하기에 똥차이지만 내가 모신 것. 1주일 전 포도 1봉지를 들고 찾아뵙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죽기 전에 마이산 산신제를 한번 가봤으면 좋겠다고 하셔, 즉석에서 날씨만 아주 안춥다면 모시겠다고 한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형도 흐뭇했을 터, 나로서는 어머니를 모시는 듯 기분이 좋은 일. 탑사까지는 40여km, 45분 안짝. 물든 단풍구경도 한몫을 거들었으니 방안에만 계시다 콧바람, 눈바람도 쐬니 좀 좋은 일인가.
전라고6회 동창회 | [찬샘편지 30신]한동네 '3총사’들의 ' 80년 우정友情' - Daum 카페
탑사는 산신제 참가자와 등산객으로 붐볐다. 주지스님(진성)과 보살의 손을 맞잡고 얘기를 나누는 어머니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코로나 이후 한번도 와보지 못했는데, 돌탑(천지음양탑, 오방장군탑, 흔들탑 등)과 스님이 보고 싶었다고 하셨다. 산신제와 함께 백제청동향로 점안식을 가진다는데, 12시 반에 시작하는 의식은 보지 못했으나 어머니가 흡족해 하셨으니 된 일. 선배 어머니도 탑사와 각별한 인연(수십 년 신도)이 있지만, 우리집과는 어른들끼리 세교世交가 있어 더더욱 인연이 깊다. 돌탑을 쌓은 주인공 이갑룡李甲龍(1860~1957) 처사는 임오군란때 포졸을 그만 두고 산신의 계시로 마이산에 들어와 30여년간 돌탑을 쌓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27살에 청상과부가 된 이후, 임실 오수에서 진안 마이산까지 걸어다니며 '참공'을 들였다. 오직 슬하 자손들의 무병무탈만을 빈 세월이 반 백년. 얼마나 친밀했으면 내가 태어나기 전 이 처사가 우리집에도 다녀가고, 아버지가 산에서 업어 내려오기도 했단다. 여지껏 이처사의 4대손(탑사 주지 진성스님)까지 ‘냉천할매’라는 호칭이 전수되었다. 그러니, 이처사의 아드님과 며느리(이 분이 시아버지의 기를 이어받았다), 그리고 장손 이왕선(태고종으로 출가한 혜명스님. 지난해 작고)씨 등 그 집 내력을 아버지는 지금도 쫘악 꿰고 계신다. 진성 스님의 아들이 한국불교대학을 졸업해 스님수업을 받고 있으니, 5대가 '가업'을 잇고 있다고 할까.
아무튼, 어릴 적부터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마이산 탑사를 찾았으니, 지금껏 못해도 서른 번은 넘을 것이고, 우리는 이왕선 스님을 아저씨로 불렀다. 마이산, 특히 탑사의 돌탑들은 그 옛날에도 신비했는데, 지금 봐도 신비롭다. 탑은 어떻게 쌓았을까? 돌은 어디서 어떻게 가져왔을까? 이처사는 정말 도술을 피는 도인이었을까? 그리고 왜 태풍 등 거센 바람에도 흔들리기만 할 뿐 무너지지 않을까? 정안수를 떠놓은 사발에 고드름은 왜 거꾸로 솟아나는 걸까? 탑사 중앙에 있는 옹달샘은 섬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겨울에 절벽으로 떨어지는 물기둥이 모두 얼어붙어 만들어내는 거대한 고드름은 대단했다. 혜명스님이 절벽 맨아래에 심은 능소화나무가 자라 절벽을 쭈욱 타고 올라가 초여름에 꽃을 피우는데, 정말 장관이다. 정월 대보름달 기도를 마치고 천지탑 주변에서 소지燒紙했던 기억도 뚜렷하다. 보살할매(이갑룡 처사의 며느님)는 탑사에서 잘 때에 “장관감이네, 장관감”이라며 내 뒤통수를 여러 번 쓰다듬어 주셨다. 심지어 우리 할머니와 입을 맞춰 큰손녀 사윗감으로 찍어놓기도 했다. 내가 “노”를 했지만, 흐흐.
탑사와 이갑룡 처사에 관련된 여러 일화들을 소상히 알고 있는 것도 그런 인연 때문이다. 축지법을 썼는지, 호랑이를 데리고 다녔는지, 나막신을 신고 수마이봉을 오르셨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이처사는 영적靈的인 외모, 말하자면 마이산 산신령같은 분으로 기억한다. 솔잎가루를 환丸으로 만들어 생식만 했다고 한다. 여러 썰이 많지만, 장손 혜명스님이 정리했다시피, 돌탑은 이처사가 쌓으신 듯하다. 그 영기靈氣가 5대째 이어지고 있는 것도 신기하다. 한국의 불가사의 몇 번째 내에 드는 마이산 돌탑의 비밀은 언제 확연히 풀릴까도 의문이다. 2019년 1월, 거의 4시간에 걸친 어머니의 49재는 장엄하고 황홀했다. 예술과 같았다. 어머니는 틀림없이 극락왕생하시고 계실 것이다. 제대로 된 49재 의식을 그때 처음 봤다. 우리 가족들은, 특히 나에게는 그런 절이어서 더욱 애착이 간다. 어디서든 심정적으로 ‘재가불자在家佛子’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자대비大慈大悲 나무관세음보살南無觀世音菩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