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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되는 아래의 글은 불교방송에서 강연한 내용으로서
불교방송 홈페이지에서 퍼온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
[불교입문 1] 인도의 자연과 환경 / 정병조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는 서남아시아의 관문에 위치해 있
다. 동쪽으로는 히말라야를 넘어 중국과 이어져 있고 서
쪽으로는 중동지방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서 터키와 지
중해를 건너면 곧바로 유럽과 연결되며, 북부의 히말라
야를 제외한 삼면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나라이다. 인
도의 남단에는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사자국으로 부르
던 스리랑카가 있으며, 그 아래쪽에는 1497년 포르투갈
의 바스코 다가마가 이곳을 통과하여 인도로 통하는 항
로를 개척한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이 있다.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인도는 예로부터 동서양의
길목 역할을 해오던 지역이기도 하다. '인도의 전체 땅 넓이는 소련을 제외한 전 유럽의 땅덩어리보다 더 크다'는
적절한 비유처럼 인도는 실로 광막하기 이를 데 없는 대
륙이다. 우리나라의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약 20배가 넘
으니 가히 그 크기를 짐작할 만하다. 그 북단은 히말라야
와 카라코람의 기슭에 위치한 고원지대이고, 남단은 케
랄라 지방이다. 이 남북단간을 새마을호 같은 특급열차
로 달린다고 가정하면 200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뿐만
아니라 동서 횡단거리도 이에 못지않게 먼 거리이다. 따
라서 인도인들은 흔히 대륙적 기질이라고 부르는 민족성
을 지닐 수밖에 없는 자연환경 속에 있다. 인도의 기후는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 한겨울에 영하 30
도까지 내려가는 곳(레 지방)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아
열대성 기후이다. 그래서 몬순이 시작되는 시기도 지역
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남쪽의 고아나 봄베이 지역은 5
월부터, 중부 이북의 델리나 카시미르 지역은 7-8월부터
시작된다. 이때를 우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를 제외하
고는 항상 무더운 여름 날씨가 계속 된다.
일반적으로 극심한 무더위는 사람들로 하여금 삶에 대한
회의적이고 염세적인 사고에 빠져들게 한다. 따라서 열
대지방의 민족일수록 종교적 성향이 짙다는 점은 쉽게
납득이 된다. 대체로 인도인들은 대륙적인 기질을 지니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은둔적이고 명상적이기도 하다. 이
러한 특징들은 그들의 민족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근간이
되고 있다.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네 단계의 일생을 살
아간다.
첫째, 부모님 밑에서 학업에 정진하는 시기.
둘째, 부모님으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아 그것을 번영시키는 시기.
셋째, 자식에게 가업을 잇게 하고 늙은 내외가 수행
을 떠나는 시기.
넷째, 내외마저 헤어져 초연하게 죽음을 맞을 준비에 들어가는 시기.
그중 셋째, 넷째 단계는 인도인들의 종교적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득 인도인은 현세적이기보다는 내세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성향이 짙다고 하겠다.
이에 비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이나 중국은 보다 현실적 뿐만 아니라 추상적, 명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경향이 강하다.이러한 민족성의 차이는 기후조건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민족성 때문에 예로부터 인도에서는 수많은 종교가 있었고 현재도 마찬가지다.8억의 인도인 중에서 약 80%가 힌두교도이고 회교도가 인구의 10%내외를 차지하며 시크교도도 2.5% 가량된다. 그외에도 자이나교 등 잡다한 종교들이 혼재하고 있다. 인도는 종교의 천국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종교인들에 대해 관
대할 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은 것도 특
징이다. 이와 같은 저변의 이유를 때문에 인도는 사회통
념이나 관습적인 면에서는 중동과 마찬가지로 종교가
국법보다 상위에 있는 나라라고도 할 수 있다.
인더스 문명의 번성 흔히 우리는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로서 나일강 유역,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 황하강
유역, 그리고 인더스강 유역 을 꼽는다. 이 중에서 인더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인더스 문명은 모헨조다로와
하랍파 지역을 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모헨조다로 문
명이라고도 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천 년 전 인 기원
전 3천 년경부터 5백여 년 정도 번성을 누렸던 인류의 가
장 오래된 문명이다. 현재 이 지역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도 대륙 안에 있지만, 사실은 파키스탄 영토이다. 파키
스탄의 최남단 항구인 카라치에서 북쪽으로 약 200키로
미터 정도 올라가면 모헨조다로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
시 북쪽으로 백 80키로 미터쯤 더 올라간 지점에 하랍파
가 있다.
이곳이 발굴되어 인더스 문명의 전모가 밝혀지게 된 것
은 1백여 년 전, 식민지 시절의 영국 고고학자들에 의해
서였다.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졌
다. 우선 유적지에서 발견된 25구의 인골들이 서로 다른
4종류의 형태로 분류 되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인도의
원주민으로 알려져 온 드라비다족 외에도 인더스 문명기
에는 서너 개의 민족이 더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다. 또 아직까지 해독을 하지 못해 불분명하지만 문자를
사용한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세 인도의
민간신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시바('siva)신상의 원
형도 발굴되었는데, 이 신상의 발견은 고대 인도인들의
종교적 성향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5천 년 전의 일로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질서정연한 도시계획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
이다. 예를 들어 집집마다 설치된 하수구 시설, 공동 우물
터 그리고 5백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공중목욕탕
시설 등이 그것이다. 이 중 목욕탕시설은 특정한 종교의
식을 행하기 이전에 몸을 정결히 하는 과정의 필요에 따
른 어떤 종교 집회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시
대에 종교가 있었던 또 다른 흔적으로는 독특한 장례의
식 을 들 수 있다. 장례방법에는 흔히 볼 수 있는 매장과
불교의 다비의식에서 볼 수 있는 화장 그리고 섬나라 사
람들이 주로 이용 하는 수장(水葬)이 있는데, 이외에도
조장(鳥葬)이라는 것이 있다. 조장의 관습은 지금도 중
근동 등의 조로아스터교나 인도 남부의 자이나교도들 사
이에서 행해지고 있다. 인더스 문명의 유적지에서 바로
이 조장의 흔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조장이라는 죽은
시신을 야산이나 들판에도 방치하여 날짐승이나 들짐승
들의 먹이가 되게 한 다음, 남은 뼈를 추려서 깨끗한 항아
리 등에 보관하는 장례방법이다. 대개 장례의식에는 그
나름의 독특한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이 조장
은 육신을 산 생명들에게 보시한다는 관념이 깃들어 있
다. 이것은 저승길을 편히 가기 위한 음조(陰助)를 얻어
려는 한 방편으로 행해졌던 관습이라 여겨진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발견된 유물들 중에 소나 코끼리 등을 조
각한 여러 가지 양식의 도장들이다. 이것은 당시의 통치
자가 일반 국민들로부터 거두어들인 세금의 액수와 형태
에 따라 일정한 모양의 표식을 해주기 위한 것으로 추측
된다. 말하자면 통치자와 피지배자간의 관계뿐만 아니
라, 당시의 사회가 문물제도가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
는 것이다. 이외에도 그곳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에
는 흙으로 빚어 구운 여러 가지 모양의 토우들이 있다. 대
부분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으나 소나 물소, 사자 등의 모
양을 하고 있는 것도 있다.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 토우들
은 고대 인도인들이 가졌던 토테미즘의 흔적으로 추정되
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서는 다수의 신상(神像)도 발견
되었다. 그 형태는 대개 수염을 길게 늘어뜨리고 눈을 위
로 치켜 뜬, 거의 실물 크기의 근엄한 표정을 한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인도 철학자인 라디크리슈난은 이 신상을 가리켜 힌두교에서 말하는 시바 신의 원형으로 추정한 바 있다. 그밖에도 이 시대에는 남녀의 성기를 숭배했던 흔적도 보인다. 이러한 모든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인더스 문명은 일반적으로 원시신앙이라고 하는 샤머니
즘과 애니미즘 및 토테미즘 등이 혼재해 있는 거대한 복
합 종교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인더스 문명이 5백여 년간이나 지속되다가 왜 갑
자가 멸망해 버렸을까? 현재로서는 수수께끼이다. 이 점
에 대해 학자들 은 몇 가지 가정을 내세우고 있다. 홍수에
의한 멸망설, 어떤 외부 세력과의 전쟁설, 또는 부족 상호
간의 전쟁설 혹은 질병에 의한 멸망설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홍수에 의한 멸망이 가장 설득력 있어 보인다. 왜
냐하면 히말라야로부터 발원하여 아라비아해로 흘러 들
어가는 인더스강의 지류는 우리나라의 한강이나 낙동강
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규모가 크다. 따라서 해
일이나 태풍을 동반한 홍수로 인해 물이 역류하여 제방
을 무너뜨리고, 나아가 도시까지 파괴했을 것이라는 가
정이 가장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쟁에 의한
멸망설은 발굴된 25구의 인골들이 자연사 한 것이 아니
라, 모두 예리한 창칼 등의 무기에 의한 살상으로 판명된
데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설은 비교적 설득력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전혀 배제해버릴 성질의
것도 아니다.
인더스 문명이 몰락하고 난 뒤, 인도 대륙에는 역사적으
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리안족의 침
입이다. 인류의 역사 위에 아리안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
은 대략 기원전 20세기 무렵이다. 이들의 원래 고향은 코
카서스의 남부 초원지대였다. 이들은 여느 유목민과 마
찬가지로 원주지였던 코카서스 지방을 떠나 초원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계속해서 몽고를
지나 티베트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일대를 가로질러 돈황
과 고비 사막이 있는 중국의 북쪽지방을 넘었고, 히말라
야 산맥과 마주치게 되자 두 갈래로 갈라져 이동을 계속
했을 것이다. 그 중 일파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진출했고, 나머지 는 히말라야 산맥을 우회하여 서쪽으
로 이동을 계속, 지중해를 건너 유럽 쪽으로 진출했을 것
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이 가정이 옳다면, 현재의 인도인
들과 유럽인들은 같은 조상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흥미
롭게도 이것은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1백여 년 전, 초창
기 인도학의 선구자이자 비교언어학자였던 막스 뮬러는
당시 일반화되어있던 영어의 라틴어 어원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라틴어의 어원이 바로 고대 인도인들이 사
용하던 산스크리트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인도인들의 최고의 신인 천신 쟈유스와 그리스 신화 에
나오는 제우스, 영어의 'three'와 산스크리트의 'tri' 등
은 발음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의미도 같은 말이라는 것
이다. 이밖에도 영어 발음의 대부분이 산스크리트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즉, 인도인과 유럽인
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던 동일 민족이었음이 확인되었
던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인도인들이 피부색만 다를 뿐 유
럽인들과 동일한 골격구조를 갖고 있다는 데서도 확인된
다.
아리안족이 인도를 침입한 시점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략 기원전 18-17세기경의 일
로 추측된다. 이 시기는 인더스 문명이 몰락하고 난 뒤 7-
8백년이 경과한 시점이 된다. 아리안족의 침입은 고대인
도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 거칠고 호전적
인 성격을 띤 유목민으로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
었던 아리안족은, 아직 청동기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개하고 온순한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제압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원주민을 예속화하
여 지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사회제도가 카스트제도이
다. 이것은 사회적 신분을 미리 정해 놓음으로써 지배 계
급의 통치와 기득권의 유지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제도
이다. 이 카스트의 최상층부는 브라흐만이라 불리는 종
교지도자 그룹이 차지하고 있다. 그 밑으로 무사와 귀족
층으로 형성된 크샤트리아 계층, 다시 그 아래에 바이샤
라는 평민층, 그리고 최말단의 노예신분에 해당하는 수
드라 계층이 있다. 바이샤와 수드라 계급은 주로 당시의
원주민들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지배계급의 착취 대상이
었을 뿐 만 아니라 심지어 매매나 살상도 예사로 당할 수
밖에 없었던 비천한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신분제도가
거의 4천년 동안이나 인도 대륙의 관습으로 내려오고 있
는 것이다. 이 사회적 악습이 인도의 근대화를 막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이다.
아리안족이 정착하여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은 서
북 인도의 펀잡지역으로 현재는 시크교도들의 본거지가
되어 있는 카시미르 주변이다. 또 이 갠지스강 중허리 부
분은 부처님이 생전에 활동하던 곳으로 고대 불교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부처님은 이 지역을 중심으로 최남
단의 마가다국과 최북단의 코살라국에 이르는 남북 천
리, 동서 이천 리를 반경으로 가르침을 펴셨을 것이다. 그
래서 이 지역 일대에는 부처님과 직접 관계되는 유적지
가 많다.
이 일대를 배경으로 고대 인도의 아리안족이 형성한 문
화를 베다 혹은 우파니샤드 문화라고 한다. 베다( veda)
라는 말의 어원이 '알다', '깨닫는다' 등의 의미를 가진 동
시 'vid'에서 나왔듯이 고대 인도인들의 철학적 관심은
'아는 것'에 있었다. 자연의 신비나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
등을 탐구하여 아는 것, 그것이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 '아는 것'에 대한 예찬과 존경심이 베다 문화를 이룩했
다고 볼 수 있다. 베다 문화는 물질적인 면보다 정신적인
측면, 특히 종교적인 면에서 매우 탁월한 것이었다. 베다
나 우파니샤드 경전에 나오는 신들의 세계, 신들 간의 전
쟁,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 등에 대한 묘사는 그들
의 종교적 상상력이 얼마나 뛰어났던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이룩했던 베다 문화는 역사적으로는
신화시대에 속한다. 따라서 일일이 증명될 수 있는 성질
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증명되지 않는 신화 속에 숱한
상징과 진실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도 베다
의 신 중심적인 분위기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았던 분
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거기에서 탈피하여 '과연 인간이
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 해박한
원리를 제시해 준 각자(覺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