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경당 종택은 경당 장흥효(1564~1634. 조선 중기 학자) 선생의 종가다. 장흥효 선생은 최초의 한글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 선생의 아버지이다. 장계향 선생의 친정이 되는 셈이다. 장흥효 선생은 벼슬길을 멀리하고 퇴계 이황의 학통을 이어 후학 양성에 전념한 학자이다. 안동 장씨의 시조는 태사 충헌공 장정필 선생이다. 장정필 선생은 신라 진성여왕 6년(892년)에 당나라에서 아버지를 따라 신라로 넘어왔고, 고려 태조 13년에 김선평, 권행 등과 군사를 일으켜 견훤군을 격파했다고 한다. 고려 태조는 그 공을 높이 사 ‘태사’라는 벼슬을 주고 안동을 ‘식읍’(나라에서 공신이나 왕족에게 내리던 토지와 가호)으로 하사했다. 종손 장성진씨는 장정필 선생의 37대손이자 장흥효 선생의 11대손이다.
종부 권순 선생은 25살에 26살이었던 종손과 결혼을 했다. 조용하고 단아한 종부는 마음에 작은 한이 있다. 혼례를 치르던 날, 25살 처녀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이가 신랑이었다. 이날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을 입는 날이다. 평생 단 한번이다. 하지만 권순 선생은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입지 못했다. 흰옷을 입고 절을 올리고 혼례를 치렀다. 종손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혼하고 신랑은 군대 가버렸지. 시어머니 빈소가 집안에 있어서 3년간 조석을 올리고 곡소리도 했지. 3년간 흰옷만 입었다니까.” 종손은 “나 때문에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며 지긋한 시선으로 종부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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