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가족세태
칼로 살베는 부부싸움
서울 작년 부부싸움으로 2,265명 사상
사망31명 부상2,234명
위의 내용은 최근 신문에 실린 기사제목의 일부내용을 인용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수 있을까 하는 대목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만 연간 22만명의 노인들이 점심을 굶고 산다고 합니다.
노인은 바로 우리들의 부모님입니다. 우리들의 부모님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최근 조사에 의하면 부모가 장남과 동거하는 가정이 30%로 줄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부모를 모시려는 가정이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실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된다고 생각되어 효에대한 내용을 이번편지에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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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孝)란 무엇인가?
효(孝)는 노인노(老)자와 아들자(子)의 뜻이 합성된 문자로 자식이 나이드신 부모님을 업고 있는 상으로 부모를 잘 섬긴다는 뜻이다.
효경에 이르기를
" 효는 덕의 근본이며 모든 가르침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고 했고
"효(孝)가 인간도리의 큰 근본이기 때문에 모든 행실의 근본이며 모든 착한 행실의 시초인 동시에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며 생민의 근본이라 하였다. 또 만물이 천지에서 받은 성품중에 사람의 성품이 가장 귀하고 사람의 행실에 효도보다 더 큰 것이 없다. "고 하였다.
효(孝)자는 자식이 어버이를 업어주는 모습인데 어릴 때 어버이가 나를 업어주며 키우셨듯이 반포조같이 자식이 어버이를 업어주며 보답하면 얼마나 좋을까?
까마귀를 효(孝)조 또는 반포조(反哺鳥)라하는 이유는 까마귀는 어릴적에 제 부모가 먹을 것을 물어다가 새끼의 입에 넣어주며 기르지만 자라고나면 그때부터 새끼들이 먹이를 물어다가 제 부모입에 넣어주며 보은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10가지 은혜
부모님의 은혜는 하늘보다도 높고 바다보다도 깊다고 한다.
1. 어머님이 10개월동안 뱃속에 잉태하여 태교를 베풀어 주신 은혜
2. 출산할 때 온갖 고통을 겪고서 낳으신 은혜
3. 자식을 낳고서도 죽을 고비의 고통을 잊으시는 은혜
4. 쓴 것은 삼키고 단 것을 아기에게 먹여 주시는 은혜
5. 아기에게 언제나 마른자리에 눕히고 자신은 차고 젖은 곳으로 가시는 은혜
6. 자식에게 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
7. 대.소변을 가려주고 더러운 것을 닦아주며 기르시느라고 고생하신 은혜
8. 자식이 먼길 떠나면 돌아올때까지 생각하고 염려 하시는 은혜
9. 자식의 모든 괴로움을 대신하고자 하는 마음과 자식의 장래를 위해
온갖 고통을 참으시며 애쓰시는 은혜
10. 늙어 돌아가실 때까지 자식을 염려하고 사랑해 주시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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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선택한 효의 기준은 무엇인가?
우리 조상들은 효(孝)를 학문에 들어가는 길로 생각하고 서당과 향교에서 소학과 효경을 필수과목으로 가르쳤으며 과거시험 과목으로도 채택 하였다.
그리고 전국에서 효행자를 선발하여 표창하였고 효자에게는 관리로 특별 채용하기도 했으며, 명예관직을 수여하기도 하였다. 특히 현세와 후세에 널리 모범으로 삼고자 효자비와 정려 등을 세워주고 효행록에 기록 하였다. 그러나 불효자에게는 엄하게 다스렸다.
<고려사 형벌지에 보면>
부모의 범죄에 대하여 자식이 고발 하였을 경우와 부모에게 욕설을 한 경우에는 극형으로 다스리게 했다.
실수로 부모에게 상처를 입혔더라도 3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고, 부득이한 과실로 부모를 구타한 경우에는 구천리 유형에 처하도록 규정 하였다.
또한 부모를 학대하거나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 임금은 자신의 부덕함을 참회하고 즉시 군신회의를 소집하여 그 대책을 논의 했으며, 그 지방을 다스리는 수령에게는 징계를 하고 범법자를 가르친 훈장에게도 책임을 추궁 하였다.
또 불효자에게는 과거시험 응시자격을 박탈 하였으며 특사령이 있어도 제외 되었다.
교육의 목표가 인간을 인간답게 가르치는 것에 있다고 한다면 효도교육이야말로 인간 교육의 가장 기본이 되는 까닭에 옛날의 학교 설립은 효도교육에 가장 큰목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효에 대해 얼마나 중시하고 상벌을 엄히 했는가를 알 수 있다.
효심은 마음을 잘 닦는데서 자란다.
효도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본래의 천성이다.
그런데도 효도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욕심(돈, 권력, 명리, 쾌락)에 가리어 본성을 밝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말에 그릇은 비어 있을 때만이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것처럼 마음도 욕심을 버리고 비워 있을때 바른 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한데 도(효심)가 비집고 들어 갈 틈이 없는 것이다.
성서에도 보면
" 그 사람의 마음이 있는 곳에 그사람의 보물이 있다. "고 했는데 마음에 부모를 주인으로 모시고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부모가 그의 보물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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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도
" 계율을 잘 지켜 마음이 달아나는 것을 막고 근본을 밝혀야만 참다운 지혜에 이를 수 있다. "고 했다.
무릇 무엇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자기 마음이다
증산도 성전에도 보면
" 마음이란 신명이 의존해 있는 존재의 근원처요. 신명이 드나드는 문이며 신명이 오고가는 것이다. 때로는 착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니 선한 것을 배우고 죄악스런 것을 잘 회개하기만 하면 천지만물이 생겨나고 성신이 드나드는 우리 마음의 문호와 길은 천지보다 크다. "고 했다.
어떻게 효도 할 것인가?
효도는 몸과 마음을 다해 실천하는 것이 생명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도인지 불효인지 실천적인 성현들의 말씀을 통해 알아본다.
◎ 백성들에게 서로 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려면
효도하라고 하는것이 제일이다.(효경)
◎ 효도는 온갖 행실의 근본이다. 사람으로서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는 다면 그 밖의 행실은 물어 볼 것이 못된다. 설사 그가 다른 일을 다 잘하고 온갖 일에 능통하다고 하더라도 남들은 그를 칭찬하지 않는다. 칭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세상 살아 가는 것을 부끄러워 할 것이다.(지응현)
◎ 무릇 국가를 다스림에도 반드시 근본에 힘써야 할 것이니 근본 되는 것에 힘쓸 것은 효도외에 더 할것이 없다.(고려 성종)
◎ 사람의 자식으로서 부모를 섬기는 마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털끝만큼이라도 다한 것이 없어야 효도라고 말 할 수 있다.(성학집요)
◎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손하면서 상관에게 반항 하는 자는 드물다. 군자는 근본을 소중히 여기나니 근본만 확고히 서면 도는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들에게 공손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것이 인(仁)의 덕을 완성해 가는 근본이라 해도 좋으리라.(논어)
◎ 선비의 모든 행실은 효도와 공경을 근본으로 삼는데 삼천가지 죄중에서 불효가 가장 큰 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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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때 문종의 넷째아들 대각국사 의천은
" 여러복 가운데 효를 행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없다. "고 하였다.
여러경전과 큰 스님들은 효심을 불심이라 하여 효도하는 마음이 곧 깨달은 부처의 마음이라 하였고 "부모를 왕위에 모신다 하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았다고 말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 불효하는 자는 부처나 금강신, 다섯가지 신통력을 지닌 신선이라 할지라도 구해낼 수 없다. "고 하여 부모에 대한 자식들의 행동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가르치고 있다.
♤ 부모를 섬기는 것이 곧 부처님을 섬기는 것이다(대집경)
♤ 부모를 공경함은 부처님을 공경함과 같다.(심지관경)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성경 에베소서 6장1절)
♤ 부모를 때리는자나 업신여기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한다.
(성경 출애급기 21장15절)
부모님을 잘 받들어 모시는 것
옛 사람들은 아침에 부모의 침소에 나아가 안녕히 주무셨는지 큰절로 문안인사 드리고, 밤에는 잠자리를 펴드린 뒤에 편히 쉬시기를 인사 올렸다. 계절에 맞는 의복을 마련하여 입혀 드리고 매 끼니마다 정성껏 음식을 마련하여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았으며, 항상 온화한 표정으로 모셔 부모가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기쁘게 살아 가시도록 노력 하였다.
집밖에 나가기 전에는 연고를 말씀드려 허락을 받았으며 돌아와서는 반드시 뵙고 다녀온 경위를 말씀 드렸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어떤가?
자식이 부모를 서로 모시려고 다투어도 부모를 향한 보은에는 부족한 것인데 오히려 서로 모시지 않으려고 형제간에 싸우기도 하고, 양로원이나 시골에서 제대로 봉양하는 자식이 없어 쓸쓸히 노년을 보내시는 분들이 많아졌고 자식 눈치를 보다가 자살을 하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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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의 사례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때 효녀 지은은 나면서부터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몸이 된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서른 두 살이 되도록 시집도 안가고 어머니 곁을 떠나는 일 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살림이 어려워 날품팔이로 밥을 빌어다 어머니를 봉양 하였으나 빈궁을 견디다 못한 지은은 부잣집에 몸을 팔아 종노릇 하기로 하고 쌀 10섬을 얻었다.
부잣집에서 종일 일하고 날이 저물어 집에 와서 어머니를 봉양한지 며칠이 지난 뒤 어머니는 " 지난날에는 빌어온 밥이라도 그 맛이 달더니 요사이는 밥이 전처럼 달지도 않구나! 오히려 밥을 먹으면 칼로 간장을 찌르는 것 같으니 그 영문을 알 수 가 없구나! " 지은이 사실대로 말씀드리자.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 나 때문에 종이 되다니 빨리 죽지 못한 것이 원망스럽구나! 하고 소리내어 통곡하자. 지은이도 어머니를 붙들고 울음을 터트리니 집안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때 그 집앞을 지나던 효종랑이란 화랑도가 그 사연을 알고 자신의 부모님께 말씀드려 조백섬과 의복을 보내 종으로 산 주인에게 갚아주어 양민이 되게했다.
이소문을 들은 화랑도들이 많은 곡식을 보냈고, 소문을 들은 왕은 벼오백섬과 집한채를 내리고 부역도 면해주고 도적이 침입치 않도록 군사를 보내 지키도록 하고 그 마을을 효양방이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오륜행실도에 보면
효자가 수명이 다했는데 하늘이 잡아가지 않고 효도할 수 있게 수명을 연장시킨경우를 보자.
송나라때 오이는 어머니를 지극히 섬겼다. 어느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 오이에게 " 너는 전생에 지은죄로 내일 정오에 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다. " 했다. 이에 오이가 " 저에게는 늙으신 어머니가 계신데 구해 주시옵소서! 제가 벼락을 맞아 죽으면 어머니 가슴이 찢어질 것이며 어머니 모실 사람이 없습니다. "
신령은
"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 것이라 어쩔 수 가 없다. " 꿈에서 깬 오이는 벼락맞아 죽는다면 어머니가 놀라실까 두려워 새벽 조반상을 올리고 " 저는 잠시 다른곳에 다녀 오겠사오니 그동안 어머니께서는 누이집에 가 계십시오. " 하자. 어머니는 이상한 예감으로 승낙치 않았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자. 오이는 어머니가 놀라실까 봐 급히 문을 닫고 들판 한가운데서 기다렸다.
오이는 자신의 죽음을 알고 미친 듯이 헤매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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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의 시간이 흐른후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하얗게 개였다. 오이는 화를 면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밤 꿈에 신령이 나타나 " 너의 지극한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켜 전생의 죄를 용서하니 더욱 어머니를 공경하고 남의 본보기가 되어라. " 하고 그의 목숨을 연장시켰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나와 있는 이순신장군의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보면
"아침에 흰 머리카락 10개를 뽑았다. 흰머리가 싫어서가 아니라 늙으신 어머님이 계신 까닭이다. "고 안타까워 했고,
1593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을 무렵 노환의 어머니께 효성을 다하지 못함을 안탑갑게 생각하던 장군은 어머님을 잠시 뵙고자 도체찰사 이원익에 휴가를 청하기를
" 자식이 아침에 나가 돌아오지 않아도 어머니께서는 문밖에서 기다리신다고 하거늘 하물며 찾아뵙지 못한 지 3년이 지났으니 얼마나 안타가이 기다리시겠습니까? 요즈음 인편에 들으니 노환이 날로 심하여 여생이 얼마 남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식 얼굴을 다시한번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셨답니다. 아! 다른 사람이 들어도 눈물을 흘리겠거늘 자식된 심정이야 어찌 말로다 형언 할 수 있겠습니까? " 하였다 한다.
고려말의 충신 길재의 효성
고려말의 충신 야은 길재는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중에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자. 이를 들은 어머니가 분하게 여기고 원망하자. 길재는 어머님께 엎드려 간언하기를
" 부부의 애정이라고 하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더욱 깊어지는 것이므 로 비록 그것이 옳치 않다고 하더라도 참된 본래의 마음에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윤리의 변함은 성인도 면하지 못하였거늘 다만 도리로서 아버님의 마음이 안정되기를 기다릴뿐입니다.
제가 그동안 어머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서 장성 하였습니다만 지금 어머님께서 원한을 품으시게 된다면 저를 사랑하는 길이 아님을 말씀 드립니다. "고 위로해 드려 원망하는 마음을 갖지 않게 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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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어머니께 말씀드리기를
" 아버지께서 한 번 실수 하셨다하여 친하게 모시지 않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닌줄로 생각합니다. "하고 그길로 서울로 올라가 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니 계모가 처음에는 학대하다가 그의 효성에 감동되어 자기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고려가 망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서 모친봉양을 극진히 하고 밤이되면 이부자리를 펴드리고 아침이 되면 청소를 손수 하였다.
부인이 이를 대신하려고 하면 말하기를
" 어머님이 연로 하셨으니 후일에 비록 어머니를 위하여 이것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을 것이다. " 고 자기자신이 모든일을 처리 하였다. 길재는 부모님 제사가 돌아오면 쌀 한톨이라도 입에 대지 않고 하루종일 눈물을 흘리며 한밤중에 자고 닭이 울면 일어나 정제한다음 사당과 선대 조상께 참배를 올렸다.
조선 선조때 조헌의 효심
조헌은 효성스러웠으나 계모는 대우를 소홀히 하였다. 어느날 외가에 갔더니. 외할머니가 계모의 일을 들춰내어 울면서 "너의 어미가 이렇게 대우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 가겠느냐?" 고하자 조헌은 아무 대답도 안하고 돌아왔다. 몇 달이 지난 뒤 외가에 가서 문안 드리니 외할머니가 왜 오랫동안 오지 않았느냐? 고 말하자. 선생은 말하기를
" 전일 외가에 왔을 때 할머니께서 우리 어머니의 잘못한 점을 들어 말씀하시니 남의 자식된 도리로 차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감히 오지 못하였습니다. " 하니 할머니도 크게 효성스럽다고 칭찬하며 이후로는 다시는 계모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계모는 선생에게 엄하게 가혹한 책망을 했으나 선생은 오히려 더 공경하는 마음과 효성스런 태도로 송구스런 생각으로 지냈다.
그러므로 계모는 자기가 낳은 네 자녀가 있으면서도 선생의 봉양을 받지 않음이 없었고, 선생이 죽음에 이르자 밤낮으로 슬피 통곡하여 말하기를
" 어찌 이런 인물을 세상에서 다시 보랴! 그는 진실로 내 아들이다. 다만 그 어머니 몸을 빌려 태어났을 뿐이다. "고 하였다.
선생은 임진왜란때 선조임금이 의주로 몽진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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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의 천재효자 율곡
율곡선생이 다섯 살때 모친 사임당이 병들어 위독하자 남몰래 외가 사당에 들어가 모친의 쾌차를 기도하였다. 식구들이 찾다가 해질무렵에야 그러한 율곡의 모습을 발견하고 크게 감탄했다. 선생의 정성에 모친의 병환이 며칠만에 회복되게 되었다고 한다.
또 그가 열한살 때 부친이 병으로 위급하자 온갖 정성으로 시중들던 율곡은 자신의 팔을 찔러 피를 내어 부친의 입에 넣어드리고 사당에 들어가 " 부디 저를 대신 앓게 하여 주십시오. " 하고 울면서 빌었다. 그 뒤로 부친의 병세는 호전되었다.
16세때 모친이 별세하자. 3년간 시묘생활을 하는데 제수를 정성껏 갖추고 제기를 설거지하는 일도 하인에게 시키지 않고 자신이 직접했다. 선조 원년에 이조좌랑에 배임되었는데 외조모의 병환이 위중하다는 급보를 받고 벼슬을 버리고 가니 조정에서 신하들의 탄액이 있었으나 선조임금은 효심을 아름답게 여겨 문제삼지 않았다.
나중에 홍문관 교리를 제수하여 다시 부르자.
"외조모는 양육해준 은혜가 있는데 강릉에 사시면서 늙고 병든데다 자식이 없으니 벼슬을 내놓고 돌아가 봉양하길 원합니다. "하니 임금이 허락 하였다. 율곡은 계모에게도 효성을 다했다. 계모는 성격이 괴팍하고 포악했는데 율곡은 친어머니같이 극진한 효도로 섬겼다.
율곡이 재상에 오른 뒤에도 효성에 변함이 없자. 계모도 크게 감동하고 현숙한 부인이 되었다.
율곡이 49세로 병이 들자. 계모는 율곡의 아내보다 더한 정성으로 병 간호를 하다가 율곡이 죽은 뒤 그 효성에 새삼 감동하여 자식을 위해 삼년간 소복을 입고 심상(心喪)하였다.
조선 명종때 진묵대사의 효심
진묵대사는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여 7세에 출가 하였다.
태고사에서 지었다는 시
" 하늘을 이불로, 딸을 요로, 산을 베개 삼고
달을 촛불, 구름을 병풍, 바다를 술단지 삼았네.
크게 취하여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자락이 곤륜산에 걸릴까 하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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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이 지극했던 대사는 출가한 후에도 어머니를 절 가까운 아랫마을에 모셔 봉양 하였다. 어느 여름에 어머니가 모기 때문에 괴로워 하자. 대사는 산신령에게 고하여 모기떼를 다 쫒아 버린지라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 마을에 모기때의 괴로움이 없어 졌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문에 이르기를
" 열달동안 태중의 은혜는 무엇으로 갚으리요. 슬하에서 3년동안 길러 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 위에 만세를 더 사셔도 자식의 마음에는 그래도 부족하온데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하셨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이리도 짧습니까? "
대사는 출가한 스님이라 어머니 제사를 모실 후손이 없으므로 천년동안 제사가 끊이지 않는 명당의 혈에 어머니 묘를 쓰고, 대사의 효성과 도력으로 그 묘를 찾아 성묘하고 제사 지내는 자에게는 집안의 재앙을 없애주고 풍년이 들게 하였다. 결국 제사를 모실 후손이 없어도 향화가 끊이지 않게 하였다 한다.
계모를 감동시킨 민손
민손은 일찍 어머니를 여윈탓에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얻었다. 계모는 자기의 친아들에게는 겨울에 두터운 솜옷을 입히고 민손에게는 갈대옷을 입혔다. 어느날 아버지와 같이 관가에 가던 민손이 지나치게 떨고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 어디가 아프냐? 아니면 추워서 그러느냐? " 하고 묻자 민손은 괜찮다고 하였으나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옷을 만져보고 얇은 옷임을 알았다.
계모가 그런 사람인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아버지는 집에가서 당장 쫒아내려고 했다. " 이런 몹쓸 계집이 있나. 이추운 겨울에 갈대옷을 입히다니! "
그러자 민손은
" 아버지 진정 하십시오. 어머니가 계시면 한 아들만 춥되 어머니가 나가시면 세 아들이 다 춥습니다. "
이말에 감동한 계모가 마음을 바로 잡았고 아버지도 계모를 쫒아내지 않았으며 가정이 화평 해졌다고 한다.
부모가 바라는 효도란 무엇인가?
조선 선조때 명필로 유명한 한석봉은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면서 아들을 키워고 공부에 지장이 없도록 자신은 끼니를 굶는 한이 있더라도 필기구를 사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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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한석봉은 자기한테만 밥상을 들여주고 부뚜막에서 허기진 배를 슝늉으로 때우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랬다. 그래서 며칠동안 땅바닥과 모래바닥에 글씨 연습을 하고 종이를 아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종이가 아직 남아 있으니까 며칠동안 안사주셔도 된다고 했다. 어머니가 공부를 게을리 한다고 야단치자. 한석봉은 사실대로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어머니는
" 어머니의 고생을 안타까워하는 네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너는 이 어미에 대한 참다운 효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구나. 그것은 하루빨리 학문을 완성하고 명필이 되는 것이다. 땅바닥이나 모래위에 써서 어떻게 글솜씨가 늘 수 있겠느냐? 너에게 종이와 먹을 사다주는 일은 어미에게는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너는 어찌 그것을 헤아리지 못한다 말이냐. "
부모를 공경하라는 효심은 동양에서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라도 기억해야 한다.
독일속담에 보면
한 아버지는 열 아들을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한 아버지를 봉양하기 어렵다.고 했고
섹스피어는
불효한 자식을 가졌다는 것은 뱀의 이빨보다 더욱 몸에 해롭다.고 했고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내 자식들이 해주기 바라는 짓과 똑같이 네 부모에게 행하여라.
아! 나의 아들이여. 네가 만일 부모의 근심을 모른다면 아무도 너의 벗이 되지 않을 것이다. 고 했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람치고 심술긏은 사람은 없다.(뮈세)
부모님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봐 주셨으니, 우리도 부모님의 여생을 돌봐 드려야 한다.(생텍쥐페리)
자식없는 사람은 아이들의 귀염움을 모른다.(영국속담)
태양이 있는 곳은 언제나 따뜻하고 어머니가 있는 곳에서 자식은 행복하다.(러시아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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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화크경의 효심
영국 챔벌린 내각 당시 외상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주미대사였던 하리화크경은 바쁜 정무의 틈을 타서 아버지에게 매일 편지를 쓰는 효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국의 명문태생인 그는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후에 인도의 총독으로 임명 되었을 때 80세가 넘은 노부를 홀로 두고 5년 간이나 인도에 가 있는 것이 걱정스럽다 하여 아버지에게 의논하고 돌아 올때까지 건강하시도록 신에게 기원하고 떠났다. 인도에 있을 때도 하루도 빠짐없이 아버지에게 편지를 내고 그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어머니 날 제정
미국의 웨스트 버지니아 주 웹스트라는 곳에 신앙심이 두터운 안나 자비스라는 여인이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혼자가 되어버린 그녀는 어머니 생존시 좀더 효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어느 날 친구들을 파티에 초대 했을 때, 그녀는 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참석했다. 그녀는 이 세상 사람들이 일년에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어머니를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10만불의 어머니 유산을 기금으로 " 어머니 날 "을 제정할 것을 국내외로 탄원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윌슨 대통령 취임 당시(1914) 5월 둘째 일요일을 첫 " 어머니 날 " 로 정했던 것이다.
무엇이 불효인가?
효도를 하지 않는 것이 모두 불효이지만 맹자는 다음 5가지를 불효라고 했다.
첫째 육신을 게을리 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음이요.
둘째 장기와 음주를 좋아하여 부모의 봉양을 돌보지 않는 것이요.
셋째 재물을 좋아하여 부모를 봉양을 돌보지 않음이요.
넷째 이목(耳目)의 욕구를 만족시키느라고 부모를 욕되게 하는것이요.
다섯째 용맹을 좋아하여 자칫하면 싸우고 성내어 부모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결국 불효는 부모님을 편안히 모시지 못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훌륭한 노후대책은 자식을 효자로 기르라고 했다.
효자를 기르는 방법은 먼저 자기자신이 부모님께 효도하여 자식의 스승이 되고 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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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효도가 되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 섬기듯, 부처님께 공양 드리듯, 미인을 사랑하듯, 자식을 사랑하듯, 권력과 명리와 재물을 추구하듯 정성을 다해 섬기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효자자식을 두게 될 것이요. 가장 확실한 노후대책이 될 것이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아도 효도하는 자식이 없으면 부모님은 외로운 법 입니다,
저는 이편지를 쓰면서 상당한 고민을 했습니다. 제 자신이 이런 편지을 쓸 처지도 아니거니와 부모님이 다 돌아가신터에 살아계실 때 제대로 효도를 못하고 이런 편지를 쓴다는 것은 부끄럽기 한이 없지만 이 편지를 쓰면서 늦게나마 제 자신이 반성의 기회로 삼으면서 감히 편지를 써봅니다.
내용에 부족한 점이 많치만 지면관계상 이것으로 줄이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차후에 미진한 부분에 대해 전할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 편지를 쓰는데 참고한 문헌은, " 한국인의 127가지 지혜 " "소학 " " 효경 " "부모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 가정 천국의 열쇠 " " 화해 " " 참가정" "명언.일화 대사전" "부모은중경" "도덕. 윤리. 효도의 원리와 실천" " 좋은말 사전 " 등에서 발췌한 내용임을 알려 드림니다.
그리고 마음의 양식이 되거나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몇가지 내용을 인용하여 첨부해 드림니다.
내용상의 오류가 있거나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좋은 뜻으로 이해해 주시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시정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조언을 보내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동안 11년이 넘도록 이편지를 쓰는동안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림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