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고 언젠가 죽는다
돌봄의 순환과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
『꽃은 거기 놓아두시면 돼요』를 펼치면 얼음처럼 푸른색과 흰색을 기본으로 하는 서늘한 이미지들이 모든 책장마다 가득하다. 이따금 등장하는 빨간 입술과 담뱃불, 알록달록한 꽃들은 우리 삶에 가끔씩만 존재하는 기쁨이나 즐거움처럼 보인다. 특히 주름과 검버섯으로 가득한 노인들의 얼굴은 생생하고 리얼하지만 동시에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해낸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에게는 각자의 삶이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엄마에게 가족 앨범을 보여주는 딸, 기꺼이 할아버지의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손녀처럼 규칙적으로 방문하는 가족들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가족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노인들은 점차 잊혀져 간다. 노인들도 기력이 쇠하고 가족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지니 피차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존재도, 관계도 스르르 소멸해가는 삶. 그러나 여전히 노인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고, 에스텔은 그 속에 함께 있는 존재다. 평생 이루지 못한 꿈과 죽을 때까지 남는 회한 같은 것들을 뒤늦게 환상 속에서나마 충족시킬 수 있다면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문제는 에스텔이 노인들을 돌보고 일상적으로 죽음을 맞는 동안 거듭해서 이별과 상실을 경험해야 한다는 데 있다. “내가 애정을 가졌던 사람의 시신만 벌써 수백 구를 봤어. 누구도, 진짜 어느 누구도 괜찮냐는 말 한 마디로 우리를 챙겨준 적 없어.”
돌봄 노동자에게 맞는 마음가짐과 태도는 무엇일까? 가족의 영역에 있던 돌봄이 공식적인 노동이 되면서 이따금 돌봄은 차갑고 의무적인 행위로 치부될 때가 있다. 누군가를 먹이고 씻기고 대화를 나누는 일들이 아무런 감정 없이 가능하기라도 한 것처럼. 에스텔은 죽은 노인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하나씩 빼돌려 서랍 속에 고이 모으고 자신에게 이 정도 유품을 가질 권리쯤 있다고 주장한다. 에스텔에게 노인들은 처리해야 할 일거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자 사랑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인들을 돌보다가 떠나보내는 동안 에스텔이 경험하는 상실감은 단순히 지나치게 예민하고 인간관계에 과몰입하는 성향 때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되고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어떻게 완벽한 타인일 수 있을까. 에스텔이 느끼는 혼란과 슬픔, 비통함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일 것이다.
생애 주기상 인간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사람,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사람을 돌보는 것은 공동체가 마땅히 나눠야 할 책임이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돌보고 돌봄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내가 너와 다르지 않다는 걸 제대로 이해하고 타인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야기와 예술이 가진 진짜 효용일 것이다. 『꽃은 거기 놓아두시면 돼요』에서 이야기의 막바지에 이르면 독자들은 충격적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장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윽고 겸허하게 우리의 삶을 통시적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꽃은 거기 놓아두시면 돼요』는 밀도 높은 서사를 통해 삶과 죽음, 돌봄, 돌봄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를 권하는 한편, 서늘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예술적 재미도 담아낸 그래픽노블이다. 죽음 앞에 선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