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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망>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
□16세기 일본사의 세 영웅
1.오다 노부나가 (織田信長)1534년 ~ 1582년 6월 21일 49세 자결, ↕ 3년차 2.도요토미 히데요시 (豊臣秀吉)1537년 ~ 1598년 9월 18일 62세 병사, ↕ 6년차 3.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1543년 ~ 1616년 6월 1일 74세 사망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이 뭐냐고 누가 물으면 대망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삼국지는 청소년필독서, 대망은 경영전략서로 분류 된다고하네여~ 못 읽은 분을 위해 요약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본사람이 좋아한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은 동시대의 인물이지여~때는 바야흐로 16세기 말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인간 경영>
일본에 통일된 근세 봉건제 사회를 확립한 무사요, 정치가 일본이 근대화하기 이전 일본의 국가적 향배를 좌우한 3대 인물
ㅇ 세 영웅의 행적
- 먼저 막부 정권을 장악했던 오다 노부나가는 권력의 절정에서 측근의 반란으로 암살 당했고 노부나가 밑에서 군인으로 일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54세인 1590년 전국을 통일해 정권을 잡았다. - 1592년과 1597년 두 차례에 걸쳐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에서는 16세기 말 일본에 중앙집권적 봉건사회의 기틀을 마련한 영웅
- 에도 시대는 1853년 일본에 페리 제독의 흑선이 들어와 일본을 개항시키고 도쿠가와 막부에 종언이 찍히면서 막을 내림
□ 세 영웅의 리더십
ㅇ 노부나가는 일본 중세 이후의 낡은 가치관을 타파하고 구체제의 파괴에 필요한 전략과 리더십을 선택
ㅇ 일본의 최고경영자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후계자 유형 1위로 선택 ㅇ 일반 국민은 오다 노부나가를 최고경영자 유형 1위로 선택한다. 창업자가 일군 기업을 넘겨 안정적으로 이끌 인물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적합하지만 어려운 시대에 조직과 구성원을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끌어갈 지도자로는 오다 노부나가가 적격
□ 오다 노부나가의 『카리스마 경영』
ㅇ 오다 노부나가의 리더십 특성은 경쟁자와 부하들을 단숨에 제압하는 카리스마와 실행력 그리고 결단력
오다 노부나가의 리더십이야말로 현대 기업의 경영자에게 요구되는 강력한 리더십의 전형이라는 이야기다.
ㅇ '카리스마(Charisma)’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er)가 추종자들이 지도자가 갖추고 있다고 믿는 경외스런 속성이나 마력과도 같은 힘 또는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인격 특성을 가리킨다. 근거가 합리적이지 못하지만 현실에서 이따금 분명히 존재하고, 조직의 지도자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인격 특성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그의 시대에서 얻기 어려운 인식인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이해할 정도로 탁월한 지적 수준을 갖추고 있었다.
▶ 시대에 앞선 사고(통찰력, 정보활용력)
ㅇ 경제 부흥이 국가의 패권을 장악하는 동력이자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는 열쇠라는 점을 인식할 정도였고, 정보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라는 점을 간파할 정도로 앞선 사고를 함
그런 것들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리더십에 카리스마가 생성
ㅇ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부나가에게는 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ㅇ 카리스마를 앞세운 리더십으로 노부나가가 부하들에게 요구사항
ㅇ 노부나가가 부하들에게 유연한 발상을 주문한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 관련
ㅇ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제공 능력은 특히 노부나가가 리더십의 근원으로 삼은 덕목
□ 도쿠가와의 신뢰경영
ㅇ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첫 번째 덕목은 '신뢰'였으며 도쿠가와에게는 '신뢰'가 자기 이미지 통합 전략과 같았음. 도쿠가와는 처음 노부나가의 군대와 싸워 패한 뒤 노부나가와 동맹을맺었다. 당대의 실력자 노부나가와 아직 세가 미약했던 도쿠가와 사이에는 실은 실력에 의한 주종간 갈등이 있었다.
그래서 20여 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는 노부나가와 도쿠가와의 동맹은 일본 전국시대의 미담이 됐다.
▶ 도쿠가와 '인간경영' 네 가지 원칙
1. 머리와 몸을 분리하는 분단 정책
정책을 만드는 머리 부분은 슨푸에 두고, 실행을 하는 몸과 손, 발은 에도에 두는 식이었다.이 이원체제는 2대 장군 히데타다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노부나가가 '공포'를 이용한 관리를 했다면, 히데요시는 현자의 윤리나 도덕에 중점을 두고 부하들을 격려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유지와 관리가 필요한 시기에 일본 천하를 이끄는 장군이 된 도쿠가와가 택한 전략은 분단정책이었다.
2. '꽃과 열매를 동시에 주지 않는다'는 원칙 : 견제와 균형
그래서 권력을 가진 다이묘(大名: 일본 중세말∼근세초 지방에 할거하던 봉건영주, 쇼궁의 휘하에서 지방 세력으로 존재했다)에게는 급여를 적게주고 돈을 많이 받는자에게는 요직 곧 권력을 주지 않았다.
뒤에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과정에서도 전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다양한 인재들로 구성된 집단을 만들어 아들을 견제토록 했다. 어느 한 사람이나 조직에 절대 권한을 주지 않고 늘 이원체제를 유지
3. 늘 민심 동향을 파악하고 여론을 듣는 쪽으로 정책을 편다는 원칙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조직관리를 위해 어떻게 후계구도를 짜야 하는지 고민한 도쿠가와로서는 히데타다가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점을 평가해 후계자로 선정한 것이었다.
4. '상인의 검소한 생활과 계산능력, 재능을 본받자'는 원칙
▶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경영
도쿠가와 경영철학의 두 번째 덕목은 '인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각각 하이쿠라는 일본 특유의 단시를 읊었다. -------------------------------------------------------------------- 노부나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죽여야 한다."라고 했고, 히데요시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게 해야 한다."고 했으며, 도쿠가와는 "울지 않는 두견새는 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 ㅇ 노부나가는 다혈질에 성미가 급한 인물이었다. 울지 않는 새는 필요 없으니 죽여 마땅하다고 보는 냉철한 인간형이다.
□ 현대사회의 시사점
ㅇ 오다 노부나가는 중세 이후 일본의 낡은 가치관을 타파했고,히데요시는 새로운 가치체계를 가진 일본을 건설했다. 도쿠가와는 두 사람이 이룩한 일을 완성시켜 이를 유지시키는 터전을 마련했다.
ㅇ 리더의 제1덕목은 “도덕성” 그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를 중시하고 여론에 항상 귀 기울이는 자세로 정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
ㅇ 절제와 균형의 리더
ㅇ 정보수집,활용을 통한 통찰력
그 배경에는 유랑하는 사람들을 조직해 최고로 우수한 정보망을 구축하였으며, 정보가 전국난세(戰國亂世)를 평정하는 데 중요한 무기라는 것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
ㅇ 지식의 공유 및 구체화
처음 일본에 조총이 소개됐을 때만 해도 비가 많이 오는 일본에서는 사용시기의 제한이 많았고 또 한 번 발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에 실전에서 한, 두 자루의 총을 사용했을 때 조총의 위력을 인식하지 못함.
여기서 지식혁명 성공의 지름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화'를 오다 노부나가의 조총의 예처럼 '구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즉, 조직의 구성원이 갖고 있는 경험적이고 암묵적 지식까지도 조직원이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지식으로 '구체화'시키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ㅇ 창조적 파괴를 위한 과감한 결단력, 실행력
............................ 여기서 잠깐 일본역사에 대해서 조금 짚어보겠습니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숙적 헤이께 정권을 격파하고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이래 명치유신까지 700년간 봉건시대가 있었습니다.
700년간의 일본 봉건제도가 어떤 시스템으로 돌아 갔는지를 이해하면 일본 역사서나 소설을 읽을 때 매우 도움이 됩니다.
일본사람이면 누구나 알고있다는 츄신구라(忠臣藏)... 츄신구라는 억울하게 참소당해 할복한 주군의 복수를 위해 47인의 충신들이 오래동안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복수했는데, 비록 원수지만 막부의 중신을 참살한 것은 참형감인 것을 충성심을 인정받아 명예형인 할복형으로 감형 받았다는 내용입니다.
일본 봉건시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일본사람에 대한 열등감 같은게 살짝 생깁니다. 저렇게 충성심이 높으니 일본이 선진국이 된거야..
일본놈은 밉지만 그 놈들 의리는 부럽다..
* 츄신구라 (忠臣藏)
일본사람에게는 특별히 충성심 유전자나 의리 유전자같은게 따로 있는걸까요? 아니면 일본의 풍토나 환경에 일본인을 의리있게 만들어주는 특별한 뭔가가 있는걸까요?
저는 유전자나 풍토의 차이가 아니라 일본의 사회시스템이 충성을 특별히 강제해왔기 때문이라는 의견입니다. 크고 작은 츄신구라 (忠臣藏)가 일본 역사에 수없이 발생한 것은 일본의 유구한 봉건제도 때문이었습니다.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가마쿠라 막부를 개창한 후로 일본은 수백명의 다이묘들이 연합한 합중국이었습니다. 각각의 다이묘는 스위스의 칸톤이나 미국의 스테이트와 비슷하게 사법권 군사권에 외교권까지 갖춘 독립국입니다.
막부의 장군(쇼군)이 이 다이묘(영주)들에 대한 지휘권을 천황에게서 이양받아 일본을 지휘하는 겁니다.
다이묘간의 분쟁이 벌어지거나 외국의 침략이 발생하거나하면 장군이 처분이나 명령을 내리는 시스템. 만약 어떤 다이묘가 장군의 처분을 받아
*가이에키(改易 영지를 몰수당하는 것)를 당하면 무슨일이 벌어질까요?
영주인 다이묘는 대개 할복처분을 받게됩니다. 영주는 거의 여왕벌같은 존재여서 영지를 몰수당하면 살 길이 없습니다. 다이묘가 할복 혹은 운좋게 머리를 깍고 절간으로 들어가면 그 영지에는 다른 영주가 명을 받아 들어오게 됩니다. 새로운 영주는 조선의 사또처럼 달랑 혼자 부임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신 일체를 거느리고 들어옵니다.
영지에서 녹봉을 받던 기존의 천석짜리 백석짜리 오십석 삼십석짜리 무사들이 모두 봉록을 잃게됩니다. 봉록만 잃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내의 거택까지 빼줘야 합니다.
요즘식으로 말하자면 기업의 오너가 바뀌는데 생산직만 빼고 관리직은 모두 짤리는겁니다. 직장만 짤리는게 아니고 사택도 빼줘야하는 합니다. 한 순간에 알거지가 되는 셈입니다.
요즘에는 퇴직금으로 식당이라도 열어서 호구지책을 열지만, 한번 무사는 죽어도 무사입니다. 수중에 남은 몇푼이 떨어지면 그때부터 굶어야합니다. 아내는 날품을 팔고 아이들은 반거지가 됩니다. 하루 한끼 먹습니다. 요즘의 명퇴 은퇴하고는 비교할수 없는 문자 그대로
인생막장이 가이에키(改易 영지를 몰수당하는 것)입니다. 가이에키를 당하지않으려면 최대한 충성을 바쳐야합니다. 내 한 목숨 바치는건 가이에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한 목숨 바쳐 충성을 다 하면 나는 죽더라도 처자식은 이어집니다.
전쟁에서 지면 무조건 가이에키입니다. 사무라이가 용감하지 않을래야 않을수가 없는 시스템입니다. ....................
□ 일본3대 고대 족벌세력
1. 후지와라(藤原)씨 - 나라시대 부터 왕실의 외척 후지와라 요시후사(藤原良房)
2. 다이라 혹은 헤이(平)씨 계통 - 헤이안시대 말기 다이라 키요모리(平清盛) :무사로서 최초 태정대신 - 가마쿠라 2차 막부 싯켄 호조 도키마사(北条時政)
3. 미나모토 혹은 겐(源)씨 계통 -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 가마쿠라 1차 막부 쇼군 - 아시카가 다카우지 (足利尊氏) 무로마치 막부 쇼군
... <막부시대>
(1) 카마쿠라 바쿠후 쇼군 1192-1333 (142년간) * 가마쿠라(鎌倉 :요코하마 남부) [편집] 역대 쇼군
[편집] 역대 싯켄
(2) 교토[京都] 무로마치 시대 : 1336년~1573년(240년간) ☞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
* 슈고 다이묘(일본어:
오닌의 난 이후 15세기 말에서 16세기 초 사이에 일부는 센고쿠 다이묘화 하고, 일부는 몰락하였다.
[편집] 슈고 다이묘 일람
(3)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 1573년~1603년(30년간)
☞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하의 정권을 잡았던 시대. 쇼쿠호시대[織豊時代]라고도 한다. 오다 노부나가의 본거지가 아즈치성[安土城]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만년의 거처지가 교토[京都] 모모야마[桃山]의 후시미성[伏見城]이었으므로 그러한 명칭이 붙었다. 30년간의 시대였지만 일본 역사상 중요한 전환기였으며 임진왜란 ·정유재란을 일으켜 한국을 침범한 시기이기도 하다. 전국시대 말기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중앙으로 진출하여 아시카가의 쇼군[將軍]을 축출하고, 그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을 통일하였다. (4) 에도시대[江戶(=:현 도쿄)時代(강호시대)] : 1603년~1867년(264년간) ☞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01 도쿠가와 이에야스 德川家康 1603~1605
일본사람이 좋아한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은 동시대의 인물이지여~때는 바야흐로 16세기 말 일본 전국시대,
등재 : 내마음의 보석상자( http://blog.daum.net/kjs4311 ) 위 블로그에 못 읽은 분을 위해 시리즈로 요약 정리해 등재했습니다다. 블로그 "일본사" 참조 |